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스위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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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스위프트
Jonathan Swift by Charles Jervas detail.jpg
출생 1667년 11월 30일(1667-11-30)
아일랜드 왕국, 더블린1
사망 1745년 10월 19일 (77세)
아일랜드
필명 M.B. Drapier, 레뮤엘 걸리버, Isaac Bickerstaff
직업 풍자가, 수필가, 정치적 팸플릿 저자, 시인, 성직자
언어 영어
모교 트리니티 대학
주요 작품 걸리버 여행기
겸손한 제안(A Modest Proposal)
설교단의 이야기(A Tale of a Tub)
Drapier's Letters
배우자 Esther Johnson (possibly married in secret in 1716)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년 ~ 1745년)는 영국소설가이자 성공회 성직자이다. 정치와 문학에 관심을 가져, 졸업 후 정치 활동과 문필 생활을 시작하였다. 1704년 이후 정계에서 활약하였으며, 같은 해 익명으로 2개의 풍자 작품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위치도 확보하였다. 1713년 성직자에 임명되었으나, 곧 은퇴하였다. 조너선은 인간이나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였는데, 그 근거로 《걸리버 여행기》는 가장 뛰어난 풍자 소설이라 일컬어진다.

생애[편집]

1667년, 아일랜드더블린에서 영국계 부모의 유복자로 태어났다.[1]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삼촌 손에 자랐으며, 더블린의 킬케니 스쿨과 트리니티 칼리지를 나온 후, 제임스 2세의 왕위 양위와 그에 따른 아일랜드 침공으로 인해 잉글랜드로 이주하였다.[1] 유명한 정치가 윌리엄 템플 경의 비서로 일하며 영국 정치계에서 자리 잡기 위해 노력했다. 템플 경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정치적인 야망은 꺾였으나, 발표한 글들이 유명세를 타면서 스위프트는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토리당을 대표하는 정치 평론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곧 그의 신랄하고 비판적인 글을 두려워한 정치가들의 견제를 받게 되었고, 반대편인 휘그당의 세력이 커지자 아일랜드로 낙향해 더블린의 성 패트릭 성당 사제장으로 일했다. 이곳에서 스위프트는 식민지 아일랜드의 기아와 가난이 점령국인 영국의 탓이라고 비난하며 아일랜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써 아일랜드의 애국자 칭호를 받았다. 노년에는 정신병으로 고생하기도 했으며, 1745년 죽은 뒤 성 패트릭 성당에 묻혔다.

주석[편집]

  1. 조나단 스위프트, 신현철 옮김 (1992.7.7). 《걸리버여행기》. 파주: 문학수첩, 371쪽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