해주 최씨
관향 | 황해도 해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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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최온 (崔溫) |
집성촌 | 황해도 해주시 전남 화순군 전남 영암군 경북 포항시 |
주요 인물 | 최충, 최유선, 최유길, 최사제, 최사량, 최사충, 최약, 최관, 최윤의, 숙비 최씨, 최자, 최홍윤, 최만리, 최호, 최황, 최경회, 최경창, 숙빈 최씨, 최규서, 최승희, 최불암 |
인구(2000년) | 181,840명 (43위) |
비고 | 해주 최씨 대종회 |
해주 최씨(海州 崔氏)는 황해도 해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최온(崔溫)은 고려 해주(海州)의 목민관(牧民官)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었고, 판이부사(判吏部事)를 지냈다. 그 선조들이 누대에 걸쳐 황해도에 세거하였으므로 해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
해주 최씨(海州 崔氏)의 시조인 최온(崔溫)은 고려 해주의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풀었으며 또한 문명이 높았고, 후에 판이부사(判吏部事)에 이르렀다. 황해도(黃海道) 대녕군(大寧郡 : 海州)에서 조상 대대로 학문을 숭상하고 행실을 돈독히 하였으며 해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역사
해주 최씨의 대표적 인물로는 고려 문종 때 구재학당(九齋學堂)이라는 사학을 건립하여 인재들을 길러내어 해동공자로 추앙받는 최충(崔沖),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50권)을 편찬한 최윤의(崔允儀), 조선 세종 때의 학자요 청백리인 최만리(崔萬理),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서 순절한 최경회(崔慶會),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최규서(崔奎瑞) 등이 있다. 해주 최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8명을 배출하였다.
본관
해주(海州)는 황해도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때 내미홀(內米忽), 일명 지성(池城), 장지(長池) 라 하였고, 신라 경덕왕이 폭지(瀑池)로 고쳤으며, 고려 태조(太祖)가 남쪽이 대해(大海)에 임하고 있다고 하여 해주로 개명하였다. 고려 성종 때 와서는 별호로 대령(大寧)·서해(西海) 등으로 불렸다. 1895년(조선 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해주부가 설치되었고, 1896년 도제 실시로 황해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54년 북한의 관제 정비로 황해남도의 도 소재지가 되었다.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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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해주 최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8명을 배출하였다.[1]
- 최충 - 시조 최온의 아들, 동방유학의 비조이며 해동공자
- 최유엄 - 고려 충숙왕 때 수첨의정승, 판선부사, 대령부원군
- 최만리 - 세종대왕이 훈민정음(한글)을 창제할 때 반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 최경창 - 조선 시와 문장에 뛰어났다.
- 최황 - 조선 선조 때 이조판서
- 최규서 - 조선 영조 때 우의정, 영의정
- 숙빈 최씨 - 조선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어머니로 증영의정 최효원의 딸이다.
집성촌
-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유곡리
- 황해도 해주시 동동
- 황해도 해주시 남욱동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서성리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운농리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백용리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경치리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임리
- 경상북도 영일군 연일면 자명동
항렬표
- 전한공파(중시조로 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