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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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1964년 ←
1968년 11월 5일
→ 1972년

투표율 60.8%
  Richard Nixon, official bw photo, head and shoulders.jpg HubertHumphrey.png George C Wallace (Alabama Governor).png
후보 리차드 닉슨 휴버트 험프리 조지 월리스
정당 공화당 (미국) 민주당 (미국) 미국독립당
기반주 뉴욕 주 미네소타 주 앨라배마 주
부통령후보 스피로 애그뉴 에드먼스 머스키 커티스 리메이
선거인단 301 191 46
승리한 주 32 13+DC 5
득표수 31,783,783 31,271,839 9,901,118
득표율 43.4% 42.7% 13.5%

ElectoralCollege1968.svg

대통령 선거결과 지도

선거전 대통령

린든 존슨
민주당 (미국)

대통령 당선자

리차드 닉슨
공화당 (미국)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1968년 11월 5일에 치른 미국의 대통령선거이다. '법과 질서의 회복'을 약속한 리차드 닉슨 전 부통령에 의해 12년만에 공화당이 정권을 되찾은 이 선거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과 로버트 F. 케네디의 암살,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 등으로 민주당이 분열되며 36년간 민주당을 지탱해왔던 뉴딜동맹이 붕괴된 시점으로 분석된다. 또한 인종차별에 대해 연방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며 창당된 미국독립당이 56년만에 가장 큰 제3당으로 등장한 때이기도 했다.

배경[편집]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역대 최고로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린든 존슨 대통령은 '가난과의 전쟁'과 인권 입법, 우주탐사 등의 업적을 세웠으나, 다문화로 인한 신좌파운동의 등장으로 젊은이들의 시위와 인종갈등으로 인한 폭동으로 여름마다 대도시에서는 수천명이 죽어가고 수억달러의 피해를 입혔다. 심지어 선거가 있던 1968년 4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 이후로 이는 더욱 격해져 백악관 근처에서 기관총이 난사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결정적인 지지율 저하 요인은 바로 베트남 전쟁으로, 50만명이 파병되고 매달 1000여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낸 전쟁은 언론이 큰 비용에도 소득이 없고 많은 희생을 내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큰 반대운동을 불러 일으켰다.

후보 선출[편집]

민주당[편집]

예비선거[편집]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로 12개월만 대통령대행을 수행한 존슨 대통령은 다음 대선에 도전할 수 있었고, 그에 맞설 민주당 후보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선거가 있던 1968년 1월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전쟁을 곧 이길 것이라 호언장담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구정 대공세가 시작되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고 존슨 대통령은 암살 위협에 대중 앞에 서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반전을 부르짖던 유진 맥카시 상원의원만이 공개적으로 존슨 대통령에 맞서 출마선언을 했는데, 자신의 지역구이자 예비선거 첫 지역인 뉴햄프셔에 모든 자원을 쏟아부은 그는 반전운동을 하는 학생들의 도움으로 3월 12일 예비선거에서 존슨 49% 맥카시 42%로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놀라운 선전을 보여준다. 이 뉴햄프셔 예비선거는 존슨 대통령의 취약점을 보여주었고, 4일 후엔 존슨 행정부 정책의 비판자였던 로버트 F. 케네디 상원의원이 출마하게 된다. 이후 부진한 지지율을 보이던 존슨 대통령은 3월 31일 평화협상을 위해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중지할 것을 발표하며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휴버트 험프리 부통령이 출마를 선언했으나 예비선거에는 불참하며 전당대회만을 준비했다. 그리하여 예비선거는 케네디와 맥카시의 대결로 흘러갔고, 케네디가 5승, 맥카시가 6승(맞붙었을 땐 케네디 4승, 맥카시 1승)을 기록한 캘리포니아 예비선거 다음날이었던 6월 5일, 케네디 후보가 암살되었다.

예비선거 결과

전당대회[편집]

케네디 후보의 죽음은 경선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전당대회를 준비하던 험프리 부통령은 존슨 대통령의 분신으로 여겨졌음에도 불구하고 케네디 지지층은 그에 맞설 새로운 후보에 결집하지 못하고, 오히려 경선 내내 맞서오던 맥카시 후보를 거부하며 험프리 측으로 이동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전당대회가 열린 시카고에서는, 베트남 전쟁 반대를 외치는 시위대와 경찰 간의 충돌이 벌어졌고, 이는 민주당의 분열로 이어졌다.

이름 득표 비고
휴버트 험프리 1759.25 대통령 후보
유진 매카시 601
조지 맥거번 146.5
채닝 필립스 67.5
대니얼 무어 17.5
에드워드 케네디 12.75
폴 브리안트 1.5
제임스 그레이 0.5
조지 월리스 0.5
총투표수 2607
이름 득표 비고
에드먼드 머스키 1942.5 부통령 후보
줄리안 본드 48.5
데이빗 호에 4
에드워드 케네디 3.5
유진 매카시 3
기타 16.25
무효 604.25
총투표수 2622

공화당[편집]

예비선거[편집]

공화당의 대선 주자는 리차드 닉슨 전 부통령이었다. 그는 뒤에서 1966년 중간선거를 승리로 이끌었고, 많은 의원들과 주지사들이 그를 지지했다. 그럼에도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와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의 패배는 공화당 지지자들로 하여금 더 확장성 있는 후보를 바라게 했고, 68년 공화당 경선은 닉슨 전 부통령과 그에 맞서는 조지 롬니 미시간 주지사, 찰스 퍼시 상원의원, 넬슨 록펠러 뉴욕 주지사, 로날드 레이건 캘리포니아 주지사 등의 입장과 퇴장의 연속이었다.

전당 대회[편집]

이름 득표 비고
리차드 닉슨 692 대통령 후보
넬슨 록펠러 277
로날드 레이건 182
제임스 로데스 55
조지 롬니 50
클리포드 케이스 22
프랭크 칼슨 20
윈드롭 록펠러 18
하이럼 퐁 14
해럴드 스태슨 2
존 린제이 1
총투표수 1333
이름 득표 비고
스피로 애그뉴 1119 대통령 후보
조지 롬니 186
존 린제이 10
에드워드 브룩 1
제임스 로데스 1
총투표수 1317

1968년 8월, 공화당 전당대회는 리차드 닉슨 전 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스피로 애그뉴 메릴랜드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다.

미국독립당[편집]

인종차별에 대한 연방정부의 간섭을 반대하며 1967년 창당된 미국독립당은 민주당 출신의 조지 월리스 전 앨라배마 주지사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했다. 월리스 측의 전략은 승리가 아니라 선거인단을 확보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선거 과정[편집]

닉슨 측은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이지만 존슨 행정부의 흑인인권옹호에 분노하는 남부 백인들을 타겟으로 하는 '남진 전략'을 내세웠다. 비록 당시에는 월리스 측이 그러한 타겟층을 흡수했지만, 이는 결국 민주당을 지탱하던 뉴딜동맹의 붕괴를 의미했고, 이후 공화당 후보들의 주 전략이 된다. 닉슨 측은 인권차별철폐를 주장하는 시위로 인해 격해진 폭동 등을 향해 '법과 질서의 회복'을 위쳤고 험프리 측은 '가난과의 전쟁'이라는 복지정책을 지속할 것을 공약했다. 그러나 현직 부통령이었던 그는 베트남 전쟁을 지속하는 존슨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반전주의자들의 비난의 타겟이 되곤 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여론조사에서, 인종갈등, 베트남전쟁에 케네디암살, 월리스 출마 등 악재가 겹친 험프리는 닉슨에게 두자릿수로 뒤지고 있었다. 험프리는 그때부터 '험프리 부통령'이 아닌 '험프리 후보'로서 존슨 행정부와 거리를 두며 월리스를 인종차별주의자로 공격해나갔다. 21%까지 치솟았던 윌리스 지지율은 그가 지목한 러닝메이트인 커티스 리메이의 베트남전쟁 핵폭격 발언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 효과로 험프리 측의 지지율은 상승하기 시작했다. 대선날까지 좁혀지던 닉슨과 험프리의 지지율 차는 실제 선거에서 초접전을 벌였고, 다음날 아침에야 당선자가 드러나게 된다.

험프리의 상승과 10월의 이변[편집]

8월 말 민주당 전당대회이 끝난 뒤, 험프리는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닉슨에게 두 배차로 뒤졌으며, 그가 당선될 가능성도 줄어들었다. 타임지는 이런 상황에 대해 "옛 민주당의 지지 세력은 붕괴되었다. 막대한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월리스의 감언을 지지한다. 흑인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협박받는다. 리버럴은 베트남 전쟁 때문에 지지를 거둔다. 남부는 잃어가고 있다. 전쟁 수뇌부는 사실상 사라졌고, 린든 존슨에게 거절당한 당내 계파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평하였다.[1] 그러나 이 과정을 '즐거움의 정치'라고 선언한 후 주요 노조들이 계속 지지를 선언하면서, 험프리는 다시 선거 운동을 시작하였다. 존슨과 거리를 두고 등록 유권자들 중에서 민주당원들이 다수인 점을 이용하면서, 험프리는 자신을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 대신 '민주당 후보 휴버트 험프리'로 표기하였다. 험프리는 또한 월리스를 미국인들을 어두운 충동으로 선동하는 인종차별주의자라고 공격하였다. 월리스는 여론조사 내내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9월에는 21%로 최고점에 올랐지만, 그의 최고조는 러닝메이트로 커티스 르메이를 임명하면서 끝나게 되었다. 전략 핵무기를 베트남에 써야 된다는 르메이의 주장은 유권자들로부터 지난 대선의 골드워터를 다시 떠올리게 하였다. 8월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노조원들의 절반의 지지를 얻었던 월리스는 이후 지지도가 가파르게 감소하는 것을 겪었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북부와 중서부에서 월리스의 지지율이 감소하기 시작하자 험프리는 마침내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선거 결과[편집]

대선 결과
대통령 후보
출신 주 
정당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득표 부통령 후보
출신 주
선거인단 득표
리차드 닉슨
뉴욕
공화당 31,783,783 43.42% 301 스피로 애그뉴
메릴랜드
301
휴버트 험프리
미네소타
민주당 31,271,839 42.72% 191 에드먼드 머키스
메인
191
조지 월리스
앨라배마
미국독립당 9,901,118 13.53% 46 커티스 리메이
캘리포니아
46
기타 - 243,258 0.33% 0 - 0
합계 73,199,998 538 - 538
선출필요수 270 - 270

지역별 결과[편집]

리처드 닉슨
(공화당)
휴버트 험프리
(민주당)
조지 월리스
(미국 독립당)
기타 후보 표차 전체
선거
인단
#  % 선거
인단
#  % 선거
인단
#  % 선거
인단
#  % 선거
인단
#  % #
네바다 3 73,188 47.46 3 60,598 39.29 - 20,432 13.25 - - - - 12,590 8.16 154,218
네브래스카 5 321,163 59.82 5 170,784 31.81 - 44,904 8.36 - - - - 150,379 28.01 536,851
노스캐롤라이나 13 627,192 39.51 13 464,113 29.24 - 496,188 31.26 - - - - 131,004 8.25 1,587,493
뉴멕시코 4 169,692 51.85 4 130,081 39.75 - 25,737 7.86 - 1,771 0.54 - 39,611 12.10 327,281
뉴욕 43 3,007,932 44.30 - 3,378,470 49.76 43 358,864 5.29 - 44,800 0.66 - -370,538 -5.46 6,790,066
뉴햄프셔 4 154,903 52.12 4 130,589 43.94 - 11,173 3.76 - 525 0.18 - 24,314 8.18 297,190
델라웨어 3 96,714 45.12 3 89,194 41.61 - 28,459 13.28 - - - - 7,520 3.51 214,367
메인 4 169,254 43.07 - 217,312 55.30 4 6,370 1.62 - - - - -48,058 -12.23 392,936
미네소타 10 658,643 41.46 - 857,738 54.00 10 68,931 4.34 - 3,198 0.20 - -199,095 -12.53 1,588,510
사우스다코타 4 149,841 53.27 4 118,023 41.96 - 13,400 4.76 - - - - 31,818 11.31 281,264
사우스캐롤라이나 8 254,062 38.09 8 197,486 29.61 - 215,430 32.30 - - - - 38,632 5.79 666,978
아이다호 4 165,369 56.79 4 89,273 30.66 - 36,541 12.55 - - - - 76,096 26.13 291,183
아이오와 9 619,106 53.01 9 476,699 40.82 - 66,422 5.69 - 5,704 0.49 - 142,407 12.19 1,167,931
아칸소 6 189,062 31.01 - 184,901 30.33 - 235,627 38.65 6 - - - -46,565 -7.64 609,590
알래스카 3 37,600 45.28 3 35,411 42.65 - 10,024 12.07 - - - - 2,189 2.64 83,035
애리조나 5 266,721 54.78 5 170,514 35.02 - 46,573 9.56 - 3,128 0.64 - 96,207 19.76 486,936
앨라배마 10 146,923 13.99 - 142,435 13.57 - 691,425 65.86 10 69,134 6.58 - -544,502 -51.86 1,049,917
와이오밍 3 70,927 55.76 3 45,173 35.51 - 11,105 8.73 - - - - 25,754 20.25 127,205
워싱턴 D.C. 3 31,012 18.18 - 139,566 81.82 3 - - - - - - -108,554 -63.64 170,578
인디애나 13 1,067,885 50.29 13 806,659 37.99 - 243,108 11.45 - 5,909 0.28 - 261,226 12.30 2,123,561
일리노이 26 2,174,774 47.08 26 2,039,814 44.15 - 390,958 8.46 - 14,203 0.31 - 134,960 2.92 4,619,749
조지아 12 366,611 29.64 - 334,439 27.04 - 535,550 43.30 12 128 0.01 - -168,939 -13.66 1,236,728
캘리포니아 40 3,407,851 47.98 40 3,186,270 44.86 - 481,665 6.78 - 26,992 0.38 - 221,581 3.12 7,102,778
코네티컷 8 556,721 44.32 - 621,561 49.48 8 76,650 6.10 - 1,300 0.10 - -64,840 -5.16 1,256,232
콜로라도 6 409,345 50.72 6 331,063 41.02 - 60,813 7.53 - 5,867 0.73 - 78,282 9.70 807,088
테네시 11 472,592 37.85 13 351,233 28.13 - 424,792 34.02 - - - - 47,800 3.83 1,248,617
텍사스 25 1,227,844 39.87 - 1,266,804 41.14 25 584,269 18.97 - 489 0.02 - -38,960 -1.27 3,079,406
펜실베이니아 29 2,090,017 44.04 - 2,259,403 47.61 29 378,582 7.98 - 17,660 0.37 - -169,386 -3.57 4,745,662
플로리다 14 886,804 40.53 14 676,794 30.93 - 624,207 28.53 - - - - 210,010 9.60 2,187,805
하와이 3 91,425 38.70 - 141,324 59.83 3 3,469 1.47 - - - - -49,899 -21.12 236,218

참고[편집]

  1. 타임 1968년 11월 15일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