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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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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순(尹承順, ? ~ 1392년)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윤척(尹陟)의 3남이다.

상호군(上護軍),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 1375년(우왕 원년) 경상도부원수(慶尙道副元帥), 1377년(우왕 3) 계림부윤, 1379년(우왕 5) 지문하부사, 1389년(창왕 원년) 문하평리를 거쳐 1392년 판개성부사를 역임했다. 조선 성종의 제3계비 정현왕후의 증조부이자, 세종의 손주사위 윤탕로의 증조부였다. 또한 세조정희왕후는 그의 남동생 윤승례의 손녀로, 정희왕후의 종조부가 된다.

아버지는 군부판서(軍簿判書) 보리공신 영평군(鈴平君) 윤척(尹陟)이고, 어머니는 판소부시사(判少府寺事) 이광기(李光起)의 차녀이다. 윤관의 6남 윤언이의 8대손이며, 7대조는 그의 3남으로 무신정변에 살해된 윤돈신이다. 윤인첨은 종7대조가 된다. 윤척의 삼남이며 형제로는 형 승휴, 동생 승례가 있었다.

1367년(공민왕 16) 상호군(上護軍)으로서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 오인택(吳仁澤), 상호군 조린(趙璘) 등과 함께 신돈(辛旽)의 제거를 모의했으나, 일이 누설되어 곤장을 맞은 뒤 관노(官奴)가 되어 남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1371년(공민왕 20) 신돈이 주살된 후 소환되어 다시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에 임명되었고[1], 1375년(우왕 원년) 경상도부원수(慶尙道副元帥), 1377년(우왕 3) 계림부윤(鷄林府尹)으로서 왜구를 물리쳐 전공을 세웠다.[2]

1379년(우왕 5)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있었는데, 양백연(楊伯淵)의 옥사에 연루되어 수졸(戍卒)로 배치되었다.[3]

이후 복직되어, 1389년(창왕 원년) 문하평리(門下評理)로서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 권근(權近)과 함께 사신으로 명에 다녀왔는데, 이때 왕씨(王氏)로 공민왕(恭愍王)의 후사를 정하라는 황제의 지시를 전함으로써 창왕(昌王)이 폐위되고, 신종(神宗)의 7대손인 정창군(定昌君)이 공양왕(恭讓王)으로 즉위하였다.[4]

이후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를 역임했으며, 1392년(공양왕 3) 졸하자 충간(忠簡)이라는 시호를 받았다.[5]

그의 차남 윤목(尹穆)은 1410년 민무구, 민무회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형당한다. 그는 조선 건국 직전에 사망했지만, 조카 윤번의 딸이 조선 세종의 차남 수양대군(뒷날의 세조)와 혼인했다. 또한 그의 증손자 윤사로는 세종의 서녀 정현옹주와 혼인했고, 윤탕로의 6촌 여동생이자 그의 다른 증손녀 정현왕후는 성종의 제3계비였다.

중종 때의 대윤, 소윤은 모두 윤번의 후손으로 대윤 윤임은 윤번의 4대손, 소윤 윤원형, 윤원로는 윤번의 5대손이다. 윤승순에게는 각각 종5대손, 종6대손이 된다.

가족 관계

[원본 편집]
  • 증조 - 윤보(尹珤, ? ~ 1329년) : 수도첨의정승(守都僉議政丞)·영평부원군(鈴平府院君), 문현공(文顯公)
    • 조부 - 윤안숙(尹安淑) :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 양간공(良簡公)
      • 아버지 - 윤척(尹陟, ? ~ 1384년) : 영평군(鈴平君)
      • 어머니 - 판소부시사(判少府寺事) 이광기(李光起)의 차녀
        • 형 - 윤승휴(尹承休) :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
        • 형 - 윤승도(尹承度)
        • 동생 - 윤승경(尹承慶) : 삼사좌윤(三司左尹)
        • 동생 - 윤승례(尹承禮) : 판도판서(版圖判書), 증(贈) 영의정(領議政), 윤번(尹璠, 1384년 ~ 1448년)의 아버지
      • 부인 - 판도판서, 증 의정부정승(議政府政丞)·단양백(丹陽伯) 이거경(李居敬)의 장녀
  1. 『고려사』 「조린전」
  2. 『고려사』 「신우전」
  3. 『고려사』 「양백연전」
  4. 『고려사』 「신창전」
  5. 『고려사』 「공양왕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