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타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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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번(일본어: 新発田藩 시바타한[*])은 일본 에도 시대 에치고 국 간바라 군(蒲原郡) 시바타를 중심으로 지금의 가에쓰 지방(下越地方)의 일부를 지배했던 이다. 번청은 지금의 니가타 현 시바타 시에 있는 시바타 성이다. 번주는 미조구치 가문(溝口氏)으로, 그 가격(家格)은 도자마 다이묘이다. 고쿠다카는 6만 석이었으나, 후에 10만 석 격으로 수정되었다.

번의 역사[편집]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에치고노쿠니우에스기 가게카쓰는 아이즈(会津)로 전봉되었고, 에치고에는 여러 무장들이 배치되었다. 그 중 시바타 지역에는 미조구치 히데카쓰가 자리를 잡았다.

히데카쓰는 세키가하라 전투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에 가담하여, 에치고에서 발생한 우에스기 옛 가신들의 잇키를 진압한 공적에 따라 이에야스로부터 본래 영지 소유를 인정받았다. 이에 시바타 번(6만 석)이 성립하였다.

히데카쓰의 아들 미조구치 노부카쓰는 동생 미조구치 요시카쓰에게 영지 1만 석을 분할하여 주었으므로, 총 고쿠다카는 5만 석이 되었다. 게다가 노부카쓰의 아들 미조구치 노부나오는 세 명의 동생에게 영지를 각각 나누어 주었다.

번의 영역은 지금의 시바타 시 영역에 지금의 니가타 시 동부, 아가노 시, 가모 시, 미나미칸바라 군까지 포함하는 광대한 것이었다. 그 영역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간바라 평야(蒲原平野)는 아가노 강, 시나노 강 하류 유역에 펼쳐진 낮은 습지대로, 그 상태 그대로는 농경에 적합하지 않았다. 시바타 번과 영지의 백성들은 대대로 간척과 치수에 공을 들여 개간을 진척시켰다. 그 결과 이 지역은 곡창지대가 되어갔고, 수확량도 고쿠다카 수치를 훨씬 웃돌아 실제 고쿠다카가 40만 석이었다는 설도 있다.

4대 번주 미조구치 시게카쓰에도로부터 정원사 아가타 소치를 초청하여 교토 풍 회유식 정원 세이스이엔(清水園)을 만들어, 당시 번영한 문화를 상징했다. 8대 번주 미조구치 나오야스번교 도학당(道学堂)을 만들어 학문을 장려했다.

11대 번주 미조구치 나오히로 때에는 10만 석으로 고쿠다카를 수정할 것으로 막부에 요청하여 이를 인정받았으나, 번 내에서는 가문의 격이 올라간다는 이점과 재정이 궁핍한데다가 추가로 과역이 부가될 수 있다는 불이익이 대두되어 논쟁이 벌어졌다.

보신 전쟁에서는 신정부 측에 서려고 하였으나, 주변 여러 번들이 가담한 오우에쓰 열번 동맹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동맹에 가입하였다. 동맹은 시바타 번을 참전시키고자 번주 미조구치 나오마사를 인질로 삼으려 시도했으나, 번 영지의 백성들의 저항으로 저지되었다. 그 후 시바타 번은 신정부군에 합류하여 참전하였고, 시바타 지역은 전쟁의 와중에도 지켜질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시바타 번의 행동은 에치고 나가오카 번 등으로부터 명백한 배신 행위로 간주되어 주변 지역과의 사이가 틀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시바타 번은 메이지 4년(1871년) 7월, 폐번치현으로 인해 폐지되었다.

역대 번주[편집]

  1. 미조구치 히데카쓰(溝口秀勝) 재위 1598년 ~ 1610년
  2. 미조구치 노부카쓰(溝口宣勝) 재위 1610년 ~ 1628년
  3. 미조구치 노부나오(溝口宣直) 재위 1628년 ~ 1672년
  4. 미조구치 시게카쓰(溝口重雄) 재위 1672년 ~ 1706년
  5. 미조구치 시게모토(溝口重元) 재위 1706년 ~ 1719년
  6. 미조구치 나오하루(溝口直治) 재위 1719년 ~ 1732년
  7. 미조구치 나오아쓰(溝口直温) 재위 1732년 ~ 1761년
  8. 미조구치 나오야스(溝口直養) 재위 1761년 ~ 1786년
  9. 미조구치 나오토키(溝口直侯) 재위 1786년 ~ 1802년
  10. 미조구치 나오아키(溝口直諒) 재위 1802년 ~ 1838년
  11. 미조구치 나오히로(溝口直溥) 재위 1838년 ~ 1867년
  12. 미조구치 나오마사(溝口直正) 재위 1867년 ~ 187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