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2015년 11월 14일 대한민국 민중총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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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사건 및 내용만 있다고 생각합니다[편집]

객관적인 사건 및 내용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립적인 내용이므로, 문서의 손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Dreamtexter (토론) 2015년 11월 15일 (일) 14:01 (KST)[답변]

출처 문제[편집]

출처들이 백:신뢰에 따른 출처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치환할 수 있는 출처가 있으면 치환하는 것이 좋아보입니다. --Neoalpha (토론) 2015년 11월 15일 (일) 15:02 (KST)[답변]

문서 병합[편집]

1차/2차/3차를 따로 문서로 만드느니 하나로 만드는게 어떨까요? -- ChongDae (토론) 2015년 12월 15일 (화) 16:44 (KST)[답변]

반대 굉장히 부적절한 의견이라고 사료됩니다. 1,2,3차는 언론에서도 모두 다른 시위로 언급되고, 참고로 나무위키같은 경우에도 문서를 따로따로 만들어 정리하고 있으며,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봅니다. 대한민국 민중총궐기 문셔는 동음이의어 문서고요.--Fnvedgnve (토론) 2015년 12월 15일 (화) 17:36 (KST)[답변]
반대 셋은 엄연히 다른 시위입니다. 다른 동기, 다른 일시에 발생하였고 엄연히 셋은 독립적으로 나눠져서 세부적으로 다뤄질 가치가 있습니다.--175.223.20.212 (토론) 2015년 12월 15일 (화) 17:50 (KST)[답변]
Fnvedgnve 사용자의 다중 아이피로 판단되는 바, 의견 취소처리 합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12월 20일 (일) 23:01 (KST)[답변]
강력 찬성 이와 같은 시위는 큰 틀에서 하나의 문서로 생성해오고 있는 것이 그간 편집 방향입니다. 시위 할 때마다 문서를 개별적으로 만들면 난잡해지기만 합니다.--Wikitori (토론) 2015년 12월 20일 (일) 17:51 (KST)[답변]
추가로 Fnvedgnve 님. 로그인 하지 않고 IP로 찾아오셔서 2개의 의견을 발의하여 총의를 흐리시는데, 이와 같은 행위는 엄연한 제재 대상입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건으로 주의 받으신 것 같은데 전혀 개선되지 않으십니다. IP 사용자의 기여 건이 1회에 불과한 초기 사용자인데 매우 능숙한 편집 방향을 보이고 있고, 초반부터 토론에 찾아온 걸 보니 위키백과 편집에 대해 잘 알고 있단 사용자란 것이 증명됩니다. 또한 IP 사용자와 귀하와의 편집 시간이 15분 가량 밖에 차이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더욱 귀하가 제시한 의견인 '반대'를 많아 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군요.--Wikitori (토론) 2015년 12월 20일 (일) 17:56 (KST)[답변]
@Wikitori: 위에 175 어쩌고 사용자 말씀하시는 건가요? 일단 해당 아이피 사용자의 {{반대}}를 취소처리 하겠습니다. --양념파닭 (토론 · 기여) 2015년 12월 20일 (일) 23:01 (KST)[답변]
찬성 민중총궐기라는 타이틀에 주최자나 참가자들의 성격이 같은 것, 요구하는 바가 일치하는 것 등을 보면 별개의 시위라기보다는 같은 목소리를 정부를 향해 세 번 냈다고 보는 쪽에 가깝다 봅니다. 단지 문제점이라면 문서 하나에 병렬적으로 1+2+3 식으로 할지, 아니면 화학적으로 잘 섞어서 종합할지의 문제 같습니다.--Ta183ta (토론) 2015년 12월 20일 (일) 18:06 (KST)[답변]
의견 병합 논의는 둘째치고, 일련의 연속성 있는 사건이므로, 세 사건에 대해 통합된 설명을 할 별도의 문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사용자분들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이강철 (토론) 2015년 12월 20일 (일) 18:30 (KST)[답변]
2015년 대한민국 민중총궐기 정도로 합치는 것이 나아보입니다. --Neoalpha (토론) 2015년 12월 20일 (일) 19:26 (KST)[답변]
이 문서를 2015년 대한민국 민중총궐기로 옮기고, 2차 3차 문서를 개별 문단으로 생성해 통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개요 부분에 3차에 걸쳐서 진행되었다는 설명을 덧붙이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Wikitori (토론) 2015년 12월 20일 (일) 20:55 (KST)[답변]
2차, 3차 문서가 정리되어 있지 않고 단순히 기사 인용이나 의견 서술 정도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기에, 현재 문서를 대표 표제어로 문서명을 수정하고 2-3차 문서를 추가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Wikitori (토론) 2015년 12월 20일 (일) 20:56 (KST)[답변]
강력 반대 내용이 매우 짧은 문서도 아니고, 3차 민중총궐기 문서 같은 경우 각주가 80개 이상 되는 긴 문서입니다. 서로 독립되어 다뤄질 충분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단순한 편의를 위해서 통합한다는건 적절하지 않아보이고, 만약 통합한다면 문서가 너무 길어질것 같네요. 이런 문서 같은 경우 1,2,3 차 문서를 따로 나눠놓아서, 보다 쉽게 해당 시위에 대해서 접근하고 확인할수 있도록 하는것이 타당해보입니다. --Fnvedgnve (토론) 2015년 12월 20일 (일) 23:19 (KST)[답변]
기사 인용이 아니라, 문단 별로 정리되어 있는 하나의 독립된 문서입니다;; 3차 민중총궐기 문서 같은 경우도 각 문단별로 확실히 정리되어 있고, 각주가 80개 이상되는 매우 긴 문서이고요. 병합해야 할 타당한 근거가 있는것 같지 않습니다. 그냥 독립된 채로 유지해서, 보다 쉽게 해당 시위에 대해서 접근할수 있도록 하는것이 가장 옳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일반적인 시위가 아니라 충분하게 정리된 긴 내용이 들어간 민주노총 등 대규모 단체가 개최한 대규모 시위고요. 굳이 문서 내용을 엄청 길게 만들고, 접근성을 떨어뜨리면서 까지 이런 대규모 시위 문서를 한 문서로 통합시켜야 할 마땅한 근거를 못찾겠습니다. --Fnvedgnve (토론) 2015년 12월 20일 (일) 23:27 (KST)[답변]

보통 문서의 크기가 40k까지는 분할의 필요가 적다고 봅니다. 백:문서 나누기 참고 하시면 좋겠습니다. --케골 2015년 12월 21일 (월) 01:53 (KST)[답변]

다른 걸 차치하고라도 각주가 그냥 링크로 '갖다 붙이기' 식으로 나열되어 있다는 것만 봐도 그 문서가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Wikitori (토론) 2015년 12월 21일 (월) 02:57 (KST)[답변]

의견 '1차, 2차, 3차 민중총궐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 이어지는 과정이니 하나로 묶어 정리하는 것이 이용자들의 편의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서의 통합 이후 내용을 분할한다면 각 민중총궐기 과정에서 '진행 과정 (1차, 2차, 3차 통합)'과 '논란 (1차, 2차, 3차 통합)' 부분을 나누어 분할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BIGRULE (토론) 2015년 12월 21일 (월) 08:17 (KST)[답변]

근거가 너무 부족합니다. 각주가 링크로 되어 있다면 각주 틀을 사용해서 부분적으로 고치기만 하면 될 문제입니다. 다른 시위 문서보다 문단별로 잘 정리되어 있는 훨씬 방대한 대규모 시위 문서인데, 각주가 링크형태로 기술되어 있다는 이유가 문서를 합병해야 할 합당한 사유가 될수 없습니다. 그냥 부분 수정하면 될 일이지요. 또한, 이 문서 병합은 백:문서 합치기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요구사항이 같다고 해도, 각각 다른 주제와 다른 일시, 다른 방법과 다른 위치에서 이루어 졌고, 또 문서의 내용이 심히 빈약한것도 아니며, 다른 시위 문서보다 훨씬 방대한 문서이며, 신뢰할수 있는 출처도 충분한 문서등재기준에 부합되는 문서들입니다. 굳이 합병해야할 적절한 근거를 찾지 못하겠으며, 그리고 이런 방대한 문서들을 별 이유없이 한 문서로 병합해서 문서를 비합리적으로 매우 길게 만들고 쉽게 접근할수 없도록 할 이유가 없고, 이것이 이용자의 편의라는 내용 또한 더더욱 공감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용자들이 보다 쉽게 해당 시위에 대해서 접근할수 있으며, 1차 민중총궐기 문서에서 2차 민중총궐기 -> 3차 민중총궐기 문서로 원활하게 이어지도록 링크되어 있는데 무슨 문제라는 건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백:문서 합치기에 부합되지 않는 각주가 50개 이상 (3차는 80개 이상) 되는 방대한 문서들이고, 모두 각각 다른 주제와 다른 일시, 다른 방삭과 다른 위치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시위 문서이므로 다른 소규모 시위들과는 다르게 분할해서 다루는것이 훨씬 합리적인것으로 판단됩니다. --Fnvedgnve (토론) 2015년 12월 21일 (월) 16:01 (KST)[답변]
게다가 현재상태에서 문서를 병합하게 되면, 병합하는 과정과 병합 후의 문서가 너무 복잡해지고 찾아보기도 힘들어지며, 논란이나 과정 문서를 따로 또 분할해야 하는 등 번거롭고 불필요한 작업이 필요하게 됩니다. 민중총궐기는 다른 소규모 시위와는 다르게, 대규모 시위이고 문서 내용이 방대하고 다양하므로 충분히 따로 분할되어 다루어질 가치가 있고 그게 더욱더 해당 시위에 대해 사용자들이 접근해서 이해하기 쉬운 방향이라고 생각됩니다. 합병은 불필요합니다. 그냥 간단히 정리만 해주면 될것 같네요. --Fnvedgnve (토론) 2015년 12월 21일 (월) 16:24 (KST)[답변]
2•3차만에 병합 다른 시위들과 달리 1차 시위는 시위 이후에도 별개의 논란과 파장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별개의 존치 이유가 있습니다. 문제는 2차와 3찬데 3차가 영향이 조금 적은 만큼 두개 문서에 한해서 합병을 하고 2016년 이후에 벌어질 총궐기 관련 해서 추가 문서를 만들어 관리하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 Ellif (토론) 2015년 12월 23일 (수) 14:35 (KST)[답변]
1차만 놔두고 2·3차만 병합시킨다는 의견은 비효율적이고 타당한 의견이 아닙니다. 2차 총궐기나 3차 총궐기가 참여인원은 적었어도, 2차 총궐기도 아직 언론 상 여러가지 논란이 많으며, 3차 민중총궐기도 경찰과 법조계, 인터넷, 언론등에서 불법이냐 아니냐, 태극기 릴레이 사건 등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논란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 합병 근거가 없으며, 1차만 존치하고 2, 3차만 따로 병합시킨다는건 접근성과 가독성을 떨어뜨릴뿐 아니라 연결성까지 해치고 문서가 부자연스럽게 됩니다. 4차 민중총궐기는 아직 날짜까지 밝혀지지 않고 암시만 해둔 상태이니 아직까진 다루지 않는게 좋겠고요. --Fnvedgnve (토론) 2015년 12월 23일 (수) 16:56 (KST)[답변]
병합 저는 지금 이문서들이 출처만 계속 넣어두느라 정리가 안되어 보이는데 정리를 하면 병합도 가능해보이는데요 ? --Gusdn961020 (토론) 2015년 12월 24일 (목) 00:52 (KST)[답변]
병합찬성하며, 표제어를 그냥 "민중총궐기" 로 간략히 했으면 합니다. 아무개 파업이나 아무개 시위가 아닌 이런 독특한 이름은 노동자 대투쟁처럼 별도의 연도를 명시하지 않아도 자체 지명도를 얻을 수 있지 않나 마 그래 생각합니다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5년 12월 24일 (목) 01:00 (KST)[답변]
답변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문서가 정리되었다고 해서 문서들을 서로 합병시켜야 할 정당한 근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규모시위 들과 달리 이런 내용들이 다양하고 많은 문서들을 억지로 병합하면 가독성과 접근성만 떨어뜨리고 불필요한 일을 계속해야 할 뿐입니다. 그리고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와 같은 이름은 주최단체인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측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시위명이므로, 표제어로 사용하는것이 맞습니다. 단지 편의를 위해 전혀 불필요한 일을 행한다는것은 말이 안되는 일입니다. 해서 민중총궐기라는 이름으로 넘겨주기문서를 만든거고요. 그리고 위에 말했듯이, 민중총궐기는 다른 소규모 시위와는 다르게, 대규모 시위이고 문서 내용이 방대하고 다양하므로 충분히 따로 분할되어 다루어질 가치가 있고 그게 더욱더 해당 시위에 대해 사용자들이 접근해서 이해하기 쉬운 방향이라고 생각되며, 합병은 불필요합니다. 간단히 정리만 해주고 그대로 분할상태로 유지해서 다루는것이 합리적이지요. --Fnvedgnve (토론) 2015년 12월 24일 (목) 09:03 (KST)[답변]
의견 민중총궐기가 2016년까지도 이어질 것이 분명하며, 앞으로도 민중총궐기라는 제목의 시위가 그 이후에도 이뤄지지 않으리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민중총궐기가 별개의 개념으로 총의를 얻는다면 그 건 민중총궐기 문서를 만들어 설명하면 될 일입니다. - Ellif (토론) 2015년 12월 25일 (금) 00:00 (KST)[답변]
그게 무슨 말이신가요.. 4차 민중총궐기가 열린다면 오히려 더더욱 문서를 분할해서 다루는것이 합리적이지요. 민중총궐기가 5차, 6차까지 이어질수록 만약 이 모든것이 민중총궐기 문서로 전부 병합된다면 문서 내용이 지나치게 길어져 가독성과 접근성만 해칠 뿐이라고 몇번을 이야기 하나요.. 문서를 자꾸 필요없이 병합하려 하는 강박적 행동으로 보입니다. 이는 백:문서 합치기의 기준에도 어긋나며, 다른 소규모 시위들과 다르게 이런 대규모 시위는 각주와 백:문서 등재 기준에도 충족되므로 분할해서 다루는것이 합리적이고 사용자의 편의와 가독성과 접근성을 유지하는 길이며, 해당 시위에 쉽게 접근해서 찾아볼수 있도록 하는 길입니다. 굳이 이 모든걸 합병해서 불필요한 복잡한 작업을 계속하여 가독성과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문서 내용을 지나치게 길게 만든다는것이 저는 전혀 이해가 안되는 행동으로 보이네요. 간단히 정리만 해주면 됬지, 이걸 굳이 합병해서 불필요한 작업을 계속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Fnvedgnve (토론) 2015년 12월 25일 (금) 01:25 (KST)[답변]
초강력 반대 반대함니다.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175.223.3.105(토론 · IP 정보)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서명을 하시려면 물결표 4개(--~~~~)를 입력하시면 됩니다.
병합찬성
민중총궐기만큼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훨씬 오래, 거의 매일 열렸던 2008년 대한민국의 촛불 시위도 한 문서로 되어 있습니다.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항쟁도 모두 한 문서입니다. 이를 비롯하여 틀: 대한민국의 대규모 시위 및 농성에 있는 대규모 시위들 모두 최대 참가자 수, 참여 연인원, 당대의 논란, 역사적 중요성 등 많은 면에서 민중총궐기에 뒤지지 않으나 모두 한 문서로 되어 있습니다. 체계의 일관성을 지키려면 이전의 문서 상당수를 분할하거나 민중총궐기 문서를 합쳐야 합니다. 이 경우 전례를 따라 민중총궐기 문서를 합침이 옳다고 봅니다. 전례가 만능은 아니지만, 따르지 않을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전례를 따름으로써 체계의 일관성을 지켜야 합니다.
3회에 걸친 민중총궐기 대회는 발생 원인, 시위 주체, 시위 대상, 요구 내용 등이 모두 같으며 앞으로도 같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폭력 논란이 있었는가 하는 것인데, 이는 대규모 시위에는 항상 존재해왔으며 핵심 논점이 아니므로, 폭력 논란이 있고 없음에 따라 시위의 본질적 성격이 달라진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백과사전의 기본은 기록입니다. 역사적 사건을 기록할 때 같은 성격의 연속된 시위는 하나로 보고 거시적으로 정리합니다. 민중총궐기가 아니더라도 2010년대 이후를 위주로 파업 등 개별 사건들이 각각 문서로 되어 있어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이 또한 별도의 논의를 통하여 정리해 나가야 합니다.
민중총궐기는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진행 중인 사건이므로 4차 대회 등의 새로운 사항이 생길 수 있는데, 이는 충분히 한 문서 내에 추가할 수 있으므로 문서를 병합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독자가 사건의 흐름을 파악하려면 여러 문서보다 한 문서가 편하기 때문에 접근성의 관점에서도 병합하는 쪽이 낫습니다. 가독성은 구성과 편집 기술에 관한 것이므로 문서 병합 여부와 직접적으로는 무관하며, 한 문서에 모든 내용을 담아도 읽기 편하게 쓴다면 가독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3개의 문서 모두 주석이 많아 단순 병합하면 방대해질 수 있으나, 큰 흐름에 맞지 않는 지엽적인 부분을 줄이고 다듬으면 됩니다. 어느 모로 보나 문서를 병합해야 하는 이유와 정당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기에 문서 병합에 찬성합니다. Archer (토론) 2015년 12월 29일 (화) 06:24 (KST)[답변]
답변 4.19 혁명이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이 1차, 2차, 3차 에 걸쳐서 열렸나요? 만약에 2차 4.19 혁명이나 2차 6월 항쟁이 열린다면 당연히 기존 문서가 아닌 새로운 문서가 만들어져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민중총궐기는 1차 2차 3차가 단기간에 걸쳐 빨리 이루어진 시위들이 아니라, 1차 2차 3차가 모두 긴 기간에 걸쳐서 각기 다른 논란들, 각기 다양한 다른 정보들이 존재하는 대규모 시위들입니다. 그리고 백과사전의 기본 성격은 기록이라고 하셨는데, 효율적으로 1차 2차 3차를 나누어놓았다고 해서 그게 기록하지 않는 일인가요? 거시적으로 정리하는것이 아니라, 문서를 비효율적으로 망쳐놓는 일입니다. 백:문서 합치기에 부합되지 않는 병합이기도 합니다. 문서가 발전 가능성이 없이 짧고, 논란과 배경이 거의 같다면 합치는것이 마땅하겠으나, 배경과 논란이 완전히 다르며, 각기 백:등재와 신뢰 가능한 출처를 충분히 가지고 있고, 문서 내용이 방대한 문서들이며, 이를 "모두 같다" 라고 보는것에는 큰 오류가 존재합니다. 서로 분할해서 다루는것이 가독성과 접근성을 유지하고 사용자들이 해당 시위에 대해서 쉽게 찾아볼수 있는 길입니다. 문서를 합병할 경우 문서가 지나치게 길어지며,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불필요한 번거로운 작업을 계속해야 할 뿐입니다.
그리고 4차, 5차 민중총궐기가 추가적으로 열린다는 보장이 없는데다가, 4차도 아직 언급만 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만약 4차, 5차 민중총궐기가 계속 열린다고 해도 오히려 분할이 필수적입니다. 4차, 5차 민중총궐기가 열린다면 그에 따른 충분하고 긴 내용이 또 들어갈 것인데, 분할해서 다루는것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이 모두를 합친다면 6차까지 열린다고 감안해서 문서 내용이 백:문서 나누기에서 기준하는 양보다 훨씬 많아지게 되는데, 문서를 이렇게 길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독자가 해당 시위에 보다 쉽게 접근하기 위해선, 이렇게 내용이 다양하고 충만한 대규모 시위 문서는 분할해서 다뤄야 보다 쉽게 해당 시위에 대해서 접근이 가능하고, 가독성이 유지됩니다. 1차 -> 2차 -> 3차로 쉽게 연결되도록 링크도 해놓았으니 연결성 부분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요. 왜 굳이 이걸 합쳐야 하는지에 대한 정당한 근거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문서를 병합하게 된다면 가독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충분히 주게 됩니다. 문서 내용이 불필요하게 길어질뿐더러, 앞으로 4차나 5차까지 열린다고 감안할때도 더더욱입니다. 그리고, 1차, 2차, 3차 문서 모두 문단에 따라 자세히 정리되어있는데, 불필요한 지엽적인 부분 자체가 특정이 불가능한데다가, 이런 방대한 문서들을 합쳐서 이에 맞게 정리하려면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모됩니다. 굳이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서를 이대로 분할해서 다뤄야 할 근거는 충만하며, 각주 같은 부분만 살짝 정리해주면 해결 될 문제로 보입니다. --Fnvedgnve (토론) 2015년 12월 29일 (화) 16:07 (KST)[답변]
답변 감사합니다. 답변해주신 내용에 문서의 길이에 대해 많이 강조해 주셨는데, 무언가를 다룰 때 문서의 개수를 몇 개로 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에 있어 내용의 길이를 생각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들 중 백과사전에 실을 만한 것이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데, 이를 판단하기 위한 잣대로 어떤 '무언가'에 대한 설명의 길이를 사용한다면, 다른 모든 잣대로는 백과사전에 실릴 가치가 있는 학문적 개념들 중 몇몇은 긴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백과사전에 실릴 수 없고, 이와 반대로 어떤 개인의 신변잡기는 길게 쓸 수 있다는 이유로 백과사전에 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개별 문서로 두기 위해서는 그 무언가를 개별 문서로 만들고 유지할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그것이 문서의 길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백:병합백:분할을 기준으로 드셨으나 해당 가이드라인에서는 길이에 앞서 '주제'라는 사유를 중요하게 제시하고 있으므로 이를 고려함이 우선입니다. 또한 해당 가이드라인은 도움말일 뿐 법칙은 아니며, 설령 지침이라 할지라도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하이퍼링크로 문서를 연결하였으니 연결성의 문제가 없다고 말씀해 주셨으나, 문서가 분리되어 있으니 내용의 유기적 구성이 불가능해집니다. 단순 사실 등 시계열적으로 기술해야 할 부분은 그렇게 하되, 현상의 공통적인 부분은 한 번만 서술하고 변화하는 부분은 흐름에 따라 통일성 있게 서술해야 하지만, 하이퍼링크를 이용한 연결은 이를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서를 합치고 정리하려면 많은 시간과 인력이 쓰인다는 사실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문서를 합치지 않는다면 장기적인 문서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바, 당장 문서를 깔끔하게 만들 수는 없더라도 문서를 합치는 것이 이득이라고 봅니다. 또한 향후 열릴 대회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현실적인 가정이지만, 참여 주체와 핵심 요구 등을 비롯한 본질적 주제가 달라지지 않으며 계속된다면, 100차 대회까지 열린다고 하여도 지엽적인 부분을 정리하여 충분히 하나의 문서 안에 둘 수 있습니다. 문서에서 지엽적인 부분을 특정할 수 없다고 말씀해 주셨으나 특정 가능합니다. 굳이 꼽아보자면 1차와 2차의 '집회 과정'과 3차의 도입부 대부분에 해당합니다.
결국 병합 논의는 '3회의 민중총궐기 대회가 각각을 별도의 문서로 다루기에 충분한 상호 차별성을 갖추었는가'로 수렴해야 합니다. 병합에 찬성하는 측은 그러한 차별성이 없다고 주장할 것이고, 반대하는 측은 차별성이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저는 3회의 민중총궐기 대회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병합에 찬성하며, 이에 대해서도 짧게나마 반론해 주셨기에 재반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 의견을 제시할 때 기존 문서와의 비교로 시작하였으니 재반론에도 기존 문서의 예를 들어야 하겠습니다. 답변해주신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하여 4·19, 5·18, 6월 항쟁 등을 다시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2차 4·19혁명 등이 일어난다면 새로운 문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당연한 일입니다. 4·19혁명은 1960년에 일어났으니 2010년을 기준으로 해도 50년의 시간차가 있습니다. 시간차 뿐만 아니라 당시 4·19혁명을 일으킨 원인은 이승만의 독재와 부정 선거였으나 지금 살아있지도 않은 이승만의 독재 때문에 시위가 일어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앞선 예시들 중 가장 최근 사건인 2008년 촛불 시위를 봐도 표면적 원인은 이명박 정권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므로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2차 4·19혁명"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1960년의 것과는 반드시 다를 것이기에 반드시 별도의 문서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민중총궐기는 이와 다릅니다. 1차 민중총궐기와 2차 민중총궐기의 관계는 4·19혁명과 "2차 4·19혁명"의 관계가 아니라, 4·19혁명 내에서의 개별 시위들의 관계와 같습니다. 4·19혁명 문서에 따르면 별도의 문서가 존재하는 3·15 의거4·18 고려대학생 피습 사건을 제외해도 4월 11일의 마산 시위와 4월 19일 이후의 시위들이 모두 묶여 있습니다. 4월 20일부터 4월 26일까지 연일 시위가 있었을 것이나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서술조차 없습니다. 자료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자료가 풍부하다 하여도 문서를 분리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 시위가 무가치하기 때문이겠습니까? 당시의 시위는 모두 4·19혁명이라는 하나의 표제어 안에 둘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경우 더욱 명확합니다. 본문에 따르면 5월 23일 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가 있었고 24일 제2차, 25일 제3차, 26일 제4차 대회가 있었습니다. 5·18 당시 광주는 계엄군과 시민의 대치로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고 있었을 것이므로 각각의 대회 진행 양상이 완전히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모든 대회를 분리하지 않고 간략히 서술해 놓은 것은, 그 대회들 사이에 미시적인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거시적으로 볼 때 5·18이라는 틀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월 항쟁도 6월 10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있었고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이 있었으나 16일의 시간 간격이 있는 두 집회를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2008년 대한민국의 촛불 시위도 5월 2일 '미친소' 집회를 시작으로 6월 5일 72시간 시위, 6월 10일 백만대행진, 7월 5일 국민승리대회 등 수많은 이름의 집회들이 있었으나 모두 문서 하나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역사적인 흐름에서 각자의 표제어에 따른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하나씩의 문서로 묶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차례에 걸친 민중총궐기 대회의 경우 주요 원인이 박근혜 정권의 노동 개악과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모두 같습니다. 대립 주체 또한 '민주노총과 진보적 시민 사회' 對 '박근혜 정권과 그 옹호 세력'으로 같습니다. 처음 의견에서 밝혔듯 폭력 논란의 존재 여부만이 다르나, 이는 시위의 본질이 아니며 앞서 예시한 4·19, 5·18, 6월 항쟁, 2008년 촛불 시위 등에도 나날의 국면에 따라 충돌과 평화가 모두 있었습니다. 처음 의견에 답변해 주신 내용 중 각기 다른 논란이 있다고 하셨는데, 민중총궐기에 대해 많은 소식을 접하고 살펴보았으나 본질이 달라졌다고 여길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특히 그 배경과 논란이 완전히 다르다는 말씀과는 반대로 배경과 논란이 거의 같다고 보이는 면뿐입니다. 답변해 주신 내용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세부적이지 않아서 토론의 여지가 생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민중총궐기에 대해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수준의 정보를 통해서는 3회의 대회가 서로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어떠한 근거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문서 병합에 거듭 찬성 의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Archer (토론) 2016년 1월 1일 (금) 13:40 (KST)[답변]

의견 4차 민중총궐기가 2월 27일 개최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로서 기존 제안인 문서의 하나로의 병합은 거의 불가능해졌네요. - Ellif (토론) 2016년 1월 20일 (수) 00:41 (KST)[답변]

더 토론이 진행되지 않네요.--청순한민트♥ (talk) 2016년 2월 14일 (일) 15:56 (KST)[답변]
종결로 결론내도 되겠습니까?--청순한민트♥ (talk) 2016년 2월 15일 (월) 22:17 (KST)[답변]
의견 1~3차를 병합하여 2015년 민중총궐기 문서로 하고 4차 이후를 2016년 민중총궐기 문서로 따로 정리하는 것도 좋아 보입니다. Archer (토론) 2016년 2월 27일 (토) 18:39 (KST)[답변]
@Ellif: 주 문서가 민중총궐기로 바뀌어 있네요. 한 문서로 만드는 걸로 충분해 보입니다. 특정 날짜의 사건을 따로 적고 싶다면 위키뉴스가 있습니다. -- ChongDae (토론) 2016년 2월 29일 (월) 13:06 (KST)[답변]
  1. 위키백과에서 다룰 수 있는 내용을 위키백과 바깥으로 내보내는 행위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특히 1차 총궐기 관련 내용은 내용이 많아 독립된 별개의 문서로 서술되어야 할 것입니다.
  2. 현 시점에서도 1차, 2-3차, 4차 이후 등으로 나누는 방식이 적절하다는 제 입장은 아직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 Ellif (토론) 2016년 3월 30일 (수) 21:49 (KST)[답변]

의견 11월 민중총궐기는 매년은 아니지만 여러 해 있었던 일입니다. 특히 농민 관련 이슈가 있는 해에는 농민 대회와 합해 시위가 커지기도 했고요. 통합문서를 만든다면 '2015년 민중총궐기'로 정해야지 '민중총궐기'라고만 달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2015년의 경우 여러 가지 이슈가 복합되어 시위가 커졌으며 1차, 2차, 3차에 주요 주장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만약 '2015년 민중총궐기' 문서로 통합한다고 해도 각 회차마다 주요하게 주장한 내용을 분리하고 가장 많은 인원을 동원 또는 조직한 주체를 표시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민중총궐기' 문서를 따로 만들고 과거 민중총궐기 중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것을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두데드두들 (토론) 2016년 4월 14일 (목) 08:56 (KST)[답변]

서명 남겨 주시고, 2015년 이전의 해에도 "민중총궐기"라는 이름으로 시위가 이루어졌는지 관련 자료 제시 바랍니다.--Wikitori (토론) 2016년 4월 12일 (화) 21:45 (KST)[답변]

의견 일단 민중 총궐기 문서를 민중총궐기로 넘겨주기를 했습니다. 물론 민중 총궐기 적합한 것 같긴 하지만 연도까지만 표시하는 것이 어떨까요 물론 2015년도에도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어차피 2015년에서 이어진 것으로 봤을때 2015년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고 그럼 시기상 2016년이라고 해도 2015년이라고 표시하는데 있어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입니다.Backtothe (토론) 2016년 5월 4일 (수) 09:14 (KST)[답변]

의견 2016년 11월 민중총궐기의 발생으로 따라 이 토론의 효력은 사실상 실효했다고 보이는 것이 옳아보입니다. - Ellif (토론) 2016년 11월 13일 (일) 13:46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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