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오 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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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성가는 로마 가톨릭의 전통적인 단선율 전례성가의 한 축을 이루는 성가로, 로마 전례 양식 때 사용되는 무반주의 종교 음악이다. 그레고리안 성가라고도 부른다. 원래 9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 유럽 지역에 구전되던 음악들을 모아 채보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대교황 그레고리오가 직접 작곡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카롤링거 왕조 시대 로마와 갈리아의 성가를 통합, 편찬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타당하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발전하면서 교회선법이 성립하여 그레고리오 성가는 8개의 선법으로 체계화되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적 특징을 들자면, 인시피트(첫 머리글자)와 종지, 멜로디의 중심이 되는 낭송음을 사용한다는 것과 센토니제이션으로 불리는 기존의 멜로디를 전용하는 기법에 따라 발전한 음악 어법을 들 수 있다. 음계는 6음음계가 사용되어 현대의 온음계에 포함되는 소리와 현재의 변로에 해당하는 소리를 사용한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악보는 전통적으로 네우마라는 독특한 기보법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1] 또 그레고리오 성가는 다성음악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역사적으로 성당에서는 성인 남성이나 소년 성가대가, 수도회에서는 수사나 수녀들이 불러 왔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서방 교회의 각 지역 고유의 성가를 정리해 로마 가톨릭의 공식적인 성가로서 로마 전례 양식의 미사나 수도원의 성무일과의 고유한 노래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는 현지어를 사용하는 전례가 용인된 데다가 그레고리오 성가를 반드시 불러야 할 의무도 없기 때문에, 전례음악으로서의 그레고리오 성가는 점차 각국 언어의 성가에 밀려나고 있는 추세다. 한편 로마 교황청에서는 여전히 그레고리오 성가가 전례에 가장 합당한 음악 형태라는 견해이다.[2]
20세기 이후에는 음악학의 대상으로 그레고리오 성가를 연구한다.
[편집] 순서
그레고리오 성가는 미사 성제(聖祭)를 위한 성가를 모은 '그라두알레'와, 성무일과(聖務日課)의 성가집인 '안티포날레'로 크게 나눌 수가 있다. 노래미사의 순서로는,
- 사제의 입장시에 성가대가 부르는 입제창(入祭唱)인 인트로이투스
- 교인이 부르는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키리에
- 최초의 1절을 사제가 부르고 뒤를 성가대가 계속하는 영광의 찬가 글로리아
- 기도와 성서의 낭독 뒤에 전창자(前唱者, centor)와 교인이 노래하는 전례성가의 승계송(昇階誦) 그라두알레와 환희에 찬 찬송의 할렐루야가 들어가며, 슬픔의 날에는 영송(詠誦)인 트락투스가 쓰인다. 이 세 가지는 유대의 교회음악에서 직접 계승된 부분으로서 전창자와 교인과의 시편응창(詩篇應唱)의 형식으로 노래된다.
- 신앙선언(信仰宣言)의 크레도
- 빵과 포도주의 축원(祝願)과 함께 부르는 봉헌송(奉獻誦) 오페르토리움
- 사제만 부르는 서창(敍唱) 프레파치오
- 감사의 찬가 상투스와 3성송(三聖誦) 베네딕투스
- 주님의 기도
- 평화의 찬가 아그누스 데이
- 성스러운 비적(秘蹟)에 이어지는 영성체송(領聖體誦)
- 마지막 기도 종제송(終祭誦)
이 가운데에서 2, 3, 5, 8, 10의 다섯 부분은 미사통상문(通常文, 不變部)이라 하며, 1, 4, 6, 11은 그날에 따라 식전의 성격과 함께 텍스트와 미사곡이 달라지는 미사고유문(可變部)으로서, 이 두 부분은 위의 엄격한 순서에 따라 교묘하게 배분되어 전례의식(典禮儀式)을 형성한다. 이처럼 정비된 형태는 대략 12세기에 굳어졌다고 생각된다. '미사통상문'을 일관하여 작곡하는 것은 고딕 시대 이후 미사곡의 습관으로 되었다.[3]
[편집] 보급
보조신부 요한은 그의 저술 <성그레고리오전>에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미사용 성가집 안티포나리움을 편찬하여 스콜라 칸토룸을 설립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성가를 편찬함에 있어 그것을 바르게 잘 연주토록 하기 위하여 라테라노 대궁전 근방에 집을 주어 스콜라 칸토룸이라 하는 기숙제(寄宿制)의 성가 가수 양성학교를 세워 가수교육을 실시하였다. 스콜라 칸토룸은 학교인 동시에 성가대를 뜻하며, 예배 중인 신도가 해야 할 역할을 성가대가 대행하게 되었다. 당시엔 아직 기보법이 발달되지 못했으므로 그것들은 모두 암기해야만 했으며 가수들은 오랜 기간을 두고 스콜라 칸토룸에서 엄한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교황은 여기서 교육시킨 성가 가수와 합창장을 각지의 교회로 파견하여 그레고리오 성가의 보급에 힘썼다.[4]
[편집] 주석
- ↑ 기보법의 전개에 대해서는 Dolmetsch online, accessed 4 July 2006
-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 Catholic Encyclopedia에도 이 문제는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plainchant article 이 견해는 베네딕토 16세에게 지지받는 교황청의 정식 견해이다.Catholic World News 28 June 2006
- ↑ 글로벌 세계대백과, 〈서양 중세음악-그레고리오 성가〉
- ↑ 글로벌 세계대백과, 〈서양 중세음악-그레고리오 성가의 보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