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삼성 라이온즈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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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삼성 라이온즈 시즌삼성 라이온즈KBO 리그에 참가한 18번째 시즌이다. 서정환 감독이 팀을 이끈 마지막 시즌이며, 류중일이 주장을 맡았다. 팀은 4팀 중 매직리그 1위(한화 이글스를 1경기 차로 따돌렸다.), 8팀 중 정규시즌 통합승률 3위에 오르며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1985년 1992년 1993년 1995년 1997년 스프링캠프를 치른 베로비치 대신 플로리다 포트 마이어스보스턴 레드삭스 전용훈련장에서[1] 전지훈련을 치뤘는데 1997년 LA 다저스에서 자매결연을 전제로 고액의 스프링 캠프 사용료를 요구하자 포트 마이어스에서 해당 년도에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그러나, 확실한 에이스의 부재 뿐 아니라[2] 전년도 15선발승을 기록한[3] 베이커가 미국으로 돌아가 쓸만한 좌완 투수 부재에 시달려 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자이언츠에게 3승 4패로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고 이후 한화 이글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면서 삼성은 통합 4위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1997년 10월 30일부터 3년 계약 형식으로 삼성 감독에 취임한[4] 서정환 감독이 계약기간을 1년 남겨둔 채 11월 1일 사임[5]했고 서정환 감독은 잔여연봉을 챙겨주기 위해 11월 12일부터 사장 보좌역을 맡았으며 해태 김응룡 감독을 영입할 예정이었으나 김 감독이 갑작스럽게 마음을 바꾸자[6] 김용희 수석코치가 같은 날 2년 계약 형식으로 감독 취임했다. 하지만, 김용희 감독 부임 첫 해인 2000년에도 쓸만한 좌완투수 부재에 시달려[7] 같은 해 준플레이오프 2승 1패를 거둔 뒤 진출한 플레이오프에서 4패를 당하자 김용희 감독이 1년 만에 해임당했고 이 과정에서 서정환 사장 보좌역도 물러났으며 삼성은 2001년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역시 쓸만한 좌완투수 부재를 극복하지 못한 채[8] 충격의 역전패를 당해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선수단[편집]

특이 사항[편집]

  • 플레이오프 당시, 삼성은 4차전까지 3승 1패로 앞섰으나, 확실한 에이스의 부재 뿐 아니라[9] 전년도 15선발승을 기록한[10] 베이커가 미국으로 돌아가 쓸만한 좌완 투수 부재에 시달려 5~7차전을 모두 1점 차로 내주고 탈락하고 말았다. 이 중 5, 7차전은 연장 승부였다.

각주[편집]

  1. 연합 (1999년 1월 29일). “삼성,美(미)전훈 31일 출국”. 연합뉴스. 2021년 7월 22일에 확인함. 
  2. 강성만 (1999년 10월 9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행"역시 투수놀음". 한겨레신문. 2021년 7월 22일에 확인함. 
  3. 권인하 (2015년 12월 29일). “삼성 외국인 투수 내년엔 15승 벽 넘을까”. 스포츠조선. 2021년 7월 22일에 확인함. 
  4. 연합 (1997년 10월 30일). “<프로야구>삼성,제9대감독으로 서정환코치 전격발탁”. 연합뉴스. 2021년 7월 22일에 확인함. 
  5. 권훈 (1999년 11월 1일). “프로야구 삼성,서정환감독 사의”. 연합뉴스. 2021년 7월 22일에 확인함. 
  6. 연합뉴스 (1999년 11월 11일). “프로야구 삼성 새감독에 김용희 수석코치(종합)”. 연합뉴스. 2021년 7월 22일에 확인함. 
  7. 김광호 (2000년 10월 23일). “삼성'또...'통곡”. 경향신문. 2021년 7월 22일에 확인함. 
  8. 정연석 (2001년 12월 2일). “삼성 김기태 `SK 간다`”. 일간스포츠. 2021년 7월 22일에 확인함. 
  9. 강성만 (1999년 10월 9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행"역시 투수놀음". 한겨레신문. 2021년 10월 19일에 확인함. 
  10. 권인하 (2015년 12월 29일). “삼성 외국인 투수 내년엔 15승 벽 넘을까”. 스포츠조선. 2021년 10월 19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