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아 공자 외젠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사부아카리낭 공 프랑수아 외젠
François-Eugène, Prince of Savoy-Carignan
1663년 10월 18일 - 1736년 4월 21일
Prinz-Eugen-von-Savoyen1.jpg
태어난 곳 프랑스 파리 수아송 저택
죽은 곳 오스트리아
복무 Flag of the Habsburg Monarchy.svg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주요 참전 대투르크 전쟁

대동맹 전쟁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 (1716년-1718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사부아카리낭 공자 프랑수아 외젠 (François-Eugène, Prince of Savoy-Carignan, 1663년 10월 18일1736년 4월 21일)[1]은 유럽 역사에서 가장 탁월하며, 성공한 군사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사부아 가의 귀족으로 파리에서 태어나 루이 14세의 프랑스 궁정에서 성장했다. 외젠은 교회에서 경력을 쌓아 주교가 될 예정이었으나, 그의 나이 19세때 군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루이 14세로부터 프랑스 군대에서 복무하는 것을 거절 당하자, 외젠은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합스부르크 군주국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외젠은 60년의 기간 동안 3명의 합스부르크 황제 레오폴트 1세, 요제프 1세카를 6세를 섬겼다. 외젠의 첫 활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은 1683년의 빈 공방전(Siege of Vienna)에서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벌인 것이고, 뒤이어 신성 동맹 전쟁(War of the Holy League)과 그 후 9년 전쟁에서는 그의 사촌인 사부아 공작(Duke of Savoy)과 함께 싸웠다. 그렇지만, 외젠의 명성을 드높인 것은 1697년 젠타 전투에서 오스만군을 상대로 압승을 거둔 것 때문이었다. 외젠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참가하는 동안 말버러 공작과 함께 협력하여 프랑스를 상대로 블렌하임, 오우데나르데말플라크의 전장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고, 특히 그는 나아가 북이탈리아의 제국군 사령관으로 출세해 1706년 투린에서 가장 명백한 승리를 얻었다.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 (1716년-1718년)에서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새로운 적개심을 갖고 시작한 페트로바라딘(Petrovaradin)와 베오그라드에서 승리를 거둬 그의 명성을 굳건하게 했다.

말년인 1720년까지 외젠의 영향력과 능숙한 외교술로 황제의 강력한 동맹을 확보하고 잘 조종하여 부르봉의 힘에 대항해 싸웠다. 그러나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했던 그의 말년은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동안 그의 마지막 전투에서 군의 총지휘관으로써 별로 성공적이지 못한 생애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에서 외젠의 명성은 여전히 확고했다. 그의 캐릭터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자도 있지만, 그가 위대한 업적을 남긴것에 대해서는 이론은 없었다:외젠은 합스부르크 제국을 도와 프랑스의 침략을 막아냈다; 또한 그는 서쪽으로 밀어닥친 오스만 제국을 격파해 오스만 제국의 점령지의 절반과 중부 유럽을 100년 만에 자유롭게 해방시켰다. 그리고 그는 예술의 위대한 보호자 중에 한 명으로 그가 건축한 유산은 오늘날 에서 볼 수 있다. 외젠은 1736년 4월 21일 72세의 나이로 자신의 저택에서 잠자는 도중에 죽었다.

초기 생애[편집]

그는 수아송 백작 외젠 모리스와 그의 아내 올림피아 만시니 사이에서 삼남으로 태어났다.

이미지 갤러리[편집]

더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외젠의 죽음을 4월 24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참조[편집]

첫 번째[편집]

두 번째[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