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한 (18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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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한(李容漢, 1875년 음력 11월 19일 ~ ?)은 대한제국일제강점기의 관료이다.

생애[편집]

20대 중반인 1900년일본에 유학하여 신학문을 공부했다. 나라시의 보통학관을 거쳐 교토부에서 중학 과정을 마쳤고, 1903년에는 오사카시의 상업학교에 입학하였다.

1905년오사카 시립 대학의 전신인 오사카 고등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뒤 관계에 입문하였다. 1907년에 판임관 7급의 농상공부 주사로 관직을 시작하였으며, 곧 품계 9품의 농상공부 서기랑이 되었다. 이 시기에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촉구하는 일진회 회원으로 활동하여, 1907년 3월부터 일진회 총무국 교섭위원을 역임하였다.[1]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어 조선총독부 소속으로 이동되었다. 경상북도 개령군 군수로 임명되고, 칠곡군달성군, 경산군 군수를 차례로 지냈다. 달성군수로 있을 때는 경상북도 지방토지조사위원회의 임시위원도 겸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서보장을 수여 받는 등 경산군수이던 1922년을 기준으로 종6위 훈6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한국병합기념장과 다이쇼대례기념장도 수여받았다.

퇴관 후에도 조선소작인상조회에 참여하는 등 사회 활동을 계속했다.[2] 이 단체는 소작인과 지주,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갈등이 심해지고 공산주의 사상이 유입되자, 노동자와 농민의 계급의식 각성을 막기 위해 송병준이 중심이 되어 발기했다. 이용한은 조선소작인상조회의 평의원을 맡았고, 이 단체를 포함하여 친일을 표방한 여러 단체가 연합한 각파유지연맹에는 발기인으로 참가했다.

사후[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각주[편집]

  1.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2004년 12월 27일). 《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5쪽쪽. ISBN 8995330724. 
  2.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2004년 12월 27일). 《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445~446쪽쪽. ISBN 899533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