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태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요 태조(遼 太祖, 872년~926년, 재위: 907년~926년)는 요나라의 초대 황제이다. 이름은 야율 아보기(耶律 阿保機). 시호는 대성대명신열천황제(大聖大明神烈天皇帝)이다. '옐뤼 아바오지'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야율아보기의 중국어 발음이 잘못 전해진 것이다. 거란어로 발음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1]

생애[편집]

그는 872년 태어났으며 불안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조부는 종족간의 갈등으로 피살되었고, 그의 아버지와 삼촌은 달아났다. 야율아보기는 그의 할머니가 숨겨 키웠다.

야올리안 족은 750년대에서부터 거란족을 이끄는 부족이었다. 그들은 당나라와 좋은 관계를 지녔으나 9세기말까지는 일라족의 지도자가 야올리안 칸에 불만을 표현하고 있었다. 야율아보기의 부친 야율적노는 일라족의 부족장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성은 중국문화의 표시를 보였고 그들은 야올리안 부족외의 거란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야율아보기901년903년 일라족의 부족장이 되었다. 전거란 군 사령관인 유웨라 불렸다. 이것은 그가 거란의 2인자임을 의미한다.

당나라의 쇠퇴(조광윤이 송나라를 건설할 시기)를 계기로 요태조인 야율아보기거란족을 통합하여 요나라를 세웠다. 907년 그는 거란의 대가한(요태조)이 되었다. 그는 중국 북부에서 7개 부족장의 지지를 받았고, 야올리안 대가한의 승인을 받았다.

916년 황제라 칭하였다. 요하 상류인 임황에 도읍하여 국호를 대요라 하였다. 922년 고려에 사신을 보냈다. 그는 주위의 나라들에게 조공을 바치도록 하였으며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한자를 본따 거란 문자를 창제하였고, 농업을 발달시켰으며, 그 동안 단임제인 황제를 종신제로 하여, 요나라 황실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먼저 몽골 지역을 정벌하기 위해 서방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서방 정책이 마무리가 되었을 때인 925년 12월에 당시 쇠퇴하고 있었던 발해를 정복하는 사업을 계획하여, 926년 1월에 발해를 멸망시켰다. 정안국 등 발해의 계승국들이 생겨났으나 결국 이 지역은 요나라의 영향권 아래 평정된다.

야율아보기발해를 멸망시키고, 거란으로 돌아갔을 때 사망하였다. 요나라 태조가 죽자 그의 부인 술율평(述律平, 요사(遼史)에서는 소 황후로 기록됨)이 잠시 나라를 다스리다가 자신의 둘째아들인 요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존호[편집]

즉위 후에 받은 존호는 천황제(天皇帝)라고 올렸으며, 몇 달 안 돼서 존호를 가상하여 대성대명천황제(大聖大明天皇帝)로 올렸다.

가족 관계[편집]

조부모와 부모[편집]

  • 조부 : 추존황제 현조(玄祖) 간헌황제(簡獻皇帝) 야율균덕식(耶律 勻德寔)
  • 조모 : 추존황후 간헌황후(簡獻皇后) 소월리타(蕭月里朶)
  • 부친 : 추존황제 덕조(德祖) 선간황제(宣簡皇帝) 야율살라적(耶律 撒喇的)
  • 모친 : 추존황후 선간황후(宣簡皇后) 소암모근(蕭巖母斤, ? ~ 933년)

후비[편집]

황자[편집]

  1. 동단왕(東丹王) 야율배(耶律 倍, 899년~937년) - 제3대 황제 세종(世宗)의 부친. 세종 즉위 후에 의종(義宗)으로 추존.
  2. 야율덕광(耶律 德光) - 제2대 황제 태종(太宗).
  3. 야율이호 (耶律 李胡, 911년~960년) - 후에 장숙황제(章肅皇帝)로 추존
  4. 야율아리과(耶律 牙里果)

황녀[편집]

  • 질고공주(質古公主) - 요 태종의 황후 정안황후의 생모.

각주[편집]

  1. 거란어는 계통상으로 몽골어에 속한다고 추정된다. 거란 문자는 920년 요 태조 야율아보기가 직접 창제 작업에 착수하여 같은 해 9월에 완성, 공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