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혁 (18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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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혁(崔丙赫, 1878년 10월 19일(음력 9월 24일) ~ 1920년 8월 15일)은 일제강점기 초기의 지방 관료이다.

생애[편집]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1902년부터 대한제국의 하급 관리로 근무했다.

1902년 황해도 관찰부의 주사로 관직을 시작했으며, 이후 탁지부평양, 의주의 재정서 등지에서 근무했다.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후 1911년조선총독부 군서기로 임명되었고, 황해도 신계군금천군 군수를 지냈다. 1912년에는 한국병합기념장도 받았다.

1917년부터 은률군 군수로 재직하던 중, 1920년 만주에서 잠입해 온 이지표대한독립단 단원들에게 살해되었다. 최병혁이 살해된 것은 3·1 운동으로 만세 시위가 일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시위대를 박해했기 때문이다.[1] 대한독립단 단원들은 구월산에서 유격전 끝에 전사하거나 체포되었고, 최병혁에게는 훈6등 서보장이 추서되었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전갑생 (2006년 12월 8일). “반민특위 와해 후 첫 정부 발표 친일파 106명 - 의병장 총살 ·3·1운동 때 발포... 그들은 누구?”. 오마이뉴스. 2016년 3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10월 21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