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1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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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10세
덴마크 국왕
Christian X of Denmark.jpg
재위 1912년 5월 14일 ~ 1947년 4월 20일
종교 루터교
출생일 1870년 9월 26일(1870-09-26)
출생지 덴마크 덴마크 샬로텐룬 궁전
사망일 1947년 4월 20일 (76세)
사망지 덴마크 덴마크 코펜하겐 아말리엔보르 성
매장지 덴마크 덴마크 로스킬레 로스킬레 대성당
배우자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알렉산드리네
자녀 프레데리크 9세
부친 프레데리크 8세
모친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루이세
전임자 프레데리크 8세
후임자 프레데리크 9세
왕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왕가

크리스티안 10세(Christian X, 1870년 9월 26일 ~ 1947년 4월 20일)는 글뤽스부르크 왕가덴마크의 국왕이다.

생애[편집]

성장 과정[편집]

1870년에 코펜하겐 근처의 샤를 보성에서 태어났다. 1912년에 덴마크와 아이슬란드의 국왕으로 즉위한다.

1920년 부활절 위기[편집]

크리스티안10세는 즉위 후 독일에게 빼앗겼던 술레스비히 지방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서 결국1차대전의 패배로 불리한 입장에 서 있던 독일에게서 주민투표를 통해 북 슐레스비히를 되찾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투표 결과 남부 슐레스비히는 독일에 계속 남기로 했다. 이에 덴마크 민족주의자들은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남부 슐레스비히도 덴마크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크리스티안 10세 또한 이에 동조하며 수상 칼 테오도르 잘레(1866~1946)에게 슐레스비히의 통합을 명령했다. 그러나 잘레는 왕명에 따르지 않고 북부 슐레스비히만 통합한 후 자신은 수상직에서 사임했다. 크리스티안 10세는 이에 격분한 나머지 내각을 해산하고 보수파로 내각을 새로 구성해 남부 슐레스비히를 통합하려 했지만 내각 해산은 국민적인 반발로 이어졌고 이에 굴복한 그는 보수파 내각을 해산시킨 후 내각을 재구성했다. 이후 왕의 권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2차대전 당시의 그[편집]

1940년 4월 9일에 새벽 4시, 나치 독일은 독일군의 덴마크 침공으로 굴복하여 덴마크는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된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는 덴마크 같은 게르만 민족 국가라고 보고 있었기 때문에, 덴마크 정부와 함께 크리스티안 10 세 코펜하겐에 머무는 것을 허용되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폭압적인 레벤스보른 정책과 홀로코스트의 행각에 크게 분개한 크리스티안 10세는 히틀러가 장문의 편지를 짧게 답한 것을 시작으로 덴마크 왕궁에 걸린 하켄크로이츠기를 내린걸로 모자라서 자신의 나라에 있는 유태인집시족을 구하기 위해 전국민에게 노란별을 달라고 명령한다. 이에 크게 노한 아돌프 히틀러는 1944년 아이슬란드를 동군연합에서 독립시켜버렸고 덴마크 주재 대사를 소환하는 지경에 이르었다.

전후[편집]

2차대전 종전 이후 그는 국민들에게 크게 존경 받는 국왕이 되었고 사후 그는 덴마크의 국부로 칭송받게 되었다.

자녀[편집]

1898년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알렉산드리네와 결혼해 2남을 두었다

전 임
프레데리크 8세
덴마크 국왕
1912년 5월 14일 ~ 1947년 4월 20일
후 임
프레데리크 9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