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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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하디(영어: Thomas Hardy, OM, 1840년 6월 2일 ~ 1928년 1월 11일)는 영국소설가 · 시인이다.

1840년 6월 2일 도체스터 근방 스틴스퍼드(Stinsford)에서 석공인 아버지와 독서를 좋아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862년부터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한때 미술 평론가가 되려 했던 그는 시 짓기에 뜻을 두어 작품을 썼으나 인정받지 못하여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영국 남부의 웨섹스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는 그의 고향 도체스터를 모델로 한 것이다. 당시 도체스터는 농촌 지구의 상업 중심지 역할을 하긴 했으나 다소 외진 곳으로, 하디의 어린 시절에는 철도도 들어오지 않았다. 따라서 농촌 풍경, 농촌 사람들의 미신이나 풍습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경험은 훗날 그가 소설을 쓰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내용이 차차 어둡게 변하여 비난을 받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지내온 불안한 시대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디의 대표작으로는 웨섹스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광란의 무리를 떠나》, 《귀향》, 《숲의 사람들》,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더버빌가의 테스》, 《무명의 주드》 등이 있고, 장편 극시 《제왕들》 외에 많은 웨섹스 시편들이 있다. 하디의 작품들은 특정 지역, 즉 영국 남부 지역 농촌을 다루고 있어 지방색이 강하지만 결코 지역 소설에 머물지 않는다. 특히 그의 소설들은 시간을 초월하는 인간적 가치들과 당대의 핵심적 문제들을 제시하는 데 특출한 작가적 역량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된다.

1920년과 1925년에 각각 케임브리지 대학교옥스퍼드 대학교로부터 명예 문학박사학위를 받았고, 애버딘 대학교, 브리스틀 대학교 등에서도 명예 학위를 받았다. 자신의 저택 맥스게이트(Max Gate)에서 많은 유명 인사들을 접견하기도 한 하디는, 1925년에는 왕세자의 방문을 받기도 했다.

1928년 1월 11일, 하디는 아내 플로렌스 더그데일(Florence Dugdale)에게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시편을 읽어달라고 부탁하고 밤 9시경 사망했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고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고향에 묻히고 싶어 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심장은 스틴스퍼드 교회에 있는 사별한 첫 아내 에마 기퍼드(Emma Gifford)의 묘 옆에 매장되었다.

서훈[편집]

참고 문헌[편집]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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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편집]

  1. “The London Gazette”. 《The Gazette》 (영어) (런던) (28393): 4857. 1910년 7월 8일. 2016년 10월 19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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