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왕 (발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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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희왕 대언의'''(渤海 僖王 大言義, ? ~[[817년]], 재위: [[812년]]~[[817년]])는 [[발해]]의 제8대 [[가독부|왕]]으로, [[발해 강왕|강왕]]의 아들이며 [[발해 정왕|정왕]]의 동생이다. 연호는 '''[[주작 (발해)|주작]]'''(朱雀)을 사용하였다.<ref>《[[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 華文書局, 1934)</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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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 생애 == |
2020년 6월 1일 (월) 21:22 판
발해 희왕
渤海 僖王 | |
---|---|
발해 제8대 국왕 | |
재위 | 812년~817년 |
대관식 | 희왕(僖王) |
전임 | 정왕(定王) |
후임 | 간왕(簡王) |
부왕 | 강왕(康王) |
이름 | |
휘 | 대언의(大言義) |
별호 | ? |
묘호 | 희왕(僖王) |
시호 | 희(僖) |
연호 | 주작(朱雀) |
신상정보 | |
출생일 | 생년 미상(生年 未詳) |
출생지 | ? |
사망일 | 809년 |
사망지 | ? |
왕조 | 발해(渤海) |
가문 | 협계 태씨 영순 태씨 밀양 대씨 |
부친 | 강왕(康王) |
모친 | ? |
배우자 | ? |
자녀 | 대연준(大延俊) |
종교 | 불교(佛敎) |
발해 희왕 대언의(渤海 僖王 大言義, ? ~817년, 재위: 812년~817년)는 발해의 제8대 왕으로, 강왕의 아들이며 정왕의 동생이다. 연호는 주작(朱雀)을 사용하였다.[1]
생애
정왕이 병으로 죽자, 아우인 대언의가 국무를 담당해, 당나라에 사자를 파견해 선왕의 죽음을 알렸다. 그 후 즉위 한 희왕은 연호를 주작으로 정하고, 다음 해 당나라의 내시인 이중민(李重旻)이 와서 그를 발해 국왕에 봉해주었다.
재위 동안, 당나라에 자주 사신을 보냈다. 또 이 시대의 교류의 특징으로서는 불교의 융성이 있다. 813년에는 고예진(高禮進)등 37명을 당에 입조시켜, 발해의 금은의 불상 각 1체를 헌상 하였다. 이것은 왕실의 불교에 귀의했다는 방증이며, 발해 유적에서는 대량의 동불(銅佛)·전불(塼佛)이 출토되었다.
또 일본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사신 파견을 실시해, 경제적인 면 이외에 문화 교류도 활발히 행해졌다. 발해사정사(渤海史正使)의 왕효렴(王孝廉)등의 한시 등은 《문화수려집》(文華秀麗集)에 수록되어 현재에 전해지고 있다.
아들이 있었으나 희왕이 왕위에 올랐고, 아마도 반정으로 왕위를 찬탈한것 같다.
가계
참고
각주
전 대 정왕 |
제8대 발해 국왕 812년 - 817년 |
후 대 간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