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치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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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아노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1488-90년경 ~ 1576년)는 북이탈리아 피에베 디 카도레에서 출생한 이탈리아의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했던 화가이다.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창작 시기는 베네치아 회화의 황금기와 맞아 떨어졌다.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은 경제상·문화상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9살이 되었을 때 베네치아로 가서 젠틸레 벨리니와 조바니 벨리니 형제로부터 사사받았다. 1513년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산 사물엘레에 자신의 작업장을 열었고 유럽 전역에서 찬양받는 화가로 발전했다. 1533년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고 그의 궁정화가로 임명되었다. 1545년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교황 바오로 3세의 초청받아서 로마를 방문했다. 1548년과 1550년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카를 5세와 그의 아들 펠리페 2세를 따라서 제국 의회가 있는 아욱스부르크에 갔다. 상당히 고령이었던 티치아노 베첼리오가 1576년 페스트로 죽었을 때 그는, 베네치아사상 가장 성공적인 화가였다.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별 가운데 있는 태양'이라고 불렸던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646점의 작품을 제작한 그사 살던 시대에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아주 생산적인 화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초상화, 풍경화, 신화적 소재를 다루고 종교적 주제를 담은 작품을 제작했다. <성스런 사랑과 세속의 사랑>, <성모 승천>, <바쿠스의 축제>,〈우르비노의 비너스〉등이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이었다.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작품의 특징을 이루는 것은 분명하게 드러나는 색채 주의며,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일생 그런 특징을 유지했다. 기나긴 생애의 마지막 무렵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극적인 양식의 단절을 완수했고 그것은 이미 바로크적 특성을 향해 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티치아노의 작품은 모든 중요한 수집품, 예를 들면 바티캄 미술 소장품에 포함되어 있었다. 대귀족, 데스테 가문, 곤차가 가문, 파르네세 가문, 합스부르크 가문과 같은 지배자 귀족 가문들도 자신들의 소장품을 위해서 수 많은 작품을 사들였다. 티치아노의 작품은 티치아노 베첼리오가 살아 있던 동안에도 판화와 복사본의 형태로 수용되었다. 랑베르 수스트리스(Lambert Sustris)나 자코포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 와 같이 16세기의 명망있던 화가들은 그를 모범으로 삼았다.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화법과 특히 그의 색채 처리는 그의 동시대 화가들만이 아니라 후세대의 화가들에게도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티치아노 베첼리오에게서 영향받은 화가들의 범위는 페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에서 시작해 앙투안 와토(Antoine Watteau)를 거쳐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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