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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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애
林明愛
출생1886년 3월 25일(1886-03-25)
조선 조선 경기도 파주군
사망1938년 8월 28일(1938-08-28)(52세)
국적조선 조선
대한제국 대한제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정당무소속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임명애(林明愛, 1886년 3월 25일 ~ 1938년 8월 28일)는 한국구세군 사령부인, 독립운동가이다. 본적은 경기도 파주군 와석면 교하리이다.

1919년 3월 10일과 26일, 파주 와석에서 남편 염규호, 김수덕, 김선명 등과 격문을 배포하고 700여명을 모아 만세운동을 두 차례 주도했다. 와석면사무소를 부수고 주재소로 향하던 중 일본경찰의 발포로 붙잡혔다. 6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1년 6개월 징역을 받아 임신한 상태로 입소했다.[1]

출산이 임박하여 1919년 10월에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출산하고 11월에 아기와 함께 재입소했다. 서대문형무소 8호실 동료들과 유관순은 지극정성으로 아기를 돌보아 주었다.

사후[편집]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관련작품[편집]

각주[편집]

  1. “임명애 판결문”.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