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유리명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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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의 근거 부족[편집]

본문 내용이 전체적으로 사료나 증명된 사실이 아닌 특정한 학설이나 주장으로 서술된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탁리와 사비의 처형'에 대해서 아무런 출처도 없이 '대(對)동부여 강경파를 처형한 것'이라 단정하는 등 사료에 없는 추측이나 가설의 수준에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특정한 설을 서술하려면 출처를 밝혀야 하며, '이러한 시각도 있다'는 형태로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므로 사료 및 백과사전 수준의 내용으로 수정하고, 특정한 방향성에 대해서는 출처 표시를 하고 이러한 시각도 있다는 형태로 부기하였습니다.

출처는 박영규의 한권으로 시리즈입니다. 박영규의 한국사 내의 위상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느정도 신뢰할 만한 학자라고 생각하여 해당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adidas (토론) 2008년 7월 11일 (금) 20:49 (KST)[답변]
저도 그 책일 것이라고 추측은 했었습니다. 그러나 박영규의 한권으로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학자가 쓴 학술 서적이 아니며, 엄밀하게 말해서 역사책도 아닙니다. 그것은 박영규라는 작가가 창작한 역사물이며, 역사서로서의 위상은 전혀 없고, 심지어 그 내용에는 명백하게 틀린 것들도 수없이 들어 있습니다. 이미 제가 위에 예를 든 탁리·사비의 처형 문제도 박영규 개인의 추측이 들어간 소설적인 창작일 뿐이며, 그 외에도 고구려와 부여가 계속 싸워왔다는 유리왕 초기의 내용도 전혀 근거가 없는 등 온통 사실무근의 창작일 뿐입니다. 게다가 현재 위키 백과에 서술된 고구려 관련 내용들은 역사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소설적인 서사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대소의 퇴각을 제풀에 지쳐 퇴각했다고 묘사하고, 신기하게도 병이 나았다는 표현, 유리왕이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는 등 거의 모든 서술이 백과사전의 서술이 아니라 소설적 창작의 서술 형태일 뿐입니다. 이것은 백과사전으로서의 공신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쓸데없이 분량만 늘려놓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소설적인 묘사는 전부 일반적인 서술로 바꿀 것이며 역사 기록을 넘어서는 가설적인 추측은 박영규의 주장으로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Xakyntos (토론) 2008년 7월 12일 (토) 01:54 (KST)[답변]
혹시 박영규 외에 삼국의 역사를 단행본으로 정리한 책이 있는지요? 논문이야 여러 개 보았습니다만, 단행본은 찾지 못했습니다. 박영규의 각 주장에 대해 검증할 정도의 능력은 안되는군요 ㅠㅠ adidas (토론) 2008년 7월 13일 (일) 00:24 (KST)[답변]
삼국의 역사를 정리한 책은 수없이 많습니다. 박영규의 한권으로 시리즈는 그 중에서도 가장 질이 낮은 책일 겁니다. 물론, 박영규의 책이 읽기에는 가장 재미있겠지만, 학술적인 면에서는 아예 논할 가치도 없죠. 특히 삼국 관련 내용들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증명되지도 않은 대륙 백제나, 거짓임이 판명된지 궐백년도 더 된 난하요수설 등을 여과없이 실어놓아 치명적인 약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나마 볼만한 책으로는 이종욱 교수의 《신라의 역사》, 김용만 교수의 저작들이 있죠. 그 외에도 통사 수준에서 정리된 책은 아주 많습니다. 참고해서 보세요.--Xakyntos (토론) 2008년 7월 13일 (일) 19:56 (KST)[답변]

표제어[편집]

[1], [2], [3]을 참조해 '유리왕'으로 이동했습니다.--백두 (토론) 2009년 8월 11일 (화) 16:19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