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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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신씨 (高靈 申氏)
관향 고령
시조 신성용 (申成用)
주요 중시조
주요 집성촌 충북 청원군, 전남 여천군, 전남 고흥군, 경북 고령군
주요 인물 신숙주, 신윤복, 신채호
인구(2000년) 116,966명

고령 신씨(高靈 申氏)는 한국의 성씨이다.

목차

[편집] 시조

고령 신씨(高靈 申氏)의 시조 신성용(申成用)은 본래 신라 공족(公族)의 후예로 고려에서 지방 향리인 호장이 되고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에 올랐다. 그로 인하여 후손들은 누대로 정착 세거해 온 고령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게 되었다.

[편집] 본관

고령은 경북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옛 대가야국의 중심지인데 757년(신라 경덕왕)에 고양군이 되었고, 그후 조선 태종때 고양군의 고와 영천현의 영을 따서 고령현이라 하였으며, 1895년(조선 고종)에 성주 9면과 현풍 3면을 병합하여 고령군이 되었다.

[편집] 분파

신성용의 7세손에서 암헌공파(巖軒公派)·정언공파(正言公派)·감찰공파(監察公派)의 3파로 갈라졌다.

  • 암헌공파(巖獻公派) - 신장(申檣)
    • 서윤공파(庶尹公派) - 신맹주
    • 순창공파(淳昌公派) - 신중주
    • 문충공파(文忠公派) - 신숙주
    • 안동공파(安東公派) - 신송주
    • 귀래정공파(歸來亭公派) - 신말주
  • 정은공파(靜隱公派) - 신평(申枰)
    • 정재공파(靖齎公派) - 신맹정
    • 죽재공파(竹齋公派) - 신중정
    • 성오재공파(省悟齋公派) - 신숙정
  • 감찰공파(監察公派) - 신제(申梯)
    • 사성공파(司成公派) - 신자교
    • 부사공파(府使公派) - 신자강
    • 사정공파(司正公派) - 신자동
    • 사직공파(司直公派) - 신자정
  • 시중공파(侍中公派) - 신인기(申仁杞)

[편집] 인물

시조의 5세손 신덕린(申德隣)이 고려말에 좌사의대부와 예조와 공조판서 판서에 이르렀고,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공조참의를 역임한 아들 신포시(申包翅)를 데리고 개성 두류산에 은거하며 절의를 지키다가 다시 광주 서석산으로 옮겨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 신포시(申包翅)의 아들 신장(申檣), 신평(申枰), 신제(申梯) 3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맏아들 신장(申檣)은 직제학과 부제학을 거쳐 공조참판에 올라 남산지곡을 지었으며, 오랫동안 대제학에 있었고, 둘째 아들 신평(申枰)은 사간원의 정언을 역임했고, 막내 신제(申梯)는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신장(申檣)의 아들 신맹주(申孟舟), 신중주(申仲舟), 신숙주(申叔舟), 신송주(申松舟), 신말주(申末舟) 5형제는 모두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나갔다. 신숙주(申叔舟)는 6대 왕조를 거치면서 대제학과 병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에까지 올라 조선조의 기반을 굳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명상으로 추앙되었다. 신광수(申光洙: 첨지중추부사 신호의 아들)는 조선 영조 때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로 제주도에 가서 그 곳의 풍토·산천·조수·항해 상황 등을 적은 부해록을 지어 문명을 떨쳤고 그의 대표작으로 당시에 널리 애송되었던 관산용마를 지었다. 근세인물로는 풍속화가로 유명한 신윤복(申潤福)과 사학자 신채호(申采浩), 그리고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신홍식(申洪植) 등이 있다.

[편집] 집성촌

  • 충북 청원군 가덕면 청룡리, 행정리, 인차리
  • 전남 여천군 쌍봉면 해산리
  • 전남 여천군 화정면 적금리
  • 전남 고흥군 도양읍 가야리
  • 전남 고흥군 점암면 대용리, 남양면 망주리
  • 전남 고흥군 동강면 마수리
  • 경북 고령군 운수면 운산동

[편집]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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