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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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근(1930년 ~ 경상남도 울주군)은 실로암교회의 장로이며 2011년 4월 7일까지 형제복지지원재단의 이사로 활동했다.[1] 현재는 3남 박천광씨가 물려받아 운영 중이다. 1980년대 그는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대안학교신영중학교, 신영고등학교1986년에 설립 하여 여전히 국가 지원금을 받고 있고 사위를 교장으로 두고 있으며 딸이 직접 운영을 하고있다.

생애[편집]

경상남도 울주군 강동면(현 울산광역시 북구 강동동)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 하고 입대 후 헌병 하사관을 지냈다.[2] 31세였던 1960년 7월에 장인이 세운 부산 남구 감만동에 있는 형제보육원에 드나들면서 사회 복지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62년 6월 군대를 제대 한 뒤 처가를 도와 부산남구 용당동에 462평짜리 건물을 신축 하였다.

1965년 7월 부산시로부터 아동 복지 시설 인가를 받아 국고 지원으로 보육원을 운영 했으며 1975년 7월에는 다시 부산시와 부랑인 일시 보호 위탁 계약을 맺고 국비 지원에 의지 하는 사회 복지 사업을 시작 하였다.

사건[편집]

그는 부랑인 선도를 명목으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을 끌고 가서 불법 감금시키고 강제노역을 시켰으며,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는 죽이고 암매장까지 했다. 이런식으로 12년동안 무려 500명 이상이 사망 했고,일부 시신은 300~500만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려갔다. 심지어는 자신의 땅에 운전교습소를 만들기 위해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했고,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시켰다. 1987년 3월 22일 사건 당일에는 구타로 1명을 죽였으며, 35명이 탈출했다.[3]그는 형제복지원의 직원 주영은 (당시 48세)등 4명과 함께 구속되었고,[4] 1989년 9월 14일에 징역 2년 6월형이 확정되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예전의 일이라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살인자 박인근이 세운 신영중고등학교에서 2012년에 무인도 체험 학생 2명이 익사 하고 복지재단 대출 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금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형제복지원은 없어지지 않고 형제복지지원재단으로 이름만 바뀌어 새로운 시설을 계속 운영 하였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누나는 성폭행·아빠는 정신병원' 살아남은 아이는 묻는다.
  2.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20400209210002&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2-04&officeId=00020&pageNo=10&printNo=20104&publishType=00020
  3.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발생
  4. 형제복지원 사건 抗訴審(항소심) 결심공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