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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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기는 가장 바깥에 입는 겉옷으로 동정과 깃, 소매 폭 등이 저고리에 비해서 넓다. 원래 한국인들은 저고리 위에 '[[도포|포]]'라는 다양한 겉옷을 입었으나 점차 두루마기가 널리 사용되었다. 여자들은 방한용으로 입기도 한다. 예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외출시에는 두루마기를 꼭 입었고, 의식이 옥내에서 거행되더라도 저고리 차림나 마고자 차림이 되면 예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세배]], [[차례]], [[제사]] 등에는 항상 두루마기를 입어야 한다. <ref name=cj>[http://www.cjstory.com/story/story_view.html?cont_id=20091100204900 맷시나는 우리 옷, 구석구석 정겨워라], 생활 속의 이야기 151호 14쪽, 2009년, CJ제일제당</ref>
두루마기는 가장 바깥에 입는 겉옷으로 동정과 깃, 소매 폭 등이 저고리에 비해서 넓다. 원래 한국인들은 저고리 위에 '[[도포|포]]'라는 다양한 겉옷을 입었으나 점차 두루마기가 널리 사용되었다. 여자들은 방한용으로 입기도 한다. 예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외출시에는 두루마기를 꼭 입었고, 의식이 옥내에서 거행되더라도 저고리 차림나 마고자 차림이 되면 예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세배]], [[차례]], [[제사]] 등에는 항상 두루마기를 입어야 한다. <ref name=cj>[http://www.cjstory.com/story/story_view.html?cont_id=20091100204900 맷시나는 우리 옷, 구석구석 정겨워라], 생활 속의 이야기 151호 14쪽, 2009년, CJ제일제당</ref>


행전은 한복에서 발싸개로 한복 바지의 넓은 밑단을 정리하기 위해 입었다.
행전은 한복에서 발싸개로 한복 바지의 넓은 밑단을 정리하기 위해 입었다. 오늘날에는 입지 않는다.


여름 남자 한복에는 고의와 적삼, 홑조끼, 홑두루마기가 있었다.
여름 남자 한복에는 고의와 적삼, 홑조끼, 홑두루마기가 있었다.

2010년 7월 25일 (일) 21:26 판

당의

한복(韓服, 조선말: 조선옷)은 한민족 고유의 옷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일상복으로 한복을 입는 경우는 드물며, 활동에 편리한 생활한복을 입기도 한다.

역사

한복의 역사는 우선 삼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에는 대체로 유(저고리), 고(바지), 상(치마), 포(두루마기)를 중심으로 관모(모자), 대(허리띠), 화(신발)가 더해졌다 저고리가 엉덩이까지 내려올 만큼 길고, 바지의 통도 넓었으며 남성여성이 함께 입는 남녀 공용이었다.[출처 필요] 남북국 시대에는 우리나라 고유의 포는 서민들이 주로 입었으며, 귀족들은 평상복으로만 입었다. 여성들의 새로운 옷으로는 반비(半臂)가 있었는데,주로 귀족들이 저고리 위에 덧입었다 고려 시대에는 복식 구조가 크게 변했다. 특히 귀족층이나 지배층에서는 중국 옷을 그대로 받아들여 입고, 서민층에서는 우리 고유의 복식을 계승하여 입어 복식의 이중 구조가 나타났다 조선 시대에는 우리 고유의 복식이 서민복으로 뿌리 깊게 이어졌다. 중기나 후기에 들어서면서 한층 단순해지고 띠 대신 고름을 매기 시작하였으며, 두루마기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말기에는양반과 서민의 옷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졌다. 특히 여자 저고리는 후기로 가면서 길이가 짧아져 오늘날과 거의 같은 모양이 되었다. 마고자를 입기 시작하였고 서양 문물의 영향으로 조끼를 입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여자들의 저고리가 짧아져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제헌 국회 선거 때만 해도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는 사람들이 군 지역은 물론 서울특별시 등 대도시에도 매우 많았다. 6.25 전쟁 이후 한복을 일상복으로 많이 입지 않게 된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한복을 명절이나 특수한 날에만 입게 되었으며,사람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생활 한복이 보급되기도 하였다. 청학동에서는 아직도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고 있고, 국악고등학교, 국악중학교, 민족사관고등학교, 태장고등학교에서 교복으로 입고 있다. 택견 무술에는 하얀 한복을 입는 것이 통례이며, 첫돌, 환갑, 칠순, 팔순 등의 일부 생일에는 생일을 맞은 사람이 입기도 한다. 최근 한국의 중, 고등학교 가정 실습 시간과 유치원 생일잔치에서 한복을 입는 경우가 급격히 늘고 있으며, 외국인은 물론 재외 교포 (대부분 미국, 일본, 중국)들도 한복을 입는다. 북한에서는 차례 지낼 때 대부분이 한복을 입는다.[출처 필요] 88 올림픽 때의 유도 선수 김재엽, 배드민턴 선수 이용대이효정, 피겨 선수 김연아 등 운동 선수들도 한복을 입은 적이 있다.

한복의 종류

  • 혼례복 (婚禮服) 신랑·신부는 예복, 참석자들은 정장을 한다. (한복을 입고 결혼식에 참석하는 남자의 경우에는 두루마기까지 전부 차려 입는 것이 예의) 전통 혼례는 신부는 다홍치마, 연두색 회장저고리원삼이나 활옷을 입고 큰머리를 얹고 용잠을 꽂으며 도투락 댕기를 늘이고 화관이나 족두리를 쓴다. 거기다 한삼을 길게 늘여 손을 가린다. 신랑은 바지·저고리·조끼·마고자·옥색 두루마기·관복·각대·사모를 쓰고 목화를 신으며 포선을 손에 든다. 최근에는 혼례복에 두루마기를 입지 않는 경향이 있다.[1] 현재는 폐백 때 많이 입는다.
  • 구군복 (具軍服) 조선시대에 무관에 해당되는 관직을 가진 벼슬아치나 지방의 수령이 입는 한복. 오늘날의 장교 정복에 해당되는 복장으로 등급에 따라 노란 색에 소매만 붉은 색의 두루마기에 검은 색의 조끼를 걸친 것과 파란 색에 소매만 붉은 색의 두루마기에 검은 색의 조끼를 걸친 종류 등이 있다. 구군복을 입게 되면 머리에는 전립을 쓰게 된다. 간혹 문관들도 구군복을 입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드물다. 오늘날의 구군복은 각종 행사 때에만 입는다.
  • 곤룡포 (袞龍袍) 조선시대의 임금이 시무복으로 입던 옷으로 일반 관복과 그 디자인이 비슷하지만 가슴에는 금색 실로 용을 수놓았으며 사모와 같이 입는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결혼식이나 각종 행사때에만 입는다.
  • 관복 (官服) 조선시대의 문무백관들이 입던 옷. 무관의 경우 가슴에 호랑이를, 문관의 경우 가슴에 학을 그려놓았으며 당상관은 두마리, 당하관은 한 마리만 그려놓았다.
  • 서민복 (瑞民服) 조선시대의 서민들이 입던 옷.

한복의 구성

남자 한복

남자 한복은 저고리, 바지, 마고자, 두루마기, 행전으로 이루어지며 외출시나 세배, 차례, 제사 등 의례에는 두루마기를 반드시 입는다. [2]

저고리는 본래 적고리라고 불리었는데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저고리를 입었다. 남자의 저고리는 형태나 구조의 변화가 별로 없었고 여자의 저고리에 비해 직선적으로 만들어진다. 남자 저고리는 대부분 민저고리이나 15세 정도까지 입는 색동저고리도 있다. (과거에는 7세까지만 입었으나 현재 조혼 금지로 인해 15세까지로 늘어났다.)

한복 바지는 아랫도리에 입는 옷으로 고대에는 남자와 여자 모두 바지를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조선시대에는 남자는 겉옷으로 입는 반면에 여자는 속옷으로만 바지를 입게 되었다. 한복 바지는 통이 넓어서 허리끈을 매어서 고정시킨다. 왼손으로 바지춤을 잡고 오른 손으로 바짝 당겨 왼쪽으로 접어 잡아 맨다. 한복의 바지의 발목 즉 바짓부리를 묶는 끈을 대님이라고 하는데 명주처럼 얇은 옷감을 주로 사용하는데 개량된 한복에서는 단추나 매듭을 이용하기도 한다. 한복 바지의 길이는 서양식 바지보다 길어서 앉아서 생활을 하는 한국인은 더 편리하고 여유가 많아 풍성하다. 전통적으로 바지는 문양이 없다.

마고자 (마고자의 색깔은 남자 나이와 관련이 깊은데, 10~30대에는 남색 마고자를, 40대 이상은 자주색 마고자이다.)는 저고리와 조끼 위에 입는 옷으로 남녀 모두 입는 겉옷인데, 남자들은 6월, 7월, 8월, 9월 (일부는 10월 초·중순)의 여름이 아니면 반드시 입는다. 저고리보다 길이가 조금 더 길고 목 부분은 많이 파여 있어 깃과 동정을 따로 붙이지 않는다. 고름 대신에 단추를 달아 입었는데 단추로 멋을 낸다. 일부 사람들은 배자를 채용하여 아예 마고자를 입지 않기도 한다.

두루마기는 가장 바깥에 입는 겉옷으로 동정과 깃, 소매 폭 등이 저고리에 비해서 넓다. 원래 한국인들은 저고리 위에 ''라는 다양한 겉옷을 입었으나 점차 두루마기가 널리 사용되었다. 여자들은 방한용으로 입기도 한다. 예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외출시에는 두루마기를 꼭 입었고, 의식이 옥내에서 거행되더라도 저고리 차림나 마고자 차림이 되면 예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세배, 차례, 제사 등에는 항상 두루마기를 입어야 한다. [3]

행전은 한복에서 발싸개로 한복 바지의 넓은 밑단을 정리하기 위해 입었다. 오늘날에는 입지 않는다.

여름 남자 한복에는 고의와 적삼, 홑조끼, 홑두루마기가 있었다.

여자 한복

여자 한복은 저고리와 치마로 이루어진다. 치마 속에는 속바지와 속치마를 겹쳐 입었다.

저고리 (여자 나이와 저고리의 색상 간의 관계는 여자 나이가 10~20대이면 노란색 저고리, 30~40대는 녹색 저고리, 50대 이상은 옥색 저고리이다.)는 몸판, 깃, 섶, 소매, 고름 등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고름은 저고리의 잎을 여밀 때 겹쳐지는 섶에 붙어 있는 끈으로 긴 고름과 짧은 고름을 반리본 모양으로 맨다. 섶의 끝 부분인 섶코는 버선의 코처럼 삐져나오게 한다. 바느질 방법에 따라 홑저고리, 겹저고리, 누비저고리, 깨끼저고리로 나누고 옷감의 색에 따라 민저고리, 반회장저고리, 삼회장저고리, 색동저고리 등으로 나눈다. [3]

한복의 치마 (여자 나이와 치마 색상 간의 관계는 여자 나이가 10~20대이면 다홍색 치마, 30~40대는 홍색이나 옥색 치마, 50대 이상은 회색이나 남색 치마이다.)는 폭, 끈, 치마끈으로 구성되어 있다. 치마 폭의 허리 부분에 잘게 주름을 잡아 곡선미가 드러나게 하는데 입을 때에는 앞에서부터 둘러서 몸을 한 바퀴 반 정도 휘감아 뒤 옆에서 한쪽으로 여민다. 가슴 윗부분에서 시작해 바닥에 닿을 정도로 폭이 길다. 치마 안에는 무지기라고 부르는 속치마를 아래에 몇 겹씩 겹쳐 입었다. 평상시에는 홑치마, 겹치마, 누비치마를 입었고, 예복용으로 스란치마, 대란치마를 입었다. 한복 치마는 통치마와 풀치마 (일명 자락치마)로 나뉘는데, 대한민국에서는 풀치마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통치마를 많이 입는다.

버선은 남녀 모두 신던 양말인데 오늘날 일상생활에서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나 여성들이 한복을 입을 때에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제헌 국회 총선 때까지만 해도 시골 할아버지들은 여전히 버선을 신었다.) 힌 무명이나 광목으로 만들었는데, 여성의 버선은 앞쪽 끝이 뾰족하게 위로 올라가는 맵시가 아름답다. 여자들은 겹버선/솜버선 위에 홑버선을 입는다.

같이 보기

주석

  1. 옷의 종류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 출처:중학교 2학년 기술가정 교과서
  3. 맷시나는 우리 옷, 구석구석 정겨워라, 생활 속의 이야기 151호 14쪽, 2009년, CJ제일제당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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