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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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
張勃

신상정보
별칭 초명(初名)장지완(張志完)
아호(雅號)는 우석(雨石)
영문 이름은 Thomas Chang
출생 1901년 4월 3일(1901-04-03)
대한제국의 기 대한제국 한성부
사망 2001년 4월 8일(2001-04-08)(100세)
미국의 기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직업 서양화, 대학 교수, 외교관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술학 석사
종교 천주교
분야 서양화
부모 장기빈(부)
자녀 슬하 7남 1녀
친척 장면(형)
장극(아우)
장진(조카)
장익(조카)
장현(손자)
주요 작품
영향

장발(張勃, Thomas Chang, 1901년 4월 3일 ~ 2001년 4월 8일)은 대한민국의 미술인이며 서양화가이다. 초명(初名)은 장지완(張志完)이고 호는 우석(雨石)이다. 정치인 장면의 친동생이며 대학교수 장진, 주교 장익의 숙부였다. 장발은 서양화가였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성화 제작과 가톨릭 성당 건립에 참여한 것 외에는 창작보다 미술 이론 연구와 교육 활동에 더 몰두했다. 그는 한성부 출생이며 경기도 인천에서 성장하였다.

학력

생애

생애 초기

우석 장발은 1901년 4월 3일 한성부 종로 친척 집에서 인천세관의 관리 장기빈과 그의 부인 황루시아의 아들로 태어났고 인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의 형은 후일 대한민국의 부통령을 역임하는 장면(張勉)이다. 인천의 개화한 집안에서 출생하였고, 초명은 지완(志完)이라 했다가 뒤에 발로 개명하였다. 1920년 일본 도쿄 미술학교에서 유학한 뒤, 1922년부터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미술사와 미학을 수학했다.

일제 강점기 활동

장발은 일제 강점기에 친일단체로 분류되는 조선미술가협회 서양화부 평의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으며, 이 사실은 전남대학교 교수 이태호가 1992년 발표한〈1940년대 초반 친일 미술의 군국주의적 경향〉이라는 논문에서 알려졌다. 서울대 미대 교수인 김민수1996년 개교 50주년 기념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서울대 미술대학 디자인 - 공예 50년사〉라는 논문의 각주에서 이 논문을 인용한 바 있다. 2005년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1] 그러나 다른 친일 화가들에 비하여, 장발이 적극적으로 일제를 미화하는 작품을 남겼거나 열성적으로 친일하였다는 증거는 없다.[2]

광복 이후

1946년 서울대학교에 미술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학장에 취임했으며, 1961년까지 재직하면서 대한민국 미술계와 미술 교육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2공화국 총리를 지낸 형 장면이 5·16 군사 정변으로 실각한 뒤에는 미국에 머무르면서 여생을 보냈다.

1996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되었고, 교내에 흉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미술대학 갤러리 '우석홀'은 그의 호를 딴 것이다.

2001년 4월 8일 오전 4시(한국시각 오후 6시) 미국 피츠버그 자택에서 10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3]

가족 관계

같이 보기

각주

  1. 조호진. “서울대 일제청산위, 1차 친일인물 12명 발표”. 오마이뉴스. 2008년 3월 5일에 확인함. 
  2. 서울대 인터넷신문 S&U. “서울대미대 장발 교수 흉상에 일장기 부착”. 오마이뉴스. 
  3. 100세 화가 장발씨 타계(1보) :: 네이버 뉴스
  4. [서양화가] 장발 올해로 만 100세 맞아 :: 네이버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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