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국민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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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국민회의
भारतीय राष्ट्रीय काँग्रेस
Indian National Congress
Hand INC.svg
로고
약칭 INC (영문), 회의당
상징색 하늘[1][2]
이념 포괄정당
사회민주주의
사회자유주의[3]
세속주의
시민국민주의
스펙트럼 중도[4] ~ 중도좌파[5]
역사
창당 1885년
예하 부문
중앙당사 뉴델리
청년조직 인도 청년 회의
국제 부문
교섭단체 통합진보동맹
국제조직 진보동맹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의석
로크 사바
51 / 543
라자 사바
40 / 245

인도 국민회의(힌디어: भारतीय राष्ट्रीय काँग्रेस, 영어: Indian National Congress, INC, 印度國民會議)는 1885년에 설립된 사회자유주의 및 중도좌익 정당이다.

1885년에 창당되었을 당시, 대영제국의 아시아, 아프리카 식민지들 중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민족주의 계파 단체였으며, 19세기 후반, 특히 1920년대 부터는 마하트마 간디의 지도 아래 인도 독립 운동의 주체로서 활동하였다. 인도 국민회의는 끝내 대영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루어냈으며, 이는 제국의 타 식민지들의 분리운동 움직임에 불을 붙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도 국민회의는 포괄정당으로서, 주된 정치적 성향은 사회자유주의, 온건적 사회민주주의 성향으로 여겨진다. 주된 정책 강령은 마하트마 간디의 '사르보다야'(Sarvodaya)에 기반하고 있다. 참고로 사르보다야란 경제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한 하층민들,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까지 포함하여 사회 전반적인 질을 높여다가야 한다는 이념이다. 인도 국민회의는 이와 같은 강령을 토대로, 사회 정의, 자유, 평등, 복지 국가, 진보적이고 세속주의 국가 정치관 등을 고수하고 있다.

1947년에 인도가 독립한 이후, 인도 국민회의는 인도 연방정부에서 주류를 차지하였으며, 이어 세워진 지방 주 정부들에서도 주도권을 잡았다. 17번의 총선들 중, 첫 7번을 연달아 압도적으로 승리하였으며, 이후 3번의 선거에서도 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하여 중앙 정부를 약 5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장악하였다. 6명의 총리들을 배출하였는데, 예를 들어 자와할랄 네루 총리, 가장 최근의 만모한 싱 총리 등이 있다. 2014년과 2019년에 치러진 총선에서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였으나, 인도 국민회의는 여전히 인도 인민당과 함께 인도의 양당 체제에서 한 축을 담당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2014년에 치러진 총선에서는 인도의 하원격인 로크 사바에서 44석을 겨우 차지하며 참패하였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인도의 좌파 동맹인 통합진보동맹이 주축이 되어 만모한 싱 총리의 주도 아래 중앙정부를 구성하였으며, 이 기간동안 소냐 간디가 당의 당수를 맡아 독립 이후 최장수 대표가 되었다. 인도 국민회의는 2019년에 치러진 총선에서도 참패하며, 펀자브, 라자스탄과 같은 지역들에서만 겨우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역사[편집]

1885년 봄베이에서 설립된 가장 오래된 정당으로서, 반영 독립운동의 주체로서 활동했다. 지식인·지주·상인·고리대금업자 등으로 구성된 정치 단체로서 영국인도 간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고 영국의 인도 통치에 협력하기 위한 조직으로 출발하였다. 영국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이면서 불공정하고 유해한 부분에 대해서는 개혁을 요구하는 포지션이었고,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는 데 있어서의 편의를 도모하고 반영 운동을 무마하려고 애썼다.

이런 친영 단체가 반영 운동을 주도하고, 민족 운동을 지도하게 된 것은 20세기에 접어든 뒤부터이다. 1905년에 영국이 인도에서 반영 여론이 높은 벵골 지방을 동·서로 분열하는 벵골 분할령을 내렸는데, 벵골 분할령은 영국이 인도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한 정책으로서 반영 기운이 높은 벵골을 힌두 교도가 많은 서 벵골과 이슬람 교도가 많은 동 벵골로 분단함으로써 민족적 통합을 분열시키고자 하였던 법이다. 이에 인도 국민 회의는 영국의 기만적 행동에 반기를 들어 반영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인도 국민 회의는 영국 상품을 배척하였고, 완전 자치를 표방하는 '스와라지' 운동과 인도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구호로 '스와데시' 운동 등을 주도해 나갔으며, 국민·민족 교육 등을 주장하면서 민족의 일체감을 높였고, 국내 산업의 발전을 유도하는 등에 기여를 했다. 이같은 인도 국민 회의의 활약으로 영국은 1911년에 벵골 분할령을 철회하였다.

독립 이후에는 인도의 가장 지배적인 정당이었으며, 1945년부터 1977년 총선 때까지는 인도의 유일한 집권정당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3차 경제 계획이 예상 외의 저조한 성과를 거두고 무리하게 진행된 산아 제한 정책 등에 대한 불만이 커져갔고, 언론과 정적을 탄압하는 인디라 간디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며 1977년부터 1980년까지는 야당으로 밀려나야만 했다.

허나 당시 인디라 간디의 국민회의를 몰아내고 집권했던 여당 세력이 인디라 간디를 축출하기 위해 좌에서 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력이 연합한 세력이었기에, 얼마 지나지 안에 여당 내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나며 신임을 잃게 되었다. 이후 국민회의는 1980년 총선에서 다시 압승하며 여당으로 복귀했고, 이후 1984년에 인디라 간디가 암살당하자 이듬해까지 이어진 추모 열기로 인하여 또다시 국민회의가 압승을 거두게 된다. 이후 1989년에 다시 정권을 상실하지만, 인디라 간디의 아들인 라지브 간디가 테러로 죽으며 또다시 추모 열기가 일며 나라심하 라오 총리의 지휘 아래 다시 정권을 재창출하였다.

1996년에서 2003년까지 인도 인민당이 급성장하며 야당으로 밀려났다가, 2004년에 만모한 싱 총리 체제 아래 집권하며 인도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는 평을 들었다. 이후 재집권을 노렸으나, 2010년 들어 성장이 정체되며 2014년에 참패, 야당으로 밀려났다. 이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 인민당이 극우, 힌두 근본주의 등으로 얼룩지며 국민회의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강해지는가 싶었으나, 당수인 라훌 간디의 리더십 부족, 지나치게 과거의 향수에만 집착한 선거 마케팅, 권력 세습 구도와 같은 타고난 약점들로 인하여 2019년 총선에서 543석 중 52석을 겨우 확보하며 참패하였다. 이후 라훌 간디는 당수직에서 사퇴하였으며, 소냐 간디가 현재 당을 지도하고 있다.


상징[편집]

2014년 총선에서는 손가락이 모아진 채로 바닥을 드러낸 왼손을 정면으로 그린 모습을 당의 상징으로 채택하였다. 이 상징은 1977년에 인디라 간디가 당에서 탈퇴하여 새로운 국민회의를 구성할 적 부터 사용한 상징이다. 1952년부터 1971년까지의 상징은 쟁기를 진 황소의 형태였으며, 1971년부터 1977년까지는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새끼 물소의 모습을 상징으로 채택한 바 있다.

총선[편집]

연도 선거 당대표 의석수 의석 변동 득표율 부동표 결과
1934 5대 중앙 입법 의회 선거 부랍하이 데사이 42 / 147 42 N/A
1945 6대 중앙 입법 의회 선거 사랏 찬드라 보세 59 / 102 17 인도 임시 정부 (1946–1947)
1951 1대 로크 사바 자와할랄 네루 364 / 489 364 44.99% 여당
1957 2대 로크 사바 371 / 494 7 47.78% 2.79% 여당
1962 3대 로크 사바 361 / 494 10 44.72% 3.06% 여당
1967 4대 로크 사바 인디라 간디 283 / 520 78 40.78% 2.94% 여당
1971 5대 로크 사바 352 / 518 69 43.68% 2.90% 여당
1977 6대 로크 사바 153 / 542 199 34.52% 9.16% 여당
1980 7대 로크 사바 351 / 542 198 42.69% 8.17% 여당
1984 8대 로크 사바 라지브 간디 415 / 533 64 49.01% 6.32% 여당
1989 9대 로크 사바 197 / 545 218 39.53% 9.48% 야당
1991 10대 로크 사바 P. V. 나라심하 라오 244 / 545 47 35.66% 3.87% 여당
1996 11대 로크 사바 140 / 545 104 28.80% 7.46% 야당
1998 12대 로크 사바 시타람 케스리 141 / 545 1 25.82% 2.98% 야당
1999 13대 로크 사바 소냐 간디 114 / 545 27 28.30% 2.48% 야당
2004 14대 로크 사바 145 / 543 31 26.7% 1.6% 여당
2009 15대 로크 사바 206 / 543 61 28.55% 2.02% 여당
2014 16대 로크 사바 라훌 간디 44 / 543 162 19.3% 9.25% 야당
2019 17대 로크 사바 52 / 543 8 19.5% 0.2% 야당

정책[편집]

인도 국민회의는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계열의 정당으로, 자유, 평등, 관용, 세속주의, 개인 권리 등을 옹호한다. 냉전 시기 동안 인도는 중립을 주창하며 제1 세계제2 세계와 모두 동등하게 대했으나, 두 진영 모두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등 최대한 냉전 시기의 갈등에 휘말려들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다만 미국이 파키스탄을 지원한 일로 1971년에 인도가 소련과 우호 협정을 맺은 바 있다. 2004년에 집권 여당이 되었을 때에는 다양한 보건 정책, 주민등록번호 부여, 고용 보장 정책 등을 펼치며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 외에도 정보의 권리 등과 관련된 법을 제정하였다.

경제 정책[편집]

인도 국민회의의 경제 정강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뉘어진다. 첫 시기는 독립 직후부터 1991년까지인데, 이 때까지는 국가 경제 규모 확립에 대부분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1991년에 소련이 패망한 직후부터는 경제 민주화가 시작되었고, 인도 국민회의의 정책 기조도 이와 함께 더 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변모하였다.

독립 직후, 자와할랄 네루 총리는 외국에서 들여오는 수입품들을 국산 공산품들로 대체하는 수입 대체 산업화 정책(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을 기조로 삼아 인도의 산업화를 진행하였고, 국가가 통제하는 공공 경제 분야와 민간이 경영하는 시장 경제 분야를 분리하였다. 그는 인도의 현대화에는 국가적인 중공업 산업의 발달이 핵심이라고 여겼고, 대부분의 자금들을 석탄, 제철, 에너지 산업 등에 투자하였다. 이 당시에는 각종 규제들이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다가 사업 허가도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주어졌기에 인도 내에서 제대로 된 민간 사업의 규모 확장이 이루어지기 어려웠으며, 이때를 License Raj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 규제는 네루 총리가 국가에 의해 주도되는 계획 경제를 내세웠기 때문이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민간 회사가 무언가를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거의 80여 개에 달하는 정부 기관들의 심사를 거쳐야 했으며, 생산이 허가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정부에 의해 간섭을 받았다. 이러한 통제적인 시스템은 인디라 간디 총리 때에도 유지되었고, 은행업, 철강업, 석유 화학업과 같은 핵심적인 산업들은 아예 국유화되어 있었다. 다만 라지브 간디의 정책 하에서는 일부 완화적인 조치가 등장하기도 하였으나, 정책 기조 자체에 큰 변화는 없었다.

1991년, 나라심하 라오가 이끄는 인도 국민회의는 1991년 경제위기를 바탕으로 경제 민주화를 추진하게 된다. 이 정책으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사업 확장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금융 규제를 완화하였고, 무역을 다자화, 자유화하는 등 여러 개혁 정책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정책들에 힘입어 국가의 부채가 줄어들었고, 민간 인프라가 크게 확충되었으며, 민간 산업들이 성장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외국인 직접 투자도 활성화되어 인도 정부가 외부에서 융자를 받아옴과 동시에 더욱 유연한 경제정책을 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나라심하 라오는 경제 전문가이자 경제 개혁의 주역이었던 만모한 싱에게 후임을 맡기고 퇴임하였다.

2004년에 만모하 싱은 인도 연방정부의 총리로 선출되었고, 2009년 총선 이후에도 총리직을 맡았다. 만모하 싱 정권은 금융업을 개편하고, 공기업들을 민간 기업들로 전환하는 정책을 유지하였다. 농부들을 과도한 빚에서 구제하기 위해 자금을 지원하였으며, 2005년에는 매출세 대신 부가가치세를 도입하였다. 인도는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를 직접적으로 맞는 것은 피해 나갔으며,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총리가 추진했던 국가 규모의 도로 건설 사업을 재개하였다.

현재의 인도는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와 민간 주도의 시장경제가 혼합된 구조이며, 인도 국민회의는 현재에도 수입 대체 산업화 정책을 옹호하고 있다. 또한 인도 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 민주화가 추가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도 공과대학교

복지, 교육 정책[편집]

인도 국민회의는 2005년에 국가 주도의 교외 거주민을 위한 보건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이로 인해 50만 명에 달하는 사회 인력을 충원하였다. 2006년에는 인도 공과대학교, 인도 의학전문대학교 등 상위 명문대 모집생의 27%를 하위 계층들을 위해 남겨두라는 지시를 하였고, 이는 기득권층의 극심한 반발을 낳아 결국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또한 교육 복지를 확대하여 학생들에게 점심 식사를 제공하는 정책을 펴기도 했으며, 낙후된 지역들에 새로운 학교들을 많이 열었다. 특히 만모한 싱의 정책 하에 8개에 달하는 공과대학들이 인도 전역에 새롭게 설립되었다.

외교 정책[편집]

인도 국민회의는 나라심하 라오 총리 때의 외교 기조를 현재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이에는 파키스탄과 평화로운 공존 정책, 해외 국빈들과의 정상 회담을 통한 외교술 등이 포함된다. 국민회의는 중국과 협상을 통하여 국경분쟁을 해결하려 하였으나 의견 차이로 무산되었다.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 또한 인도 국민회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들 중 하나인데, 특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가 인도를 국빈방문하였을 때에 만모한 싱 총리가 아프가니스탄의 학교, 병원 설립과 같은 인도적 지원에 대대적인 자금을 퍼부었다. 현재 인도는 아프가니스탄의 최대 원조국이기도 하다.

2004년부터 2014년까지 만모한 싱 총리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섰는데, 만모한 싱 총리는 2005년에 미국을 방문하여 핵합의를 이끌어냈고, 당시 미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가 2006년에 인도를 방문하였다. 이 방문으로 인해, 인도가 IAEA의 핵시설 사찰을 받는 대신 기술 원조와 경제적 투자들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년에 걸친 협의 끝에 2008년 10월에 핵 협정이 타결되었다.

인도 국민회의의 외교 정책은 일본, 유럽 연합, 독일, 영국,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들에도 호의적이다. 이란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이어나갔으며, 파키스탄과의 평화협상을 지지부진하지만 어느정도 이끌어나갔다. 또한 여타 개발도상국과의 관계개선도 중요시하여, 남아프리카, 남미 지역의 국가와도 친선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각주[편집]

  1. “India General (Lok Sabha) Election 2014 Results”. 《mapsofindia.com》. 
  2. “Election Results India, General Elections Results, Lok Sabha Polls Results India - IBNLive”. 《in.com》. 2015년 4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5월 6일에 확인함. 
  3. N. S. Gehlot (1991). 《The Congress Party in India: Policies, Culture, Performance》. Deep & Deep Publications. 150–200쪽. ISBN 978-81-7100-306-8. 
  4. “India's election results were more than a 'Modi wave'. 《Washington Post. 2019년 5월 31일에 확인함. The BJP's primary rival, the centrist Indian National Congress (Congress), won only 52 seats. 
  5. “Indian National Congress – about INC, history, symbol, leaders and more”. Elections.in. 2014년 2월 7일. 2014년 5월 3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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