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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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
陳璘
출생 1543년
명나라 광둥 성 사오관
사망 1607년 (64세)
명나라 광둥 성 사오관
국적 명나라
직업 무관(武官), 장군(將軍), 제독(提督)
친척 진영소(손자)

진린(陳璘, 진인, 중국어: 천린, 1543년 ~ 1607년)은 중국 광둥 지방 출신으로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시 어위도총관 및 전군도독부도독(前軍都督府都督)으로서 5천 명의 수군을 거느리고 조선으로 들어와 전라도 강진군 고금도에서 이순신(李舜臣)과 더불어 전공을 세워 광동백에 봉해진 중국 명나라의 장수이다.

생애[편집]

처음에는 이순신(李舜臣)과 불화가 있었지만 이순신이 진린에게 수급을 양보하는 등 공을 세우도록 도움을 주자 점차 이순신에게 감복하여 진정으로 이순신을 존경하게 되었다. 이후 명나라 조정에 이순신의 전공을 상세하게 보고하여 만력제이순신에게 8가지 선물들(영패(令牌), 도독인(都督印), 귀도(鬼刀), 참도(斬刀), 곡나팔(曲喇叭), 독전기(督戰旗), 홍소령기(紅小令旗), 남소령기(藍小令旗))을 보내도록 하는 데 일조를 했다. 전쟁 당시 사용했던 무기는 총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란이 끝난 후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사망한 뒤에 태자소보(太子少保)에 추증되었고, 그의 손자 진영소는 감국수위사(監國守衛使)를 지내다가 명나라가 멸망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난징으로부터 배를 타고 한반도로 와서 남해장승포에 표착하였다가 조부인 진린이 공을 세웠던 강진 고금도로 옮겨 살았다. 그 후 다시 해남현 내해리로 이거하여 정착하였으므로 광동 진씨(廣東 陳氏)의 뿌리가 내리게 되었다.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외부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