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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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khwong (토론 | 기여)님의 2013년 8월 7일 (수) 17:49 판

메스티소(Mestizo)는 대개 라틴 아메리카에 널리 분포하는 유럽인과 아메리카 토착민의 인종적 혼혈인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원래 에스파냐어에스파냐 제국 시대에 라틴 아메리카의 유럽인과 아메리카 토착민의 혼혈인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 오늘날에도 이런 의미로 계속 쓰이고 있다. 또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우 해당 지역 토착민과 유럽인 사이 혼혈을 뜻하기도 한다.

어원

메스티소는 '혼합', '혼혈'을 뜻하는 로망스어 / 라틴어 낱말 믹스티키우스(mixticius)에서 유래했다. 포르투갈어 카보클로(caboclo)프랑스어 메티스(métis)도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각 식민지에서 유럽인과 아메리카 토착민의 혼혈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아메리카 대륙

에스파냐어권 라틴 아메리카

에스파냐 제국이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을 지배하던 시대에, 원래 이 낱말은 유럽인과 아메리카 토착민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혹은 두 메스티소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즉 메스티소는 혼혈 비율이 50:50인 셈인데, 다른 혼혈 비율도 나타내기 위해 이 시대에 카스티소(castizo, 3/4는 유럽, 1/4은 아메리카 혈통)나 콰르테론 데 인디오(cuarterón de indio), 촐로(cholo, 1/4는 유럽, 3/4는 아메리카 혈통)같은 무수한 표현들도 쓰였다.

메스티소는 라틴 아메리카 인구의 주류를 차지한다. 그러나 유전학적 연구가 아니고서는 메스티소의 범위를 "생물학적"으로 정밀하고 합리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식민 시대 이래 이 지역 주민들의 인종을 추척해왔으나 이런 통계 자료들은 당시 사회가 무엇으로 생물학적 인종을 파악했는지만 보여줄 뿐이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들이 조사한 것은 인간의 "사회적" 인종이었기 때문이다. 에스파냐 식민 시대에 아메리카에서 한 사람의 법적 인종을 분류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 부, 문화, 언어 사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부유한 사람들은 돈으로 자신들의 실제 혈통을 바꾸거나 감추었다. 그리고 수많은 토착민들은 에스파냐에 공납을 피하기 위해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떠나 메스티소로 보이려고 했다. 여러 토착민들과 아프리카 혈통을 일부 이어받은 사람들이 에스파냐어를 구사하고 메스티소처럼 사는 경우 이들도 메스티소로 분류되었다.

일반적으로 오늘날 메스티소 인구가 대다수인 나라들로는 콜롬비아, 에콰도르, 엘 살바도르, 온두라스, 멕시코, 니카라과, 파나마, 과테말라, 파라과이, 베네수엘라가 있으며, 볼리비아페루는 이들이 두 번째로 큰 집단이다.

CIA 자료 등을 보면 코스타 리카칠레같은 나라의 인구를 백인과 메스티소를 분리하지 않고 두 나라 각각 그저 "백인과 메스티소", "백인과 백인-아메리카인"으로 분류하여, 두 나라에서 모두 95% 이상을 차지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아르헨티나우루과이의 경우, 공식적인 메스티소 인구는 3%에서 8% 사이에 지나지 않는다.

멕시코의 경우 지역의 따라 혼혈의 정도가 다른데, 최근 수십 년간 인구 이동이 이런 현상을 어느 정도 바꾸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멕시코 메스티소 중 이들의 혈통에서 아메리카 토착 혈통의 정도는 남쪽으로 갈수록 증가하며, 반대로 북쪽으로 갈수록 줄어든다. 이런 현상은 에스파냐 정착민들이 식민 시대에 멕시코 중부와 북부에 주로 몰렸고(에스파냐인이 건설한 도시에 인구가 집중한 현상이 아니라, 실제 정착민들의 이주를 뜻한다), 중부에 살던 토착민들은 남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베라 크루스 인근 등 멕시코 만 지역에는 아프리카계가 많은데, 이것은 대서양간 노예 무역의 영향으로, 이들 노예가 이동하면서 다른 대도시 지역에도 상당히 많다. 19세기 중반부터 아프리카계는 일반 메스티소 인구에 포함되었다.

유럽으로 이주한 유명한 메스티소 출신

에스파냐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나우아틀 마야의 토착 멕시코인 통역자 말린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마르틴 코르테스(1527 ~ 1568)는 처음으로 에스파냐에 간 메스티소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제 의지가 아니라, 그의 동생이 멕시코에 새 정부를 세우려던 반란을 이끌다 추방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 초기의 메스티소로는 그 외에도 에르난 코르테스아스텍 황제 목테수마 2세의 딸이자 쿠아우테목의 황후였던 테추키포를 첩으로 삼아 얻은 딸 레오노르 코르테스도 존재한다.

최초로 제발로 유럽땅에 발을 딛은 확증이 있는 메스티소는 아스텍 황제 목테수마 2세의 손자들로, 에스파냐 왕가가 인정한 왕통이었다. 이 가문중에서 유명한 후손으로는 아코스타 가문과 에스파냐 미라바예 백작이 있는데, 2003년 그는 멕시코에 정부가 1934년에 폐지한 소위 "목테수마 연금"을 다시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그 금액은 목테수마의 현 후손들이 각자 편히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페루 출신의 메스티소로는 에스파냐 정복자 세바스티안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와 잉카 제국의 공주 이사벨 침포 옥요운의 아들인 잉카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가 있다. 그는 안달루시아의 몬티야에 살다가 1616년에 죽었다.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까지 수천명의 칠레인 백인과 메스티소 혹은 카스티소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독재 정권을 피해 유럽으로 망명했다. 오늘날 서유럽에는 메스티소 이주자가 늘고 있으며, 주로 에콰도르와 콜롬비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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