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조식 (1501년)

문서 내용이 다른 언어로는 지원되지 않습니다.
새 주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나라면 임금이 벼슬을 줄 때왜 받지 않았을까?[편집]

나라면 임금이 벼슬을 줄 때에 벼슬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벼슬을 받아 임금의곁에서 정치를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만약 진짜로 백성을 사랑하고 생각을 하였다면 임금의 곁에서 상소문 따위를 올리지 않고 백성을 돌보고 자신이 쓴 '을묘사직소'처럼 임금의 덕을 키우고 썩어버린 고목을 다시 물을 주어 키우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조식은 바보같이 자신의 자존심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청빈한 성격과 고고한 선비라 불리는 것이 좋았나보다. 조식은 하나만 생각하고,둘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전기문에는 병법,지리,학문,예술 등 여러가지를 두루두루 배웠다는데 그 지식을 왜 백성을 돌보는 데에는 사용하지 않았을까? 조식은 말로만 백성을 사랑하고 보살핀다고 하였지, 행동으로서는 그렇게 백성을 직접 사랑하고 보살펴 주지 않았다. 그래, 정말로 임금의 곁에서 벼슬을 하지 않고 싶지않았으면 자신의 문하생들이 기다리는 지리산의 어느 마을에서라도 백성을 돌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책에는 그런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다. 그러니까 조식은 백성을 진정으로 보지 않앗다는 것이다. 소수의 백성이라도 백성이다, 그런데 자신이 사는 지리산의 마을 백성들을 보살펴주지 않았다. 백성들의 삶을 직접 보고 느껴야 했다. 그러니 조식은 벼슬은 하지 않앗지만 임금의 선임을 믿고 말로만 백성들을 돌보니 체험하니 그랬던 것이다. 나는 조식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편집]

윗 분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우선, 남명선생께서 벼슬을 받지 않으신 이유는 당시 조정(왕인 명종을 포함)의 집권세력이 철저히 부패하였기 때문입니다. 남명 선생도 귀하의 의견처럼 당연히 벼슬을 받아서 백성들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싶으셨겠지요.. 그러나, 남명에게 벼슬을 내린 이유가 정말로 남명을 중용하여, 백성을 위한 개혁정치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여론 무마용으로 불러서 생색내기로 아무 실권없는 자리로 불렀기 때문에 남명으로서는 뻔히 보이는 속임수에 장단을 맞춰줄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도둑넘 소굴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고.. 그 도둑넘 중에 두목은 왕(명종)과, 문정왕후/외척세력 그리고 부패한 조정관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썩은 물속에 깨끗한 물한방울 떨어뜨린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남명선생이 비록 벼슬은 받지 않았지만, 그는 백성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학문을 닦고, 훌륭한 제자들을 키워 미래를 준비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가 돌아가시고 난후 20년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정부군(관군)이 궤멸된 상황에서 왜적을 막아낸 의병장이 대부분 그의 문하에서 나오게 됩니다.(정인홍, 김면, 곽재우 등)그당시 어줍잖게 벼슬살았던 위인들(이율곡, 이황, 성혼, 정철 등)보다 더욱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