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위 (1454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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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曺偉, [[1454년]] ~ [[1503년]])는 [[조선]]의 학자이다. 자는 태허, 호는 매계, 본관은 [[창녕 조씨|창녕]]이다. [[조선 성종|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성종의 명으로 [[김종직]]의 문집을 편찬할 때 <조의제문>을 실어 [[무오사화]]의 화근이 되었다. 하정사(賀正使)로 [[명나라]]에 다녀오다 잡혀 [[의주]]와 [[순천시 (전라남도)|순천]]에 유배되어, 그 곳에서 병으로 죽었다. 학문이 넓고 깊었고, 문장이 뛰어나 많은 제자들이 있었다. 저서로 <매계집>이 있으며, 글씨로 <조계문 묘비>가 있다.
'''조위'''(曺偉, [[1454년]] ~ [[1503년]])는 [[조선]]의 학자이다. 자는 태허, 호는 매계, 본관은 [[창녕 조씨|창녕]]이다. [[조선 성종|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성종의 명으로 [[김종직]]의 문집을 편찬할 때 <조의제문>을 실어 [[무오사화]]의 화근이 되었다. 하정사(賀正使)로 [[명나라]]에 다녀오다 잡혀 [[의주]]와 [[순천시 (전라남도)|순천]]에 유배되어, 그 곳에서 병으로 죽었다. 학문이 넓고 깊었고, 문장이 뛰어나 많은 제자들이 있었다. 저서로 <매계집>이 있으며, 글씨로 <조계문 묘비>가 있다.



2010년 10월 17일 (일) 18:51 판

조위(曺偉, 1454년 ~ 1503년)는 조선의 학자이다. 자는 태허, 호는 매계, 본관은 창녕이다.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성종의 명으로 김종직의 문집을 편찬할 때 <조의제문>을 실어 무오사화의 화근이 되었다. 하정사(賀正使)로 명나라에 다녀오다 잡혀 의주순천에 유배되어, 그 곳에서 병으로 죽었다. 학문이 넓고 깊었고, 문장이 뛰어나 많은 제자들이 있었다. 저서로 <매계집>이 있으며, 글씨로 <조계문 묘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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