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강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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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부분[편집]

비판부분이 근거없다며 사용자:Reg-nob 께서 삭제하였습니다. 다음과 같이 비판부분을 옮겨적어 봅니다.--Alfpooh 2008년 3월 24일 (월) 17:47 (KST)[답변]

비판[편집]

유통시장 개방 1996년 당시 통상산업부 차관이였던 강만수는 유통시장 개방정책을 주도하여 법안을 심의 통과시켰다. 이는 대형할인점, 전자상거래등 새로운 유통업계의 확산을 가져왔으나 재래시장이나 슈퍼마켓등 영세유통업에게는 부정적으로 작용해 현재 이러한 소상공업인의 경쟁력 악화의 원인중 하나이다.

IMF 구제금융사건의 책임 1997년 3월 강만수는 재정경제부 차관이 되었다. 이때는 IMF 구제금융사건 바로 직전이였는데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환율을 700원대에 묶는 정부정책을 수행하였으며 이는 쉽게 1인당 소득 '1만달러'시대를 달성하기 쉬운 방법이였다. 하지만 경상수지 적자는 커져갔고 원화의 절하압박은 심해져갔으며 IMF 구제금융사건 당시의 경제 관료들은 정부에 의한 환율 관리에 실패를 하게 되었다. 이때문에 강만수는 IMF 구제금융사건의 직접적인 책임자중의 한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강만수는 저서 및 여러 기고에서 IMF 구제금융사건은 당시의 여러사건들의 복합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이명박 정부에서 취임후 정부에 의한 환율 관리에 대해 언급하여 새로운 우려를 낳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부분에 대한 의견을 토론페이지에 달아주시기 부탁드립니다.--Alfpooh 2008년 3월 24일 (월) 17:47 (KST)[답변]

해당 내용의 구체적인 근거가 제시되는 부분들은 살려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컨데, 1996년 당시의 법안의 구체적인 이름이 무엇인지, 정부제안법령이 맞는지, 제안 취지는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고, 그 법안의 통과 이후, 실제로 소상공인이 쇠퇴하였음을 입증할 통계자료가 있는지 등을 조사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Nichetas 2008년 3월 24일 (월) 18:07 (KST)[답변]

관련자료들[편집]

"IMF외환위기 직전의 상황과 위기의 원인 IMF외환위기가 발생한 원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직접 적인 이유는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었다는 사실이다. IMF외화위기 직전인 1997년 말 당시 원화의 환율은 840원/1달러 정도 였으며 지속적인 무역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조정되지 않았 다. 무역수지적자가 지속된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외환보유고가 줄어 든다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수출로 번 것 보다 수입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돈보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으 로 나가는 돈이 더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환율이 조정되어 원화의 가치를 떨어뜨려서 우리나라의 수출경쟁력 을 높여서 줄어든 외환보유고를 다시 채워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러나 당시 무역수지적자가 계속되었지만 환율은 조정되지 않았다. 그 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당시 김영삼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1인당 국민소득 1 만 달러 달성’의 상황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1인당 국민소득 1만달 러 달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소위 ‘선진국클럽’이라고 하는 OECD에 가입하는 등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한 것처럼 홍보하고 이것을 김영삼 정부의 업적인 양 내세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율이 조정되어 우리나라의 원화가치가 떨어지게 되면“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는 다시 1만 달러 미만으로 내려가게 된다. 예를 들어, 1인당 국민소득이 년 840만원이라면 840원/1달러의 환율 하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이지만 1000원/1달러의 환율하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 8400달러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정부는 대대적으로 홍보한‘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지키기 위해서 지속적인 무역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840원/1달러의 환율을 유지할 요인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내다팔고 원화를 사들여서 환율을 방 어해야만 했다. 이는 무역수지적자로 줄어드는 외환보유고의 고갈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1] 김승욱 교수 (신흥대 지적부동산정보과·부동산학박사)의 한국감정평가협회 기고 논문중 --Alfpooh 2008년 3월 24일 (월) 18:17 (KST)[답변]

"우리 경제는 지난 97년 12월 16일 IMF의 권고 하에 자유변동환율제로 이행한 바 있다. 그러나 IMF 이전에 비해 약화되기는 했지만 한국은행의 시장개입 강도는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에도 한국은행의 시장개입 초점은 대미달러 환율 안정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엔화의 대외가치 변동을 민감하게 반영하지 못해 원/엔 환율의 변동성이 크게 나타날 수 있는 과거의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한은의 외환시장 개입패턴 변화 LG경제연구원 심재웅, 1999년 10월 27일. --Alfpooh 2008년 3월 24일 (월) 18:23 (KST)[답변]

"강 전차관은 96년에 정부는 경제성장률 7.5%, 물가 4.5%, 경상수지적자 60억달러라는 ‘세마리토끼’를 잡는다고 큰 소리를 쳤으며 한국은행은 수출이 늘어나 경상수지가 개선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헛소리’를 했다고 밝혔다."[3] 조선일보의 강만수 전차관 인터뷰기사.--Alfpooh 2008년 3월 24일 (월) 19:04 (KST)[답변]

참고하세요[편집]

강만수 장관 청문회 봤던 사람으로 당시 박영선 의원이 강만수 통상산업부 차관의 재임 기간을 잘못 알고 있더거였습니다. 강 차관은 96년 12월부터 97년 2월까지 통상부 차관인데 법안은 96년 10월에 국회에 제출된거죠. 그러니 강 차관은 그 법안과는 상관 없는 사람인거죠. 박영선 의원의 주장은 차관 재임 당시 법안이 계류된거니 강 차관이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막 비판하더군요. 그리고 외환위기와 관련해 환율 방어를 추진하던 사람은 한보사태를 책임 지고 97년 2월 퇴임한 이석채 청와대 경제수석입니다. 아마 위 조선일보 기사에서 '헛소리'를 하던 사람이 바로 이석채 수석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 외환위기 당시 책임자라고 하면 강경식 부총리가 재판을 받았고, 노무현 정부 금융감독위원장이던 윤증현씨가 감사원 징계를 받았죠. 참고 하세요.

[4] [5]

—이 의견을 2008년 3월 25일 (화) 20:42에 쓴 사용자는 Niceguyrso(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서민경제 타격 부분[편집]

삭제할 이유가 있나요? 당시 비판이 많았는데요--1 (토론) 2011년 7월 29일 (금) 17:31 (KST)[답변]

외부 링크 수정됨 (2018년 11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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