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스크 호 침몰 사고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쿠르스크 호 침몰 사고2000년 8월 12일 노르웨이 북쪽 바렌츠해에서 훈련 중이던 러시아 해군 소속 핵잠수함 쿠르스크 호가 침몰, 승무원 118명 전원이 사망한 사고이다.

배경[편집]

구소련의 붕괴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소련군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러시아는 독자적으로 군대를 창설하였고,[1] 그 규모는 구소련의 절반 이하의 수준이었다.[2] 또한 러시아는 미국과 체결한 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에 의해 2000년까지 당시 보유한 약 250척의 잠수함 중 100척 이상을 해체하기로 결정하였다.[3] 러시아의 핵잠수함은 1990년 190척에서 2000년에는 50척으로 줄어들었다.[4]

구소련의 흑해함대는 1997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간의 합의로 우크라이나 함대와 러시아 함대로 분할되었고, 세바스토폴 항 동쪽을 임대하여 사용하게 되었다.[5]

러시아의 해군력은 구소련의 3분의 1로 감소하였으나 북해함대는 전략적 중요성으로 그 전력이 유지되고 있었고, 그 기항인 세베로모르스크가 위치한 바렌츠 해에서는 여전히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냉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1992년과 1993년에는 미국 잠수함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6][4]

구소련을 포함한 러시아에서는 1957년 이후 9건의 잠수함 사고가 있었고, 2000년까지 약 300명이 사망하였다.[4]

쿠르스크 호

러시아의 해군 병력 감축이 진행 중이던 1994년 건조된 쿠르스크 호는 길이 154m, 선폭 18.2m, 높이 9m, 잠수시 배수량 18,000 톤급의 오스카II급 전략 핵추진 잠수함으로, 2기의 원자로가 있으며, 24기의 핵탄두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다.[7]

쿠르스크 호는 가라앉지 않는 배로 평판이 나 있었고, 직격의 어뢰를 맞고도 버틸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쿠르스크 호의 선체는 3.5 m 의 간격을 둔 이중 선각의 구조였고, 9개의 수밀구획이 있었다.[8]

사고 경위[편집]

8월 14일 이타르타스 통신은 러시아 해군측의 발언을 인용하여 8월 13일 130여 명이 탑승한 러시아 북해함대 소속 핵잠수함 크루스크 호가 바렌츠해에서 침몰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세베로모르스크 북쪽 100 km 바다에서 충돌사고가 일어났으며, 수심 100 m 이상의 깊이에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원자로 2기는 가동을 멈추었으며, 핵무기는 탑재하지 않아 방사능 유출의 위험은 없다고 하였다.[9][10]

8월 13일 사고가 발생했다는 러시아 해군의 주장과는 달리, 노르웨이 외무부는 침몰 시점이 13일이 아닌 12일이었다고 밝혔다. 미국 관리들도 미국 해군 잠수함에서 12일 사고와 관련이 있는 듯한 폭발음을 감지했다고 주장하였다.[11]

해군의 훈련[편집]

2000년 8월 12일 아침, 쿠르스크 호는 수십 년 만의 최대 규모, 그리고 구소련 붕괴 이후 첫 훈련인 '여름-X' 훈련에 참여하고 있었다.[12] 훈련에는 30척의 배와 3척의 잠수함이 참가하고 있었다.[13] 쿠르스크 호는 당시 탁월한 성과로 표창을 받았고, 선원들은 북해 함대 내의 최우수 잠수함 선원으로 인식되고 있었다.[14] 훈련 중이었지만 쿠르스크 호는 전투용 무기를 가득 싣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18기의 SS-N-16 스탈리온 대함 미사일과 22기의 SS-N-19/P-700 그라닛 순항 미사일이 포함되어 있었다.[13]

현지 시간으로 8시 51분, 쿠르스크 호는 훈련용 어뢰 발사 허가를 요청하였고, '좋다(добро́)'는 답변을 받았다.[14][15] 11시 29분, 쿠르스크 호는 북해 함대의 기함키로프급 미사일 순양함 표트르 벨리키 호에 2발의 모의 어뢰를 발사하였다.[16] 탄두가 장착되지 않은 65-76 연습용 어뢰가 쿠르스크 호의 우현 4번 어뢰 발사관에 장전되었다. 어뢰의 길이는 10.7 m, 무게는 5톤이었다.[17][18][19]

최초의 폭발[편집]

2000년 8월 12일자 쿠르스크 잠수함에서 발생한 폭발에 대한 노르웨이 방사선방호청의 지진파 측정값

현지 시각으로 11시 29분 34초 (07:29:50 UTC), 노르웨이 지진파 탐지 연구소(NORSAR)와 세계의 다른 곳에 위치한 지진파 감지기에서 리히터 규모 1.5의 폭발이 감지되었다.[20] 발생 위치는 북위 69° 38′ 동경 37° 19′  / 북위 69.633° 동경 37.317° / 69.633; 37.317, 무르만스크 동북쪽으로 고정되었는데, 노르웨이로부터 250 km, 콜라 반도로부터 80 km 떨어진 곳이다.[21] 폭발로 화재가 발생하였고, 그 온도는 2700℃에 이르렀음이 후에 밝혀졌다.[22]

두 번째 폭발[편집]

첫 번째 폭발이 있은 지 2분 14초 후인 11시 31분 48초에 잠수함 안에서 그보다 훨씬 큰 폭발이 일어났다.[20] 이 폭발은 3각측량으로 북위 69° 36′ 동경 37° 34′  / 북위 69.600° 동경 37.567° / 69.600; 37.567좌표: 북위 69° 36′ 동경 37° 34′  / 북위 69.600° 동경 37.567° / 69.600; 37.567로 측정되어 선박이 첫 번째 폭발 위치에서 400 m 정도 이동했음을 나타냈다. 북유럽을 가로지르는 지진 관측소의 자료에서 해당 폭발은 바다 밑바닥의 깊이에서 발생했음을 알려 주었다. 두 폭발 사이에는 잠수함이 108 m 깊이에 가라앉아 잠시 머물기에 충분한 시간차가 있었다.[20]

두 번째 폭발은 TNT 2~3톤의 폭발에 해당되는 규모이며,[16] 전투용 어뢰 5~7발 가량의 탄두의 폭발력에 해당된다. 한 발의 65형 어뢰는 항공모함을 격침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450kg의 탄두로 무장되어 있다.[23] 후일 표트르 벨리키 호의 음향 자료가 분석되었는데, 7발 가량의 어뢰가 연속적으로 폭발하였음을 알려 주었다.[16] 첫 번째 폭발보다 250배 컸던 두 번째 폭발은 유럽에서 리히터 규모 4.2의 크기로 측정되었고, 멀리 알래스카에까지 감지되었다.[19][24][8]

구조 및 인양[편집]

구조[편집]

사고 초기

8월 14일 보도에서 러시아 해군은 5척의 구조함과 항공모함, 순양함, 구축함 등이 구조에 투입되었다고 설명하였다.[9]

쿠르스크 호는 해저 108 m 깊이에 가라앉았고, 사고 발생 직후 러시아 해군이 잠수정을 내려 생존자 수색과 구조를 시도하였으나, 악천후와 거센 조류로 탈출용 해치에 잠수정을 연결시키지 못했다.[25] 러시아 구조대는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된 구조 작업에서 수 차례 쿠르스크 호의 탈출용 해치에 접근했으나, 단단히 잠겨 있어 열지 못했다.[26]

생존자

사고 발표 이후 러시아 해군은 승무원들이 잠수함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승무원들은 전원 생존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미국의 정보 기관은 8월 16일 승무원들이 생존하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27]

쿠르스크 호가 침몰한 곳은 해저 100 m 지점으로 수압이 높고, 몇 cm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시계가 좋지 않았다. 선내 산소는 48시간을 버틸 수 있는 분량으로 추정되었고, 미사일 발사구에서는 선내에 물이 스며들고 있음을 시사하는 거품이 일었다.[28]

8월 21일 노르웨이의 심해 잠수팀이 선미의 해치를 열었고, 가장 생존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던 9호 선실이 침수되었음을 확인하였고, 내부에서 시신 1구를 발견하였다. 러시아 해군은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 구조 작업을 종료하였다. 내부에서 방사능은 검출되지 않았다.[29][30]

인양[편집]

9번 격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드미트리 콜레스니코프 해군 중위가 지니고 있던 메모의 일부
시신

생존자 확인 작업은 영국과 노르웨이 구조팀이 교대로 수행하였다.[31] 8월 21일, 노르웨이 구조팀이 9호 선실에서 시신 1구를 발견, 인양하였고,[31]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판명, 구조 작업은 중단되었다.

중단된 시신 인양 작업은 러시아-영국-노르웨이 합동 잠수팀에 의해 10월 20일 재개되었다.[32]

10월 26일에는 4구의 시신이 인양되었는데, 그중 신원이 확인된 해군 중위의 시신에서 잠수함 폭발 직후 9번 격실에 23명이 생존해 있었음을 기록한 메모가 발견되었다.[33]

11월 7일, 모두 12구의 시신을 인양한 상태에서 러시아 해군은 선내 작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사체 인양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다.[34]

선체

인양 비용과 방사능 누출의 위험으로 인양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35]

쿠르스크 호의 인양은 노르웨이 잠수지원선과 영국 전문가의 참여로 2001년 7월 착수하여 10월에 마무리되었다.[36][37] 인양된 선체 내부에서는 48구의 시신이 수습되었고, 블랙박스도 회수되었다.[38]

원인 분석 및 논란[편집]

사고 발생 초기 러시아 당국의 발표에서 사고 시각, 핵 미사일 탑재 여부, 탑승 인원 숫자 등이 실제와 달랐으며, 사고 원인의 해명에도 혼선을 빚었다. 초기에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거부하였는데,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잠수함에 장착된 신형 장비와 무기가 장착되어 있었고 러시아가 이를 감추려 했던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였다.[27]

침몰 원인[편집]

충돌설

8월 14일, 러시아 해군은 사고를 공개하면서 쿠르스크 호가 대규모 충돌 사고를 일으켜 침몰했다고 설명하였다.[9] 이와 관련하여 미국 국방부는 사고 해역 부근에서 미국 해군 잠수함 2척이 작전중이었으나 해당 사고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였다.[11]

8월 21일, 러시아 해군은 쿠르스크 호가 영국의 잠수함과 충돌하면서 탑재된 어뢰가 폭발하여 침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였고, 그 근거로 침몰 해역에서 330 m 떨어진 해저에서 정체 불명의 잠수함 갑판 파편이 발견되었음을 제시하였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측 주장을 즉각 부인하였다.[39]

9월 5일, 영국 가디언 지의 인용 보도에서 러시아 해군은 쿠르스크 호에서 50 m 떨어진 해저에서 영국군 또는 미군 핵잠수함의 파편인 듯한 물체가 발견되었으며, 쿠르스크 호는 잠수함과 충돌하여 선체가 파손되면서 어뢰가 폭발했다고 주장하였다.[40]

미사일 피격설

8월 21일, 쿠르스크 호가 러시아 순양함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고 있던 해역에 잘못 들어가 미사일에 맞았을 수 있다는 추측이 러시아 일간지에 인용 보도되었다.[28]

9월 8일, 독일 베를리너 자이퉁은 8월 12일에 러시아 연방 보안국이 쿠르스크 호가 러시아 순양함의 대잠함 미사일에 피격되었다는 조사결과를 푸틴 대통령에 보고했다고 보도하였다.[41]

신형 어뢰 오폭설

8월 27일,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사고 당일 쿠르스크 호가 최신형 어뢰를 시험 중이었고, 오작동으로 화염이 발생, 탑재한 어뢰와 미사일들이 폭발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그 근거로 쿠르스크 호에는 민간인 무기 개발 전문가 2명이 동승하고 있었고, 사고 당시 강한 폭발이 있었으며, 사고 발생 수심이 통상적으로 어뢰를 발사하는 깊이임을 근거로 제시하였다.[42]

사고조사위원회

2000년 11월 8일, 러시아 사고조사위원회의 회의가 열렸다. 회의 직후 위원장은 사고 원인으로 1) 제2차 세계대전 때의 기뢰와 충돌, 2) 잠수함 내부의 사고, 3) 외국 잠수함과의 충돌의 세 가지 가능성이 검토되었다고 설명하였다.[43]

기타 논란[편집]

해양 오염 우려

쿠르스크 호에 탑재한 2기의 원자로는 사고 초기부터 해양의 방사능 오염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26]

침몰 시각

쿠르스크 호가 침몰한 것은 러시아 해군의 최초 발표와는 달리 8월 13일이 아닌 그 전날인 8월 12일인 것으로 밝혀졌다.[11]

탑승 인원

8월 14일에는 116명이 탑승한 것으로 발표되었으나, 17일 118명으로 정정되었다.[44]

핵무기 탑재 여부

러시아 해군은 초기 발표에서 쿠르스크 호에는 핵무기가 탑재되어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45] 하지만, 2001년 4월에 노르웨이 당국은 핵무기 탑재 사실을 확인하였다.[46]

대통령의 휴가

사고 당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흑해 연안의 소치에서 휴양 중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사건을 보고 받고 3일간 아무런 언급이 없다가 8월 16일에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8월 18일에 모스크바로 복귀하였다. 이러한 대응 방식을 두고 러시아 국내와 전세계에 비난 여론이 일었다.[47][48] 이에 대하여 푸틴 대통령은 ‘전문가가 아니어서 방해될까봐 사고 지역에 가지 않았다’고 해명하였다.[49]

사후 처리 및 사회적 파장[편집]

대통령 지지도

여론조사 기관의 8월 22일 발표에 의하면, 푸틴 대통령의 지지도는 65% 로 전달에 비해 10% 정도 하락하였다.[50]

애도의 날

푸틴 대통령은 관계자 회의를 통해 8월 23일을 승무원들의 넋을 기리는 애도의 날로 선포하였다.[51] 대통령은 22일 쿠르스크 호의 모항 비디야예보 항을 방문하여 6시간 동안 승무원의 유족들을 위로하고 보상금과 연금 지급, 훈장 추서, 책임자 처벌을 약속하였다. 하지만, 유가족 500여 명은 구조작업의 재개를 요구하며 행사에 불참하였고, 결국 행사는 취소되었다.[52][53]

유족 지원

8월 21일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음이 판명되면서 러시아 정부는 사고자 가족에 대해 책정된 금액을 늘려 당시의 한화 6천여만 원에 해당되는 150만 루블을 지원하기로 하였다.[35]

기타[편집]

사고 정황과 해결 과정에서의 유사성 때문에 천안함 침몰 사고 당시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었다.[54]

주석[편집]

  1. 舊蘇軍 사실상 해체, 《동아일보》, 1992.2.13
  2. 러 獨自軍병력 대폭감축, 《매일경제》, 1992.3.28
  3. "러核艦 100척 해체 불가피", 《경향신문》, 1993.10.22
  4. 〈해외의 시각〉비밀에 갇힌 '水中냉전', 《경향신문》, 2000.8.29
  5. 흑해함대 명성 역사속으로…, 《동아일보》, 1997.5.30
  6. "바렌츠海는 냉전지대"…러-나토 첩보전 치열, 《동아일보》, 2000.8.17
  7. 러 잠수함 사고 이모저모, 《동아일보》, 2000.8.15
  8. "What really happened to Russia's 'unsinkable' sub", 《The Guardian》, 2001년 8월 4일 작성. 2014년 11월 8일 확인.
  9. 러 핵잠수함 북극해서 침몰, 130명 탑승 구조가능성 희박, 《경향신문》, 2000.8.15
  10. 러 핵잠수함 침몰…구조 난망, 《한국일보》, 2000.8.15
  11. 러시아 핵잠수함 구조 난항, 《한국일보》, 2000.8.17
  12. Russian Sub Has 'Terrifying Hole' (2000년 8월 18일). 2011년 1월 1일에 보존된 문서. 2014년 1월 31일에 확인.
  13. J.R. Potts (2014년 5월 9일). K-141 Kursk Attack Submarine (1994). MilitaryFactory.com. 2014년 2월 3일에 확인.
  14. Robert Brannon (2009년 4월 13일). 《Russian civil-military Relations》. Ashgate Publishers, 140쪽. ISBN 978-0754675914
  15. Peter Davidson, Huw Jones, John H. Large (2003년 10월). The Recovery of the Russian Federation Nuclear Powered Submarine Kursk (PDF).
  16. "Nightmare at sea", 《St. Petersburg Times》, 2004년 12월 10일 작성. 2014년 11월 8일 확인.
  17. "Final report blames fuel for Kursk disaster", 《BBC News》, 2002년 7월 1일 작성. 2014년 11월 8일 확인.
  18. Lamar Underwood (2005). 《The Greatest Submarine Stories Ever Told: Dive! Dive! Fourteen Unforgettable Stories from the Deep》. Lyons Press. ISBN 978-1592287338
  19. Russian Submarine Kursk Catastrophe. 2014년 1월 31일에 확인.
  20. Ingar Amundsen, Bjørn Lind, Ole Reistad, Knut Gussgaard, Mikhail Iosjpe, Morten Sickel (2001). The Kursk Accident. Norwegian Radiation Protection Authority.
  21. Guy Faulconbridge (2004년 12월 3일). Nightmare at Sea. Moscow Times. 2014년 11월 8일에 확인.
  22. Type 65 torpedo. Weaponsystems.net. 2013년 2월 6일에 확인.
  23. Andrew Alden, Seismic Testimony from the Kursk, About.com
  24. 러핵잠함 승무원 전원 사망…시신 1구 인양(종합), 《매일경제》, 2000.8.23
  25. 러 침몰 핵잠수함 내부진입 실패, 《문화일보》, 2000.8.19
  26. 러, 생명 뒷전 국가자존심 앞세워, 《문화일보》, 2000.8.17
  27. 침몰 러 햄잠수함 구조작업 이모저모, 《국민일보》, 2000.8.18
  28. 러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선실 모두 침수… 구조작업 포기, 《서울신문》, 2000.8.22
  29. 러 침몰잠함 전원 사망, 러해군 구조작업 종료, 《경향신문》, 2000.8.22
  30. 러핵잠함 승무원 전원 사망…시신 1구 인양(종합), 《매일경제》, 2000.8.23
  31. 침몰 러핵잠함 승무원 시신 인양작업 재개, 《매일경제》, 2000.10.26
  32. “核잠수함 폭발직후 23명 생존” …러 승무원 메모 발견, 《동아일보》, 2000.10.27
  33. 러 해군, 쿠르스크호 사체인양 중단, 《매일경제》, 2000.11.7
  34. 러 핵잠함 118명 전원사망… 시신1구 인양, 《문화일보》,2000.8.22
  35. 작년침몰 러 핵잠 인양 착수, 《세계일보》, 2001.7.18
  36. 쿠르스크호 인양 성공, 《한국일보》, 2001.10.10
  37. 쿠르스크호 블랙박스 발견, 《국민일보》, 2001.10.31
  38. 러해군 "쿠르스크호 영국 잠수함과 충돌", 《매일경제》, 2000.8.22
  39. "쿠르스크호 주변서 나토 잠수함 파편 발견", 《매일경제》, 2000.9.7
  40. 쿠르스크호, 러 순양함에 피격, 《한국일보》, 2000.9.9
  41. 러 핵잠함 사고원인 논쟁 2라운드, 《경향신문》, 2000.8.28
  42. 러 정부, 쿠르스크호 사고 원인 규명 연기(종합), 《매일경제》, 2000.11.9
  43. 러 핵잠함 국제적 구조작전 불구 승무원 생존 회의적, 《한겨레》, 2000.8.18
  44. 러시아 核잠수함…충돌사고로 침몰…방사능은 누출 안돼, 《한국경제》, 2000.8.15
  45. '침몰 러 쿠르스크호 핵무기 싣고 있었다'-노르웨이 당국도 확인, 《경향일보》, 2001.4.6
  46. 푸틴, 잠수함 사고로 최대 위기, 《국민일보》, 2000.8.21
  47. [국제]모두 사망한 듯, 《KBS 뉴스》, 2000.8.20
  48. [국제]곤혹스런 '푸틴', 《KBS 뉴스》, 2000.8.22
  49. 푸틴 지지율 핵잠함 침몰 여파로 10% 하락, 《매일경제》, 2000.8.25
  50. 푸틴 늑장대응 비난 "봇물", 《세계일보》, 2000.8.23
  51. 푸틴 '희생양 찾기' 나섰다, 《국민일보》, 2000.8.24
  52. 〈데스크칼럼〉러시아의 비극, 《경향신문》, 2000.8.30
  53. "천안함 침몰, 쿠르스크호 침몰 사건과 똑같다" 오마이뉴스, 2010년 6월 18일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