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익 (19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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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익 십자가의 요한
명의 직책 천주교 춘천교구
교구 천주교 춘천교구장(1994년-2010년)
천주교 함흥교구장 서리(2005년-2010년)
임기 1994년 11월 11일 ~ 2010년 1월 28일
전임자 박 Thomas Stewart, S.S.C.
후임자 김운회 루카
성직
사제서품 1963년 3월 30일
주교서품 1994년 12월 14일
교계 천주교
개인정보
출생 1933년 11월 20일(1933-11-20) (80세)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경기도 경성부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교파 천주교
학력 교황청 그레고리안대학교 대학원
모교 교황청 그레고리안대학교 대학원
사목표어 하나되게 하소서


장익(張益, 1933년 11월 20일 ~ )은 대한민국가톨릭 성직자이자 시민사회단체인이다. 가톨릭 주교이며, 세례명은 십자가의 요한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비서신부 등을 거쳐 천주교 춘천교구장과 천주교 함흥교구서리 그리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제4대 부통령을 지낸 운석 장면(張勉)의 넷째 아들이다. 본관은 인동이다.

생애[편집]

생애 초기[편집]

1933년 11월 20일 경성부에서 태어난 그는 1952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하였다.

학력[편집]

1956년 미국 메리놀신학교로 편입한 그는 그곳에서 인문학철학 학사를 취득하였고 1959년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철학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3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사제 서품[편집]

1963년 3월에 사제서품을 받은 그는 신부가 되어 사람들을 만나는 사목보다는 학자로서 많은 공부를 하였다. 그래서 많은 성직자들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았다. 1967년에 서울대교구장 비서로써 교구장을 보좌했으며 1968년에는 김수환 대주교가 서울교구장으로 부임하여 그의 비서신부가 되었다.[1] 1968년 김수환 대주교가 추기경에 선출되자 당시 비서였던 장익 신부에게 소식을 처음 전하였다 한다.[1] 1970년에 서울대교구 정릉성당 주임신부로 활동하였다.

사목 활동[편집]

  • 1972년에는 서울대교구 신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였고
  • 1976년에는 서울대교구 비서실장 겸 공보실장을 지냈다.
  • 1977년부터 1993년까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와 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84년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식과 103위 성인 시성식을 하기 위해 방한했을 때 유창한 한국어로 미사를 집전하였는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장익 신부였다.[1]
  • 김수환 추기경은 2004년 출간된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평화방송·평화신문 刊)'에서 그의 노고를 잊을 수 없다고 격찬하기도 하였다.[1]
  • 1986년 서울대교구 사목연구실 실장과 1988년 서울대교구 세종로 성당 주임을 거쳐 1990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재직하여 계속 학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문민정권 출범 이후[편집]

1993년 춘천교구 Thomas Stewart(박 토마스)주교가 건강상의 이유로 교구장 직에서 사임하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장익 신부를 제 6대 천주교 춘천교구장으로 임명하면서 주교로 서품하였다. 12월 29일 주교로 서품받았다.

1995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되었고, 1995년 12월부터 2000년까지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2008년 10월 16일까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으로, 2010년 3월 25일까지 춘천교구 교구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이외에도 많은 직책을 맡고 있었으나 2010년 1월 28일 사임 청원이 받아들여졌으며, 2010년 3월 25일에 김운회 주교가 제 7대 춘천교구장으로 착좌식을 가지면서 교구장직에 은퇴하였다.

가족관계[편집]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장익·지학순 주교 일화·사북 탄광체험 등 소개 《강원일보》
전 임
박 토마스
제6대 천주교 춘천교구장 겸 함흥교구장 서리
1994년 - 2010년
후 임
김운회 (루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