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KIWI/2024년 6호/월별핫뷰
2023년 12월 문서 탑뷰는 영화 서울의 봄의 흥행으로 관련된 단어들이 순위권에 등장하였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의 하루를 재구성한 작품의 영향으로 그 때 그시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1979~80년 사이에 한국에서 벌어졌던 민주화운동인 서울의 봄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군부세력인 하나회가 어떤 사건들을 일으켰는지 주요 사건과 인물에 대해 기록된 위키백과 문서들을 소개합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총격으로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김재규는 자유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처단하였다는 주장을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권력암투과정에서 충동적으로 일으킨 범행이라는 설, 유신정권 선포 직후부터 은밀히 준비된 쿠데타였다는 설, 미국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 시해를 은밀히 조장했다는 설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일시적으로 권력공백이 발생하였고, 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면서 서울의 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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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사건 | 134 | 2005 | 748 | 83,300 |
박정희 | 49 | 2004 | 7,705 | 260,395 |
김재규 | 71 | 2004 | 864 | 39,766 |
서울의 봄은 1979년 10.26 사건의 발생에서부터 신군부의 5·17 쿠데타까지 민주화 운동 일어났던 기간으로 체코의 프라하의 봄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두 사건 모두 군대의 무력 진압으로 끝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979년 12월 6일에 긴급조치가 해제되고, 재야인사들이 복권되면서 개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민주화를 이룩할 것이라는 기대가 일었습니다. 1980년 신학기가 시작되지 대학에서는 어용 교수 퇴진과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하는 학원민주화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침내 1980년 5월 20일에 국회를 열어 계엄령을 해제하고, 유신헌법 개정논의를 하기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국회가 열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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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 4 | 2008 | 110 | 5,674 |
최규하 | 68 | 2005 | 868 | 62,375 |
김영삼 | 81 | 2003 | 2,929 | 282,100 |
김대중 | 133 | 2002 | 5,222 | 331,375 |
1979년 12월 12일에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없이 하나회가 벌인 쿠테타로 정승화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을 강제로 연행하고, 이에 대해 반발하는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 등에 대해 하극상을 감행하고, 무력으로 제압하여 연행하였습니다. 12월 13일 새벽 육군참모총장 연행에 대해 대통령의 사후 재가를 받아내며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의중대로 사건은 마무리 됩니다. 이후 12·12 군사 반란에 비판적인 장성들이 내쫒기거나 한직으로 좌천되면서 정권 장악을 위한 도구로 군이 변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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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영화) | 20 | 2023 | 180 | 9,619 |
12·12 군사 반란 | 9 | 2005 | 683 | 62,788 |
하나회 | 14 | 2005 | 417 | 55,427 |
전두환 | 7 | 2004 | 4,409 | 277,383 |
노태우 | 19 | 2004 | 1,467 | 173,457 |
장세동 | 110 | 2005 | 297 | 16,125 |
수도방위사령부 | 106 | 2011 | 255 | 15,316 |
노재현 | 92 | 2009 | 124 | 6,190 |
정승화 | 21 | 2005 | 478 | 30,003 |
장태완 | 12 | 2008 | 435 | 16,845 |
정병주 | 56 | 2010 | 215 | 10,738 |
김오랑 | 114 | 2009 | 160 | 7,384 |
1980년 4월말부터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을 겸임하는 전두환에 대한 학생 운동권과 정치권의 경계가 형성되었습니다. 5월 13일부터 대학생들은 거리로 나와 가두시위를 벌였고, 5월 15일에는 서울역에 대학생 10만명이 결집하였습니다. 철야농성을 할 지, 쿠테타의 빌미를 줄 수 있으므로 해산 할지에 대해 갑론을박 끝에 이날 오후8시 해산을 결정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서울역 회군이라고 부릅니다. 이틀 뒤인 5월 17일 최규하 대통령에게 전두환이 비상계엄 전국확대, 국회해산, 비상기구설치를 강요하면서 중앙청에 군인들이 도열한 가운데 비상계엄령 전국확대가 통과됩니다. 다음날 새벽 국회가 탱크로 봉쇄되고, 학생·정치인·재야인사가 연행되면서 서울의 봄은 꺾이고 맙니다.
한편 비상계엄으로 대학에 계엄군이 배치되고 휴교령이 내렸음에도 전남대학교에서는 계엄령 확대와 휴교령에 반발하는 학생 수백명이 모였고, 공수부대의 대검·곤봉을 통한 과격진압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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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쿠데타 | 40 | 2009 | 395 | 43,226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 6 | 2004 | 2,504 | 149,485 |
2024년 1월 문서 탑뷰는 카타르에서 열린 2023년 AFC 아시안컵 관련 페이지들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1월31일까지는 16강이 진행중이었기에 그 시점의 문서순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손으로 아시아 스포츠 국가 대표팀의 근황을 갱신할 수 있습니다.
AFC 아시안컵은 아시아 축구 연맹(AFC)이 주관하는 국가대항축구대회입니다. 1956년부터 2004년까지 4년마다 열리다가 2007년부터 홀수년 개최로 바뀌어 현재에 이릅니다. 지난 17번의 대회 동안 9개국이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이번 아시안컵은 아시아에서 강호로 여겨졌던 대한민국, 일본, 이란, 호주, 우즈베키스탄이 모두 토너먼트에 떨어지고, 카타르와 요르단의 결승전 끝에 3:1로 카타르가 지난대회에 이어 2연속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카타르가 아시아의 새로운 강팀으로 떠오를 지 주목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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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아시안컵 | 2 | 2006 | 673 | 33,141 |
2023년 AFC 아시안컵 | 13 | 2015 | 822 | 41,642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956년 첫 대회와 두번째 대회를 연이어 우승한 후 오랫동안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습니다. 2015년 호주에서 열린 대회에서 오랜만에 결승에 진출했지만 2-1로 호주에 아쉽게 패하였습니다.
2023년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하였지만, 조별리그에서 요르단과 2:2, 말레이시아와 3:3으로 비기며 경기운영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었습니다. 16강에서 사우디아라비아, 8강에서 호주와 연장전을 치르고 간신히 4강에 오른 대표팀은 요르단과 다시 조우한 후 2:0으로 패하고 맙니다.
2월 15일 클린스만 감독이 경질되며, 새로운 사령탑과 함께 다음 월드컵 예선과 아시안컵 우승을 기약해야하는 대표팀에게는 조직력 재건이라는 무거운 과제가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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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AFC 아시안컵 성적 | 156 | 2019 | 161 | 67,488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67 | 2005 | 9,609 | 88,949 |
위르겐 클린스만 | 81 | 2006 | 397 | 78,607 |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 선임 위원장을 맡아 벤투 감독을 선임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김판곤 전 위원장이 2022년부터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을 맡아 43년만의 AFC 아시안컵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운명의 장난인지 조별리그 E조에서 고국인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만난 그는 정규시간 2:2 동점에 이어 후반 추가 시간에 한 골씩 더 주고받으며 3:3으로 비겼습니다. 토너먼트에는 가지 못했지만, 조국을 상대로 선전을 한 김판곤 감독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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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 164 | 2007 | 198 | 33,896 |
김판곤 | 9 | 2009 | 157 | 13,894 |
이번 아시안컵에서 가장 많은 연봉인 3000만 유로를 받는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한국과의 16강전에서 한 행동으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조별리그 3차전에서 힘겨운 경기를 치르고 올라온 대한민국보다 체력적 여유가 있었지만 후반1분의 첫골 이후 침대축구로 일관한 것이 독이되었을까요? 후반 종료 1분전 조규성의 골으로 연장전으로 끌려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은 승부차기에서 2-4로 패배하며 한국 대표팀을 8강에 보내주고 맙니다. 승부차기가 끝나기 전에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경기장에서 조기퇴장하면서 책임감과 경기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비난이 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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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 109 | 2006 | 415 | 45,810 |
로베르토 만치니 | 58 | 2010 | 228 | 20,131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은 이번 아시안컵 8강에서 탈락하였습니다. 조별리그에서 한 수 아래로 평가받으며 베트남과 이라크에 2골, 인도네시아에 1골을 내준 수비불안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16강에서 바레인을 만나 3:1로 승리했지만, 내준 1골은 자책골이었습니다. 결국 2월 3일 아시아의 또다른 강호 이란에 2:1로 패배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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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118 | 2005 | 1,269 | 74,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