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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金奎植, 1881년 2월 28일 ~ 1950년 12월 10일)은 대한제국의 종교가, 교육자이자 대한민국의 독립 운동가, 통일운동가, 정치가, 시인, 교육자이다. 언더우드 목사의 비서, 경신학교의 교수와 학감 등을 지내고 미국에 유학하였다. 1918년 파리강화회의에 신한청년당,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로 파견되어 이후 10여년간 외교 무대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이 국제 승인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파리 강화 회의 참가 중 3.1 만세 운동을 기획하였고, 파리 회담에 참여하여 한국의 독립을 승인해줄 것을 국제 사회에 알리려 노력하였으나 좌절당하였다.
그 뒤 만주에서 대한독립군단의 지휘관으로도 활약하였고, 임정을 떠나 독립운동단체의 통합노력과 교육 활동 등을 하다가 1930년 다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재입각, 1935년 민족혁명당 결성을 주도하고 당 주석직에 올랐으며, 1940년부터 1947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냈으며 주로 외교활동을 전개해나갔다. 1948년 2월 남한의 단독 총선거에 반대하여 김구, 조소앙 등과 함께 북조선으로 건너가 4월의 남북협상에 참여하였으나, 1950년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병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