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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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환
출생1875년 10월 6일(1875-10-06)
조선 경상도 김해군 다산면 미음리(茶山面 美音里) 114번지
사망1926년 10월 5일(1926-10-05)(50세)
일제강점기 경성부
국적대한민국
거주지중화민국 국민정부 대륙 본토 저장성 항저우
본관창녕(昌寧)
학력평남평양광성고등보통학교 1학년 중퇴(1903년 5월)
직업독립운동가정치인
경력대한독립단 서무과 과장
민국독립단 자의부 부장
조선사정연구회 감사국 국장
부모조시욱(부)
원주 원씨 첩실(모)
창녕 성씨 부인(적모)
함평 정씨 첩실(서모)
강릉 유씨 첩실(서모)
형제조성환(이복 서제)
정당무소속
웹사이트조정환(독립유공자 공훈록)

조정환(曺正煥, 1875년 10월 6일~1926년 10월 5일)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시대의 독립운동가정치인 출신이다. 본관창녕(昌寧)이고, 그의 아명(兒名)은 조진(曺珍)이었으며, 1880년 조정환(曺正煥)으로 개명(改名)하였다. (號)는 미차(美茶)·남강(南江·南崗). 그는 일찍이, 만주(주로 지린진저우) 및 중화민국 국민정부 대륙 본토(주로 항저우쑤저우·베이핑·난징·상하이)에서 대한제국 항일 독립 운동 등을 펼치었다.

생애[편집]

경상도 김해 부농가 댁의 서얼 후손으로, 1905년 늑약(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대한제국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대한제국 동포들한테 민족 의식을 고취시켰으며, 1910년 일제에 의하여 대한제국이 강점된 후에는 차라리 개혁 자강(改革 自强)과 실력 양성으로써 대한 독립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1919년 3·1 기미 대한 독립 운동 후에는 만주로 건너가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였다. 동단이 연호(年號)의 사용 문제로 인하여,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과 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으로 나누어지자 그는 조병준(趙秉準)·신우현(申禹鉉)·변창근(邊昌根) 등과 아울러 함께 민국독립단에 가담하여 민국독립단 자의부장(諮議部長)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만주에서 가족들과 연락을 끊으면서 마지막으로, 배다른 서얼 동생(異服 庶弟)인 조성환(曺誠煥)에게 다음과 같은 결별의 시(시문)를 보내어 독립(조국 광복)의 열망을 표하기도 하였다(시문의 내용: 丹心韓日月 白骨漢山川 却人間事 今朝獨立年. = 나의 일편단심은 조국의 해와 달 같은데 내 몸은 오히려 중화민국 땅에 묻히는구나. 이제 인간사를 뿌리쳐 버리니 오늘 아침이 독립의 해로구나.)

1925년 3월에는 부친상(아버지의 병사)으로 인하여 귀국하였으나, 동년 9월 15일에는 경성부(서울)에서 백남훈(白南薰)·백남운(白南雲)·백관수(白寬洙)·홍성하(洪性夏)·박승철(朴勝喆) 등과 함께 〈조선사정연구회(朝鮮事情硏究會)〉를 조직하여 민족주의 성향 대한 독립 운동의 방안 등을 모색하였다.

학력[편집]

가계[편집]

  • 직계
    • 부(父): 조시욱(曺始煜, 1848년 2월 8일(1848-02-08) ~ 1925년 3월 5일(1925-03-05))
    • 적모(嫡母): 창녕 성씨 부인(昌寧 成氏 夫人)
      • 이복 적형(異服 嫡兄): 조여환(曺如煥)
    • 서모(庶母): 함평 정씨 첩실(咸平 鄭氏 妾室)
      • 이복 서형(異服 庶兄): 조배환(曺培煥)
    • 생모(生母): 원주 원씨 첩실(原州 元氏 妾室)
      • 본인(本人): 조정환(曺正煥)
    • 서모(庶母): 강릉 유씨 첩실(江陵 劉氏 妾室)
      • 이복 서제(異服 庶弟): 조성환(曺誠煥)

사후[편집]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 3월 1일, 대통령 표창장·1990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 등을 각각으로 추서하였다.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