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팅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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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팅거 지도 일부: 상단에서 하단으로 가면서 달마티아 해안, 아드리아 해,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북부 아프리카 해안이 나타나 있음)

포이팅거 지도(Tabula Peutingeriana, Peutinger table, Peutinger Map)는 1265년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지방의 오랭주 주도인 콜마르(Colmar)의 한 수도자가 양피지(羊皮紙) 12장에 그린 지도이다. 이 지도는 12세기 경의 사본으로 알려졌지만, 그 내용은 로마 후기인 4세기 경의 상황을 나타내고 있어 원본의 제작 연대는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고 추정된다. 지도의 크기는 폭은 34cm인데 비해 길이는 무려 6m75cm로, 두루마리 형태로 휴대하도록 만들어졌다. 현재 11장이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1] [2] 2007년 11월 26일 이곳에 소장되어 있는 포이팅거 지도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날 단 하루 이 지도를 일반에게 공개해 화제가 되었다.[3]


지도의 특징[편집]

이 지도는 축척이나 방위를 무시하고, 철도 노선도처럼 지도의 내용을 아래위로는 압축하고 옆으로는 길게 늘어뜨려 주요부를 부각시키고 있다. 지도에 담겨 있는 범위는 서쪽 에스파냐로부터 동쪽 인도 갠지스 강 하구까지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지만, 전체 길이의 6분의 5가 지중해 연안에 해당되고, 그 가운데 이탈리아가 3분의 1을 차지한다.

지도에 표현된 내용은 산맥이나 숲, 하천, 호수 등의 지형과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 역참 등이 기호로 묘사되었고, 도로를 따라서는 각 구간마다 거리가 로마 숫자로 표시되어 있다. 로마를 비롯해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터키 남동부의 안티오키아 등 당시의 대도시는 인격화하여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냈으며, 다음 단계의 주요 도시는 건물 기호로, 그 밖의 작은 도시는 지명만 표기했다.


지도의 발견과 출판[편집]

이 지도는 1494년 유서 깊은 보름스(Worms)의 한 도서관에서 독일의 학자이자 시인인 콘라드 셀티스(Konrad Celtes)에 의해 발견되었고, 1507년 아우크스부르크 출신 학자인 콘라드 포이팅거(Konrad Peutinger, 1465년~1547년)에게 전해지면서 포이팅거 지도라 불리게 되었다. 이 지도는 1714년까지 포이팅거 가에서 보관해 오다가 오스트리아 장군이자 미술 감정가인 프린스 유진(Prince Eugene of Savoy)에게 넘겨졌고, 1737년 그가 사망하자 합스부르크 궁중 도서관에서 입수해 현재에 이른다.

이 지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598년 포이팅거의 지인인 마르쿠스 벨저(Marcus Welser)가 지도 제작자인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앤트워프의 출판업자 요하네스 모레투스(J. Moretus)에게 의뢰해 지도의 복간본이 간행되면서부터다. 그 후 1887년에 슈투트가르트 출신의 가톨릭 신부이자 지도학자인 콘라드 밀러(Konrad Miller)가 없어진 12번째 조각(이베리아 반도 부분)을 복원하면서 재간행되었다.

지도[편집]

포이팅거 지도, 이베리아에서 인도까지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