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반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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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국공
澄國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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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 세가(世家) 수령 | |
재위 | ? ~ 1518년 |
즉위식 | ? |
전임 | 부군공 |
후임 | 조조 정황제 |
후여조의 징국공(澄國公) | |
재위 | 1509년 ~ 1518년 |
즉위식 | 1509년 |
전임 | 부군공 (사실상) |
후임 | 흥국공 (사실상) |
이름 | |
휘 | 응우옌반르우 |
이칭 | 응우옌반타오 |
시호 | 징국공(澄國公) |
신상정보 | |
출생일 | ? |
사망일 | 1518년 |
부친 | 부군공 응우옌니으짝 |
모친 | 부군공부인 매씨 |
배우자 | 징국공부인 매씨 |
응우옌반르우(Nguyễn Văn Lưu, 阮文溜/완문류, ? ~ 1518년)는 베트남 후 레 왕조 시기의 인물로 응우옌씨 정권을 세운 응우옌낌의 부친이다. 다른 이름은 응우옌반타오[1]이고 응우옌니으짝의 아들이다.
생애[편집]
응우옌반르우는 8살의 나이에 공부에 능했고 15살에 무술을 익혔으며, 헌종조 당시 세가(世家)의 아들로써 전병(典兵) 및 경략사(經略使)를 지냈다. 이후 레 위목제조 당시 위목제가 폭정을 저지르자 응우옌반르우는 레 양익제로 즉위하는 여형에게 투항, 청화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현 하노이를 점거하여 위목제를 추방시키는데 일조하였다.
1509년, 양익제가 즉위하자 태부 및 징국공(澄國公)에 책봉되었고 1518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후 손자인 응우옌호앙이 응우옌씨 정권의 군주로 즉위하자 응우옌반르우를 기리는 징국공묘(澄國公廟)를 세워 주기적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