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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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金辰明, 1958년~ )은 대한민국의 대중 소설가이다. 부산에서 태어났다. 한국외대 법학부 졸업

미국에서 활동한 실존 재미 물리학자 이휘소를 소재로 삼아, 그가 박정희 정권 말기의 핵무기 개발에 관련했다는 가설을 주 내용으로 하는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써서 일약 유명해졌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그는 이휘소 박사가 핵개발에 관여했다고 서술했던 점에서 이휘소 박사의 유족들이 이휘소 박사는 생전에 핵개발과 무관했다는 점에서 그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후에도 그의 소설은 많은 팬들을 사로잡으며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북핵문제와 미국과의 문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출판되었고, 그의 소설을 역사 그 자체라고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를 극우민족주의자나 민족주의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등 비판하는 입장도 있어서 지금도 논란 중 이다.

[편집] 학창시절

김진명 소설가는 고등학교 때도 입시공부는 팽개치고 역사책이나 철학책을 읽고 친구들에게 강의를 하려 들 만큼 책을 좋아했고, 대학 때도 고시 공부는 팽개치고 매일 도시락 두 개를 싸든 채 남산도서관에 처박혀 철학 사회학 종교에 물리학 화학 천문학 수학책까지. 미친듯이 읽어제꼈을 만큼 책을 좋아했던 것이 그가 보인 유일한 `싹수` 였다고 할 정도로 독서광이었다고 한다.[출처 필요]

[편집] 소설가가 되기까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고 나서는 `일하기 싫어` 바둑 두고 노는 룸펜 생활을 한 6년 동안 했다.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에 이름만 올려놓고 그렇게 놀다가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기계제조와 환경오염 방지 기술 개발에 힘을 쏟은 그의 회사는 그러나 이런저런 어려움에 부딪혀 3년 만에 망하고 만다. 두 번의 실패를 통해 집안의 재산도 몽땅 날렸다. 집 두 채, 아버지 집, 땅. [출처 필요]


그러나, 사업 실패는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사업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해외 출장을 다니다 보니 대한민국 꼴이 너무 한심해, 김포공항으로 돌아 올 때면 늘 가슴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 때의 고민이 그의 민족주의적 소설 구성의 밑천이 되었다.

그의 소설 쓰기에는 불행한 가족사도 한 몫 했다.[출처 필요] 1980년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군에 입대한 형이 광주민주항쟁 때 영내에서 데모를 했다고 한다. 결과는 뻔해서 숨만 붙어 있는 채로 가족이 인계 받았는데, 그 후 7년간을 멍하니 있다가 저 세상사람이 되고 말았다. 김진명은 형의 죽음을 보면서 그냥 먹기 위해서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고민들이 합쳐져 원고지에 처음 쓴 것을 출판계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책을 내면 좋겠는데 글솜씨가 서투르니 많이 고쳐야겠다'고 했다.[출처 필요] 그렇게 나온 것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전신인 『플루토늄의 행방』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출판사의 손을 거쳤지만 그가 볼 때도 불만족스러웠다. 결국 사업을 접고 난 김진명이 직접 이 소설을 개작해서 펴낸 것이 『무궁화꽃......』이었다.

[편집]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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