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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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
RamsesIIEgypt.jpg
이집트 제19왕조의 제3대 파라오
재위 기원전 1279년~기원전 1213년
이전 왕 세티 1세
다음 왕 메렌프타하

람세스 2세(Ramses II, 기원전 1314년경 ~ 기원전 1224년, 혹은 기원전 1302년경 ~ 기원전 1212년)는 고대 이집트 제19왕조 제3대 파라오(재위: 기원전 1290년 ~ 기원전 1224년, 혹은 기원전 1279년 ~ 기원전 1212년)이다.

그의 치세 동안 이집트는 리비아, 누비아, 팔레스타인까지 세력을 확장해 번영하였다. 그는 호전적인 히타이트와 전쟁에서 명성을 얻었는데, 그 후 그들과 평화롭게 되었다. [1] 람세 2세, 라메세스 2세라고도 표기되었다. 람세스란 이름은 에 의해 태어났다는 의미를 가진 '라 메스 시스'의 그리스어 음이다.

생애[편집]

생몰연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24세에 즉위하여 66년간 통치한뒤 90세에 죽은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사이 첫 번째 왕비 네페르타리와 여러명의 왕비 및 측실과의 사이에서 현자(賢者)로써 명성이 높았던 카엠와세드, 후계자였던 메르에프타하을 시작으로 매우 많은 자식들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그들 대부분이 양자이며 왕의 아들이란 칭호를 하사받은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무엇보다 람세스왕의 전용 활이라 불리는 커다란 강궁이 남아 있는데, 왕 이외에는 아무도 당기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을정도로 뛰어난 전사였던 그가 많은 자식을 남기지 않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역시 그들은 왕의 친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치세 전반기에는 히타이트와 팔레스타인을 사이에 두고 세력을 다투었다. 기원전 1286년 카데쉬 전투에서 직접 출정하여 히타이트 왕 무와탈리 2세와 전투를 벌였다. 이집트는 카데쉬 전투에서 거짓정보에 속은 결과, 주력 군단이 괴멸당할정도의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후 전투의 결과에 대해서는 양측의 기록이 달라 아직까지 논란의 대상이다. 하지만 히타이트 세력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내지는 못했다. 양쪽은 서로 상대를 물리치지 못하고, 장기간 전쟁을 계속하던 중 람세스 2세의 재위 21년째인 기원전 1269년에 이집트와 히타이트 사이에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휴전하였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 왕녀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이것은 세계사에서 최초의 평화조약이라 평가했다. 또한 카데쉬 전투에 대한 람세스 2세의 승리선전은 이집트군의 군사제도 개혁을 방해했기에 훗날 재앙의 불씨로 남게 되었다.

람세스 2세는 또한 나일 제 1강을 넘어 누비아로 원정을 떠났다. 람세스 2세는 전승 기념비을 많이 세웠고, 현재도 기념비의 상당수가 남아있는 파라오가 되었다. 누비아는 후에 이집트에 동화되어 본가 이집트의 쇠퇴을 구원하는 형태의 왕조을 세우게 된다.

업적[편집]

그는 히타이트와 전쟁을 벌이기는 했지만 실리를 추구할 줄도 알아서 히타이트와 휴전을 맺어 50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또한 아부심벨 신전, 카르나크 신전, 라메세움 등의 거대한 건축물을 이집트 전역에 건설하기도 했다. [2]고대 파라오들에게 있어 자신의 업적을 후세에 알릴 수 있는 건축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의 람세스 2세[편집]

구약 출애굽기에 람세스 2세가 등장한다. 람세스 2세는 모세와 함께 세티 1세의 밑에서 영재교육을 받았으며 모세와는 시종일관 파라오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람세스 2세가 20대 초반이던 시기에 모세는 40살이였는데 이 무렵 모세는 동족인 이스라엘 민족이 노역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감독을 쳐 죽여 혁명을 획책하였다. 하지만 모세의 지지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모세는 파라오 계승권을 박탈당한 채 광야로 도주했다.

그 이후 람세스 2세가 파라오로 즉위하였으며 모세가 감독관을 쳐죽이고 도주하던 시기로부터 40년 후 모세는 야훼의 명령에 따라 다시 람세스 2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람세스 2세가 노동력 손실을 우려하여 해방요구를 거부하자 야훼는 람세스 2세를 초자연적인 10가지 재앙으로 굴복시킨다. 그래도 람세스 2세가 모세의 요구를 거절하자 모세는 자기 민족들을 이끌고 도주하였으며 람세스 2세는 이를 추격하지만 야훼가 모세를 통해 홍해를 바람으로 가르고 이스라엘 민족을 건너게 한다. 이를 뒤쫓던 람세스 2세는 갈라졌던 홍해가 다시 합쳐지자 더 이상 추격하지 못했다. 다만 구약의 파라오가 람세스 2세인지는 다소 논란이 있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Gerald Leinwand (1986). 〈Prologue: In Search of History〉, 《The Pageant of World History》. Allyn & Bacon, 13쪽. ISBN 978-0-205-08680-1 “Ramses II won fame for fighting the warlike Hittites, although he eventually made peace with them.”
  2. Gerald Leinwand (1986). 〈Prologue: In Search of History〉, 《The Pageant of World History》. Allyn & Bacon, 13쪽. ISBN 978-0-205-08680-1 “Ramses built many magnificent buildings, including the temple at Abu-Sim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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