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고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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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shun-Mon.JPG

교토고쇼(일본어: 京都御所)는 일본 교토 부(京都府) 교토 시(京都市) 사쿄 구(上京區)에 있는 일본의 황궁이다.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중기부터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초기까지 역대 천황이 주거하였다.

개요[편집]

1869년(메이지 2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으로 천황이 도쿄(東京)의 고쿄(皇居, 옛 에도성江戸城)으로 옮겨 갈 때까지(도쿄행행東京行幸) 역대 천황의 거처이자 집무소였다. 1877년(메이지 10년) 도쿄의 고쿄에 있던 메이지 천황이 교토를 방문했을 때, 천황이 도쿄로 간지 불과 10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고쇼의 주변 시설 및 주변 환경이 황폐해진 것에 안타까워하며 "교토고쇼를 보존하여 옛 모습을 유지하라"는 명을 궁내청에 내렸다고 한다. 1945년(쇼와 20년)에는 전시중의 건물 소개(疎開)로 고쇼 건축의 절반 가까운 건물이 보존을 위해 해체되기도 했다.

메이지 이후로는 교토 고고(일본어: 京都皇宮 (きょうとこうぐう))라 불리게 되었으며, 국유재산으로 일본 궁내청(宮内廳)에서 관할하는 황실용 재산으로 분류되어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오미야 고쇼(大宮御所), 센토 고쇼(仙洞御所)와 함께 궁내청이 관리하고, 그 주위의 국민공원인 교토고엔(京都御苑)을 환경부가 관리한다. 북쪽으로 인접한 이마데가와미치(今出川通)를 낀 도시샤 대학(同志社大学)과 도시샤 여자대학(同志社女子大学)이 있다(두 대학 모두 이마데가와 캠퍼스). 교토 시민들은 교토교소와 이 교토고엔까지 모두 묶어서 '고쇼(御所)'라 부르는 경우가 많으며, 외국의 궁궐과는 달리 담은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다.

원래 헤이안쿄(平安京)라 불린 지금의 교토로 천도한 직후의 정식 황궁 즉 다이리(內裏)는 지금의 교토고쇼에서 훨씬 서쪽에 위치한, 헤이안쿄의 한가운데 부근에 해당하는 지금의 JR니시일본 니조 역 근처의 센본마루타 정(千本丸太町) 교차점 북동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센고쿠 시대의 전란을 거치면서 불타 없어져 황폐해지면서 사토다이리(里内裏)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교토고쇼가 위치해있던 사토다이리는 쓰치미카도 히가시노토인 도노(土御門東洞院殿)라 불렸다. 후에 북조(北朝)라 불리게 되는 지묘인통(持明院統)의 천황이 대대로 거주하는 궁궐이 되었다. 덧붙여 남조(南朝)라 불린 다이가쿠지통(大覚寺統)의 천황의 고쇼는 니조 토미 소로(二条富小路)의 다이리였다.

쓰치미카도 히가시노토인 도노의 사토다이리는 겐코(元弘) 원년/겐토쿠(元徳) 3년(1331년)에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이 교토를 탈출하고 가마쿠라 막부가 옹립한 고곤 천황(光厳天皇)이 이를 '사토다이리'라 한 이래로 메이지 천황(明治天皇)의 도쿄 행차 때까지 약 550년간에 걸쳐 황궁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의 교토고쇼는 쓰치미카도 도도인 다이리 자체가 아니라 이곳을 바탕으로 확충된 것으로, 처음에는 1개 정(町) 정도에 불과했던 영역은 무로마치 막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満)에 의해 그 부지가 확대되어,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정비가 이루어져 지금의 모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에도 시대(江戸時代)에만 게이초(慶長) 연간(1613년), 간에이(寛永) 연간, 조오(承応) 연간, 간분(寛文) 연간, 엔포(延宝) 연간, 호에이(宝永) 연간(1709년), 간세이(寛政) 연간(1790년), 안세이(安政) 연간(1855년) 이렇게 여덟 번에 걸쳐 재건이 이루어졌는데, 옛 궁을 헐고 재건축한 게이초 연간과 간에이 연간의 공사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화재로 인해 소실된 뒤에 재건한 것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재건된, 현재 모습의 다이리는 에도 말기인 안세이 2년(1855년)에 헤이안 양식에 따라 재건된 것으로 안세이 다이리(安政内裏)로도 불리며, 지금의 면적도 에도 말기에야 확보된 것이다. 현재 넓이는 약 20.2ha에 이른다.

보통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궁내청에 사전에 참관 신청을 해야 관람할 수 있으며, 봄과 가을에는 일반에 공개되는 특별기간이 있다.

주요 건물로는 자신전(일본어: 紫宸殿 (ししんでん)), 청량전(일본어: 淸涼殿 (せいりょうでん)), 고고쇼(일본어: 小御所 (こごしょ)), 오가쿠몬쇼(일본어: 御学問所 (おがくもんじょ)), 오쓰네고덴(일본어: 御常御殿 (おつねごてん)), 고슌(일본어: 迎春 (こうしゅん)), 오스즈미쇼(일본어: 御涼所 (おすずみしょ)), 고고구오쓰네고덴(일본어: 皇后宮御常御殿 (こうごうぐう おつねごてん)), 와카미야(일본어: 若宮 (わかみや)) ・ 히메미야고덴(일본어: 姬宮御殿 (ひめみやごてん)), 히교샤(일본어: 飛香舎 (ひぎょうしゃ)) 등이 있다.

또한 고쇼와 가까운 오미야 고쇼는 고미즈노오 천황(後水尾天皇)의 중궁(中宮)이었던 도후쿠몬인(東福門院)을 위해 지어진 궁에서 비롯되었는데, 현재 건물은 고메이 천황(孝明天皇)의 뇨고(女御)로서 훗날 에이쇼 황태후(英照皇太后)로 추호된 구조 아사코(九條夙子)를 위해 지어진 것으로 1867년(게이오 3년)에 완성된 것이다.

현재는 천황이나 황후, 황태자 및 황태자비가 교토에 머무를 때(행차 및 여행의 목적으로) 숙박이나 국빈 접대 시의 숙박처로서 사용되고 있다.

즉위식[편집]

일본 천황의 즉위식인 즉위의 예(即位の礼)는 대대로 교토고쇼의 자신전에서 이루어졌는데, 메이지 유신으로 천황이 도쿄로 옮겨 가면서, 1889년(메이지 22년)에 제정된 구황실전범(舊皇室典範) 제11조에 따라 즉위식에서 대상제(大嘗祭)는 교토에서 거행하도록 규정했고, 다이쇼 천황(大正天皇)과 쇼와 천황(昭和天皇)도 교토고쇼에서 즉위에 관한 일련의 의식이 거행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 제정된 현재의 황실전범(皇室典範)에서는 교토에 가서 행하라고 규정한 장소에 대한 규정이 없어졌으며, 1990년(헤이세이 2년)에 지금의 천황 아키히토는 일본 역사상 최초로 도쿄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즉위할 때 천황이 앉는, 그의 즉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천황의 정식 어좌(御座)인 고어좌(高御座) 및 황후의 정식 어좌인 어장대(御帳台)는 교토고쇼의 자신전에 상설되어 있어, 아키히토 천황의 즉위식에서 교토고쇼의 자신전에서 행하던 「정전(正殿)의 의(儀)」는 이 고어좌와 어장대를 해체해서 도쿄까지 옮겼다고 한다.

좌표: 북위 35° 01′ 31″ 동경 135° 45′ 44″ / 북위 35.02528° 동경 135.76222° / 35.02528; 135.76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