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방군 최고 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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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사령부
Chef des Oberkommandos der Wehrmacht als Generalfeldmarschall.svg
국방군 최고 사령관 기(1941년 ~ 1945년).
활동 기간 1938. 2. 4. ~ 1945. 5. 8.
국가 나치 독일 나치 독일
소속 국방군 육군
종류 최고위 사령부
역할 총참모부
명령 체계 아돌프 히틀러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지휘관
총장 빌헬름 카이텔

국방군 최고 사령부(독일어: Oberkommando der Wehrmacht 오베르코만도 데어 베어마흐트[*], OKW)는 독일국방군 최고 지휘관인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기 위한 사령부이다. 1922년 기능을 정지했으나, 나치 독일의 총통 히틀러가 스스로 국방군을 직접 지휘하기 위해 1938년 다시 창설되었다.

창설과 역할[편집]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국방군의 최고 지휘권은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사람은 국방부 장관(Reichswehrminister)이었다. 1934년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한 후 히틀러는 수상과 대통령직을 겸무해서 국방국 최고 지휘권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외교에 있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국방부 상층부를 꺼림직하게 생각해 1938년 2월에 스캔들을 이유로 브론베르크 국방 장관과 육군 총사령관을 실각시켰다.

1938년 2월 4일, 히틀러는 자신이 직접 국방군(육군, 해군, 공군)을 지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후임 국방 장관을 임명하지 않고, 국방부의 국방군국(國防軍局, Wehrmachtamt)을 국방군 최고 사령부로 개명해 빌헬름 카이텔 대장을 임명했다. 이 직위는 국방군 최고 사령부 총장으로 장관과 동일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국방부 장관은 아니었다.

지휘의 최종적인 결재는 국방군 최고 지휘권자 히틀러, 국방군 최고 사령부 총장, 육군 총사령관, 해군 총사령관, 공군 총사령관, 친위대 제국 지도자, 외교부 장관 등이 출석하는 총통부에서 행해졌다.

빌헬름 카이텔은 이 회의에서 국방군 최고 지휘권자인 히틀러의 작전명령에 반대를 표명하는 참모 장교나 야전 군사령관을 눌렀다. 그래서인지 카이텔은 종전까지 국방군 최고 사령부 총장의 지위에 계속 머무를수 있었다.

국방군 최고 사령부 본부는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에 베를린 남쪽 24km 위치인 뷘스도르프(Wnsdorf)에 완성한 거대한 지하시설로 옮겨졌다(암호명으로 'May Bach II'라고 불렸다.). 제2차 세계 대전 개전 후에는 히틀러는 최전선 근처의 지휘 사령부에 머물렀으로, 실질적으로는 히틀러가 위치하는 곳이 국방군 최고 사령부가 되었다. 베를린의 총통 관저, 베르히테스 가덴의 산장 등 여러 곳에 옮겨갔다.

조직[편집]

국방군 최고 사령부는 6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 국방군 일반국 : Amtsgruppe Allgemeine Wehrmachtangelegenheiten
  • 국방군 정보부 : Amtsgruppe Ausland / Abwehr
  • 국방군 작전부 : Wehrmacht-Fhrungsamt (1940년에 개명 : Wehrmachtfhrungsstab)
  • 국방군 중앙 관리부 : Wehrmacht-Zentral-Abteilung
  • 국방군 경제국 : Wehrwirtschaftsamt
  • 국방군 사법부 : Justizdienststelle beim Chef des OKW mit Wehrmacht-Rechtsabteilung (WR), dort auch die Wehrmachtuntersuchungsstelle (WuSt)

이밖에도, 국방군 최고 사령부 군법회의와 퇴직군인 보호 법정이 있었다.

항복 후[편집]

나치 독일 시대의 참모 본부와 국방군 최고 사령부는 뉘른베르크 재판의 판결에 의해 범죄조직으로 판결되지 않았다. 국방군 최고 사령부에서 근무한 장교들은 대체로 동독 인민군과 서독 연방군으로 흡수되었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