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
홍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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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 1466년 ~ 1513년 |
신상정보 | |
출생일 | 1457년 |
사망일 | 1513년 |
국적 | 조선 |
가문 | 남양 홍씨 |
부친 | 익성부원군(益城府院君) 홍응 |
모친 | 정경부인 이씨 |
배우자 | 명숙공주 |
자녀 | 홍백경(洪伯慶) |
홍상(洪常, 1457년 ~ 1513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명숙공주의 남편으로 덕종과 소혜왕후의 사위이다. 성종과 월산대군은 그의 처남이다. 자는 자강(子剛)이며 본관은 남양이다.
생애[편집]
홍심(洪深)의 손자이자 익성부원군(益城府院君) 홍응의 아들로 태어났다. 1466년 정현조의 집에서 명숙공주[1]를 친영하였다.[2] 1468년에 당양군으로 봉해졌으며,[3] 1470년에 통헌대부(通憲大夫)에,[4] 이듬해인 1471년에는 숭덕대부(崇德大夫)에 올랐다.[5] 1482년 공주와 사별하였다. 1484년 왕의 사위를 모두 의빈으로 부르니 구별이 어렵다고 의빈부의 관호 조정에 대한 의견을 올렸고, 이에 따라 이듬해인 1485년 당양위(唐陽尉)에 봉해졌다.[6][7] 1486년 명산정(明山正) 이금정(李金丁)[8]의 첩기 연경비(燕輕飛)를 빼앗아 간통한 혐의로 탄핵을 받았다.[9] 성종은 처음에는 홍상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무고라고 죄를 주지 않았고[9] 여러 차례에 걸친 간언에도 홍상을 벌주지 않았다. 1488년에는 광덕 대부(光德大夫)에 올랐으며[10] 부친 홍응이 죽자 성종은 그의 몸이 상할 것을 염려하여 육즙을 내리기도 했다.[11] 1494년 이철견, 한치례와 함께 정호(鄭灝)의 첩 다물사리(多勿沙里)를 간통한 것이 드러나 탄핵을 받았다.[12]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연산군의 노여움을 사 직첩이 박탈되고, 함평(咸平)과 안성(安城)을 거쳐 거제도로 유배되었다.[13] 이듬해에는 제주로 보내졌는데 중종반정 이후 복직되어 1513년 죽었다.
가족[편집]
- 조부 : 홍심
- 외조부 : 부호군(副護軍) 이발생(李發生)
- 부 : 홍응
- 모 : 이씨(李氏)
- 처 : 명숙공주
- 아들 : 홍백경(洪伯慶)
- 손녀 : 신홍필(愼弘弼)의 처
- 아들 : 홍백경(洪伯慶)
- 고모 : 숙빈 홍씨
- 숙부 : 홍칭(洪偁)
각주[편집]
- ↑ 당시의 작호는 태안군주
- ↑ 《조선왕조실록》 세조 40권, 12년(1466년) 12월 19일 1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예종 2권, 즉위년(1468년) 11월 7일 2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성종 6권, 1년(1470년) 6월 3일 9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성종 9권, 2년(1471년) 2월 1일 5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성종 164권, 15년(1484년) 3월 1일 5번째 기사
- ↑ 《조선왕조실록》 성종 174권, 16년(1485년) 1월 2일 4번째기사
- ↑ 선성군의 3남
- ↑ 가 나 《조선왕조실록》 성종 198권, 17년(1486년) 12월 21일 4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성종 222권, 19년(1488년) 11월 15일 5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성종 284권, 24년(1493년) 11월 16일 1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성종 296권, 25년(1494년) 11월 14일 1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연산 60권, 11년(1505년) 10월 3일 4번째기사
참고 문헌[편집]
- 《국역 국조인물고》 권44 연산시 이화인(燕山時罹禍人) 홍상의 비명(碑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