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다스페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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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다스페스 전투
날짜 기원전 326년
장소 히다스페스 강 북쪽
결과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의 승리
교전국
마케도니아 왕국
그리스 왕국
페르시아
인도 왕국
인도 파우라바 족
지휘관
마케도니아 왕국 알렉산드로스 3세 파우라바 족 포러스
병력
기병 5000명
보병 6000명
기병 4000명
보병 30000명
피해 규모
80 - 130명 부상
230 - 250명 사상
12000명 사망
9000명 포로
그외 23000명 부상(대략)

전투 준비[편집]

알렉산드로스중앙아시아에서 무수한 전투와 위험을 치른 후, 기원전 326년 봄 인도정복을 착수했는데, 이것은 아르벨라 전투가 있은 지 거의 5년 후였다. 그의 군대가 히다스페스강 북안에 도달했을 때, 저쪽 대안에는 인도 군왕 중의 한 사람인 포러스의 군대가 그의 도하를 저지하고자 포진하고 있었다.

히다스페스강은 도하가 만만치 않게 강폭이 800m나 되며 강우로 범람하였으므로 도보로 도하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으며, 또 항전을 결심하고 있는 적 정면에서 대부대가 도하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이 문제에 대한 알렉산드로스의 해결안은 고전으로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전례 중의 하나이며, 하천선 공격을 위한 현대 교리의 기초가 된다.

전술[편집]

  1. 알렉산드로스는 그가 도하를 개시하기 전에 먼저 강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릴 계획이라는 것을 포러스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하여 신중히 그런 내용의 풍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도하를 준비하는 것처럼 나팔을 불고 함성을 올리게 하는 등 도하에 대한 적의 주의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전투 개시[편집]

알렉산드로스의 정찰대는 이미 진영에서 약 25km 상류에 적합한 도하 지점을 선정해 두었다. 진영 부근에서는 양동을 계속하면서 그의 주력을 도하지점으로 이동시켰다. 도하하는 데에 약간의 곤란이 있었으나 소수의 적 정찰대를 격멸시킬 수 있었고, 곧 이어 알렉산드로스는 신속히 정예부대를 집결시켜 포러스를 공격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의 중기병 선두에 나서서 적의 배치를 정찰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병력은 기병 5000명, 보병 6000명이었고, 포러스의 전열은 기병 4000명, 보병 30000명이었다. 그는 그의 전 병력을 사용하기로 결심하였다.

전면에는 코끼리 부대가 있으므로 중기병 대장 코에누스를 파견하여 인도군의 우익과 배후를 분쇄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알렉산드로스의 방진은 포러스의 좌익쪽으로 사선기동으로 접근하였다.

한편 코에누스는 적에게 발견되지 않고 인도군의 우익배후를 강타하여 더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제거해버렸다.

인도군은 양면에서 공격을 받자 당황하였고 코끼리 부대를 내보냈으나 부상당한 코끼리들이 진지로 달려와 병사들이 자기들 코끼리에 살해당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결국 전 인도군은 산산히 분쇄되었고, 여기서 추격이 가해져 포러스는 포로가 되고, 그의 군대는 격멸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