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 (18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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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李鍾禹, 1899년 12월 22일 ~ 1981년 2월 7일)은 일제강점기대한민국의 서양화가, 교수, 교육자이다. 는 설초(雪蕉)이다.

생애[편집]

1899년 황해도 봉산 출생, 1917년 평양고보(平壤高普)를 졸업한 후, 1923년 니혼미술학교(日本美術學校)를 졸업했다. 1923년~1945년 중앙고보(中央高普)의 교원 및 교감을 역임했으며, 1925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가 슈하이에프 미술연구소에서 수학했다. 1927년 살롱 도톤전에 〈여인상〉 및 〈인형이 있는 정물〉을 출품하여 입선했고, 경신학교(儆新學校), 평양 삭성회(朔星會) 회화연구소, 중앙고보 등에서 교사로 일했다. 1928년에는 제1회 개인전을 가졌으며, 1934년 선전(鮮展)에서 작품 〈추억〉으로 3등상을 받았다.[1]

1945년 조선미술협회 회장, 1949년~1961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1951년~1958년 홍익대학교 교수 및 미술과장, 미술학부장, 홍익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1952년 문총(文總) 부회장, 1960년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문화훈장 대통령장, 예술원 공로상을 수상하였다.[1]

프랑스 유학 이후의 작품 경향은 일본식 유화의 기반을 벗어나 프랑스 인상파 아류(亞流)의 사실적인 표법(描法)에 충실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1]

각주[편집]

  1. 한국미술/한국미술의 흐름/한국 근대미술/한국근대의 서양화/이종우, 《글로벌 세계 대백과》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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