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렐로 라가디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피오렐로 헨리 라가디아

출생 1882년 12월 11일(1882-12-11)
미국 미국 뉴욕 주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
사망 1947년 9월 20일 (64세)
미국 미국 뉴욕 주 뉴욕 브롱크스
국적 미국 미국
학력 뉴욕 대학교 B.A., LL.B.
경력 제99대 뉴욕 시장
직업 법조인, 정치인
정당 공화당
종교 미국 성공회
병역 미국 육군

피오렐로 라가디아(영어: Fiorello Henry La Guardia, 1882년 12월 11일 ~ 1947년 9월 20일)는 미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으로, 판사 시절에 내린 독특한 내용의 판결과, 뉴욕 시장에 재직할 당시에 행한 마피아 소탕 작전으로 유명하다. 1934년부터 1945년까지 3분기에 걸쳐 뉴욕 시장을 역임하였으며, 그동안 마피아를 소탕하고 마피아 두목들 중의 한 사람인 찰스 루치아노를 검거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1930 년 어느날 , 상점에서 빵 한덩어리를 훔치고 절도 혐의로 기소된 노인이 재판을 받게 되었다. 판사가 정중하게 물었다.

" 전에도 빵을 훔친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처음 훔쳤습니다."

"왜 훔쳤습니까?"

"예 저는 선량한 시민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얻을수 없었습니다. 사흘을 굶었습니다........ 배는 고픈데 수중에 돈은 다 떨어지고, 눈에는 보이는게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저 너무 배가고팠습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저도 모르게 빵 한덩어리를 훔쳤습니다."

판사는 잠시 후에 판결을 내렸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할지라도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법대로 당신을 판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노인의 사정이 너무도 딱해 판사가 용서해줄 것으로 알았던 방청석에서는

인간적으로 너무 한다고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판사는 논고를 계속했다

"이노인은 이곳 재판장을 나가면 또 다시 빵을 훔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노인이 빵을 훔친것은 오로지 이 노인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이 도시에 살고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노인이 살기 위해 빵을 훔쳐야만 할정도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방치한 책임이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10달러의 벌금혈을 내리겠습니다. 동시에 이 법정에 앉아 있는 어려 시민들께서도 십시일반 50센트의 벌금형에 동참해주실 것을 권고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어 모자에 담았다.

이 놀라운 판사의 선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거두어진돈이 모두 57달러 50센트였다. 판사는 그 돈을 노인에게 주도록 했다. 노인은 돈을 받아서 10달러를 벌금으로 내고, 남은 47달러 50센트를 손에 쥐고 감격의 눈물을 글성거리며 법정을 떠났다...

이 명판결로 유명해진 피오렐로 라과디아 판사는

그후 1933년부터 1945년가지 12년동안 뉴욕 시장을 세번씩이나 역임했던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늘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해주어서

작은꽃 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웠다. 그런데 아깝게도 뉴욕시장 재직 중에 비행기 사고로 순직하였다. 뉴욕에는 세개의 공항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맨허튼에서 13km 쯤 떨어진 잭슨 하이츠에 있는 공항으로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라과디아 공항이다

[출처] 감동적인 글 (명재판)|작성자 스마트 매니저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