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대운하(중국어 간체: 大运河, 정체: 大運河, 병음: Dà Yùnhé)는 중국의 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운하이다. 베이징-항저우 대운하(중국어 간체: 京杭大运河, 정체: 京杭大運河, 병음: Jīng-Háng Dà Yùnhé)라고도 한다. 고대의 운하로 일부는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진 곳도 있다. 대체로 진푸선과 병행해서 달리고 있다. 수나라의 대운하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지만 그 도정은 동일하지 않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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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편집]
604년 수나라의 양제가 수도를 장안에서 낙양으로 옮겼다. 다음 해인 605년 북경에서 낙양을 거쳐 항주를 잇는 운하의 건설을 명했다. 기존의 작은 운하와 해하, 황하, 회하, 장강, 전당강을 잇는 1,794km의 운하를 완성하는 데 6년이 소요되었으며, 무려 1억 50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동원하였다. 이공사로 수양제의 폭정이 드러났고 나중에 수나라가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다. 대운하는 수나라를 이은 당나라와 송나라 때에도 중요한 수로가 되었다. 대운하는 원나라 때 다시 대공사를 하여 황하 유역 동안진과 위하 유역의 임청을 잇는 회통 운하라는 새로운 운하가 건설되었다. 1411년 명나라 때에는 명나라 공조 대신 송례가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대운하를 6개 주요 부분으로 나누었다.
- 북경 주변 통현을 잇는 짧은 수로
- 백하와 천진을 잇고 다시 위하 유역 임청까지 운하를 파서 이어지는 강
- 산동성에 있는 구간
- 서주에서 황하의 남쪽 진로를 따라 청강까지 뻗은 구간
- 청강에서 옛 산양 운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장강 유역 금강까지 이어진 구간
- 강남 운하 라 불리는 장강 남쪽 구간 운하로 장강 남동쪽에서 소주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항주까지 이어지는 320km의 운하
이렇게 6부분으로 이루어진 대운하는 19세기에는 몇 차례 홍수로 제방이 무너져 큰 문제가 일어났고 1934년 국민당 정부가 청강과 장강 구간의 운하를 수리했다. 1958년에는 공산당 정부가 600t 선박이 지나갈 수 있도록 다시 수리했고 근대식 갑문과 64km의 새로운 운하를 연결하고 이렇게 여러 번 준설하고 보강하여 지금의 대운하가 완성되었다.
건설의 효과 [편집]
대운하가 개통되어 경제적으로 우월했던 남쪽이 북쪽과 연결되어 중국 전체의 유통이 원활해졌다. 그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인 영향은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대운하의 건설에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괴롭혔기 때문에 수나라는 곧 멸망하고 당나라가 건국되었다. 사실 당나라야말로 대운하로부터 가장 큰 이익을 얻었다. 자체 생산력으로는 식량을 충당할 수 없었던 장안(長安)이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었던 것은 대운하를 통한 물자 수송 덕분이었다.
대운하의 개통으로 말미암아 개봉이 교통의 중심지로 부상하여 경제적인 중요성이 높아지고, 이후 북송의 수도가 되었다. 개봉 성의 성곽 중심을 운하가 관통하고 있었다.
같이 보기 [편집]
주석 [편집]
- ↑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대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