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위 (관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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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위'''(廷尉)는 고대 [[중국]]의 관직으로, [[구경 (관직)|구경]](九卿)의 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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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2일 (목) 20:07 판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14년 1월) |
정위(廷尉)는 고대 중국의 관직으로, 구경(九卿)의 하나이다.
개요
진
형벌과 법률을 관장하는 관직으로 설치되었으며, 정위정(廷尉正) · 정위좌감(廷尉左監) · 정위우감(廷尉右監)을 한 명씩 두었다.
전한
역할은 진나라와 거의 같았다.
경제(景帝) 때 이름을 대리(大理)로 고쳤다. 이후 무제(武帝) 때인 건원(建元) 4년(기원전 137)에 되돌렸다. 선제(宣帝) 때인 지절(地節) 3년(기원전 67)에 정위좌평(廷尉左平) · 정위우평(廷尉右平)을 두었으며, 애제(哀帝) 때인 원수(元壽) 2년(기원전 1) 다시 대리라고 하였다.
신
명칭을 작사(作士)로 고쳤다.
후한
다시 정위로 되돌렸으며, 봉록은 중(中) 2천 석이었다. 정위정 · 정위좌감 · 정위좌평을 한 명씩 두었다. 본래 정위우감과 정위우평도 두었으나, 광무제(光武帝) 때 없앴다.
속관은 다음과 같이 두었다.
명칭 | 인원 수 |
---|---|
사과(四科) | |
정리(廷吏) | |
문학(文學) | |
옥사(獄史) | |
기리(騎吏) | |
가좌(假佐) | |
관의(官醫)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