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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낙성'''(洪樂性, [[1718년]]~[[1798년]])은 조선시대 후기의 척신으로 [[좌의정]]과 [[영의정]]을 지냈다. [[혜경궁 홍씨]]의 6촌 형제이며, [[병조판서]] [[홍상한]]의 아들이다. [[홍봉한]], [[홍인한]] |
'''홍낙성'''(洪樂性, [[1718년]] ~ [[1798년]])은 조선시대 후기의 척신으로 [[좌의정]]과 [[영의정]]을 지냈다. [[헌경왕후|혜경궁 홍씨]]의 6촌 형제이며, [[병조판서]] [[홍상한]]의 아들이다. [[홍봉한]], [[홍인한]]에게는 5촌 조카에 해당한다. 자는 자안(子安), 아호는 항재(恒齋)이며 시호는 효안(孝安)이다. 본관은 [[풍산 홍씨|풍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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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시강원 사서, 지평, 사간 등을 거쳐 통정대부로 승진, 승지를 거쳐, 57년 [[대사성]]이 되었다. 그 후 이조참의,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 가선대부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68년 이조판서에 올랐다. [[조선 정조|세손]]에 대한 모해사건이 있을 때 당숙 홍봉한, 족질 [[홍국영]]과 함께 세손을 지원하였다. 이후 우참찬(右參贊)이 되었다가 형조판서, 병조판서를 거쳐, [[정조]] 즉위후 [[의정부]][[좌의정]]에 등용되었다. [[1784년]] 청나라에 파견되는 [[사은사]]로 북경에 다녀왔다. 귀국후 [[1793년]] [[영의정]]이 되었다. [[1797년]] 만 80세에 궤장을 하사받고 중추부영사로 전직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글을 잘 지었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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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관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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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5일 (수) 16:56 판
홍낙성(洪樂性, 1718년 ~ 1798년)은 조선시대 후기의 척신으로 좌의정과 영의정을 지냈다. 혜경궁 홍씨의 6촌 형제이며, 병조판서 홍상한의 아들이다. 홍봉한, 홍인한에게는 5촌 조카에 해당한다. 자는 자안(子安), 아호는 항재(恒齋)이며 시호는 효안(孝安)이다. 본관은 풍산이다.
생애
1744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시강원 사서, 지평, 사간 등을 거쳐 통정대부로 승진, 승지를 거쳐, 57년 대사성이 되었다. 그 후 이조참의,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 가선대부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68년 이조판서에 올랐다. 세손에 대한 모해사건이 있을 때 당숙 홍봉한, 족질 홍국영과 함께 세손을 지원하였다. 이후 우참찬(右參贊)이 되었다가 형조판서, 병조판서를 거쳐, 정조 즉위후 의정부좌의정에 등용되었다. 1784년 청나라에 파견되는 사은사로 북경에 다녀왔다. 귀국후 1793년 영의정이 되었다. 1797년 만 80세에 궤장을 하사받고 중추부영사로 전직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글을 잘 지었다 한다.
가족 관계
- 증조 할아버지 : 홍중기
- 할아버지 : 홍석보
- 아버지 : 홍상한
- 어머니 : 함종어씨 - 선의왕후(경종비)의 4촌동생
- 종조 할아버지 : 홍현보
- 당숙 : 홍봉한
- 당숙 : 홍인한
- 재종 자매 : 혜경궁 홍씨(정조의 생모)
- 아들 : 홍인모
- 손자 : 홍현주 (숙선옹주의 남편, 정조의 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