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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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르

562년 ~ 822년
 

Historical map of the Balkans around 582-612 AD.jpg
정치
정치체제카간국
카간
562년 ~ 602년

바얀 1세
인문
공통어튀르크어
원시 슬라브어[1]
소그드어[2]
민족아바르인
슬라브인
불가르인
종교
국교텡그리교(796년 이전)
기독교(796년 이후)

아바르(Avars)는 5~9세기에 중앙 유럽, 동유럽에서 활약했던 튀르크족 연맹체였다. 비잔티움이 아바르 카간국과 동맹일 때 튀르크 제국이 아바르족들을 "튀르크에 예속되어 있던" 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튀르크족이다.[3][4][5][6] 중앙아시아에서 유럽 및 동유럽에 진출하여 넓은 영토의 국가를 건설했다. 비잔티움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쇠퇴했으며 카롤루스 대제프랑크 왕국에게 멸망하였다.

기원 및 출현[편집]

아바르족은 6세기 중반 처음 출현했으며, 카프카스 지역, 판노니아 평원 일대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사주를 받고 그 지역에 거주하던 유목민족들을 공격했으며, 당시 동유럽을 장악하고 있던 슬라브족들을 정복하며 유럽 서쪽으로 영토를 넓혀 나갔다. 이들은 출현한지 얼마되지 않아 캅카스에서 프랑크 왕국과 국경을 맞닿을 정도로 넓은 세력을 구축하게 되었다.

당시 몽골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연연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연연과 발음적 유사성 이외에 고고학,문헌적 증거는 없다. 5세기의 비잔틴 출신 프리스쿠스는 연연 멸망 이전 이미 서시베리아에 있던 아바르족에 관해 언급하였고 자카리아스(R. Zakharias) 또한 연연 멸망 이전 서쪽의 아바르라는 종족의 기록이 존재하여 아바르와 몽골 지역의 연연은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다.[7] 아바르 카간국이 비잔티움 제국과 동맹 협약을 맺은 것을 알게 된 돌궐 측에서 분노하여 비잔티움 제국을 공격했던 사실을 볼 때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넓은 제국을 건설했던 돌궐에 복속한 튀르크 연맹체가 독립하여 중부 유럽을 정복한 것을 보인다.

판노니아의 옛 아바르족은 일찍이 중앙아시아와 캅카스지역에서 서진한 훈족과 에프탈과 밀접한 부족으로 이해를 하기도 하며 인도유럽어족에서 많은 부족들이 동화, 분화됨에 서서히 북캅카스어족 민족들에 동화되는 과정에 진행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6세기에서 대략 9세기까지 존속한 마지막 스키타이 유목민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현재 알려진 카프카스 아바르족은 다게스탄공화국과 체첸공화국 등지에 널리 퍼져 살고 있고 캅카스족에 속하지만 고대 판노니아의 아바르족과는 다르며, 크게 상관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늘날 카프카스에 거주하는 소규모의 아바르 집단이 유럽 아바르로 알려지고 있다.[8] 또한 일부 러시아 학자들은 아바르족이 캅카스에서부터 유럽을 공격할 때 그 일부가 다게스탄에 사리르 왕국(캅카스 아바르족의 첫 국가)을 세운 것으로 주장하기도 한다.[9] 하지만 판노니아의 아바르인들과 현재 캅카스 아바르족의 관계는 여전히 불명확하며, 그래서 대다수 학자들은 역사적 연관이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 카프카스의 아바르족들은 판노니아의 아바르족이 아니다.

유럽 정복 및 멸망[편집]

동유럽 판노니아(현재의 헝가리)에 이주한 아바르족은 세력이 확대되자, 비잔티움 제국과의 우호 관계를 청산하고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582년부터 아바르족의 바얀은 비잔티움을 공격했고, 사산 왕조와 전쟁을 치르고 있던 비잔티움 측은 이 공세에 몹시 고전하였다. 그러나 비잔티움 측은 아바르족의 침략을 584년에는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601년에는 티사 강에서 가까스로 막아낼 수 있었고, 아바르족의 공세는 한동안 멎어들게 된다.

그러나 얼마 후 사산 왕조가 비잔티움과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게 되자, 아바르족 또한 사산 왕조와 동맹을 맺고 비잔티움에 대한 공세를 재개하였다. 비잔티움 측은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밀려났고, 아바르족과 사산 왕조의 연합군은 626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여 전쟁을 끝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군대는 비잔티움 함대의 해상 봉쇄에 막혀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지 못해 성을 공격할 수 없었고, 유목 민족인 아바르족은 성을 함락할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결국 연합군은 대패함으로써 전쟁은 큰 반전을 맞게 되고, 사산 왕조와 아바르족은 비잔티움의 공세에 더불어 각각 이슬람 제국프랑크 왕국에 의해 양면에서 공격을 받게 되면서 각각 멸망과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국력이 쇠약해진 아바르족은 주변 국가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함은 물론, 내부 반란에 직면했다. 제국 서부에서는 프랑크족 출신 인물이었던 사모가 슬라브족을 규합하여 사모 왕국을 건설하고 독립을 선포했으며, 동쪽에서는 지배하에 있던 불가르 족이 독립해나갔다. 아바르족에게 이를 막을 국력은 남아있지 않았으며, 더 이상 주변 국가에도 위협이 되지 못했다.

아바르어는 투르크계 언어에 속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며, 그 외 아바르 카간국에게 점령된 슬라브인들은 원시 슬라브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력이 쇠퇴한 이후에도 아바르족은 약 150년 정도를 존속했으나, 새롭게 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즉위한 카롤루스 대제의 팽창 정책은 아바르족의 존속에 결정타를 안겼다. 프랑크 왕국의 군대는 791년부터 아바르족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795년에는 피핀이 대대적인 아바르 카간국을 공격하여 아바르 카간국은 쇠퇴하였고 프랑크 왕국에 의해 멸망한다. 아바르 카간국은 슬라브족을 이용하여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였고 슬라브족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슬라브족들이 대규모로 동유럽과 발칸반도로 이주한 것은 아바르 카간국의 시대였다. 아바르 카간국은 필요한 곡물을 조달하기 위해 슬라브족들을 동유럽과 발칸반도로 이주시켜 농업에 종사시켰고 이들을 동유럽과 발칸반도 국경에 배치하여 비잔티움 등 외침에 대비시켰다.[10]

각주[편집]

  1. Curta, Florin (2004). “The Slavic lingua franca (Linguistic Notes of an Archeologist Turned Historian)” (PDF). 《East Central Europe/L'Europe du Centre-Est》 31 (1): 132. 
  2. Harmatta, János (1995). “Sogdian Inscriptions on Avar Objects”. 《Acta Orientalia Academiae Scientarium Hung.》. XLVIII (1–2): 61–65. JSTOR 43391205. 
  3. “Avar”. Encyclopædia Britannica (company). 2019년 6월 15일에 확인함. Avar, one of a people of undetermined origin and language... 
  4. Frassetto, Michael (2003년 1월 1일). 《Encyclopedia of Barbarian Europe: Society in Transformation》. ABC-CLIO. 54–55쪽. ISBN 978-1576072639. 2019년 6월 15일에 확인함. The exact origins of the Avars remain uncertain... 
  5. Waldman, Carl; Mason, Catherine (2006). 《Encyclopedia of European Peoples》. Infobase Publishing. 46–49쪽. ISBN 978-1-4381-2918-1. 2019년 6월 15일에 확인함. 
  6. The Turks appeared angry at the Byzantines for having made an alliance with the Avars, whom the Turks saw as their subjects and slaves. Turxanthos, a Turk prince, calls the Avars "Varchonites" and "escaped slaves of the Turks", who numbered "about 20 thousand" (Menander Fr 43)
  7. 5세기 중엽의 비잔틴 사가 프리스쿠스는, 중앙 아시아에서 연연의 세력이 붕괴되기 1세기 전에 서시베리아 지역에 있는 아바르족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역시 5세기 교회사가 자카리아스(R. Zakharias)도 연연의 멸망 이전인 550년경, 서쪽의 아바르(Abar)라는 종족 집단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또, 1세기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보(Strabo)나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조차 아바르(Abar)나 아바리스(Abaris)족의 존재를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역사적인 연대로 보아 위의 아바르와 555년 멸망한 몽골 지역의 연연과는 별개의 종족임이 분명하다.
  8. 이희수. 《터키사출판사=대한교과서주식회사》. [쪽 번호 필요]
  9. 김혜진. 《민족의 모자이크 유라시아》.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쪽 번호 필요]
  10. 이와 아울러, 아바르국은 슬라브계 종족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슬라브계 종족들이 대규모로 동유럽이나 발칸 반도로 확산되는 것은 아바르 시대였다. 아바르국은 필요한 곡물을 조달하기 위해 슬라브 종족을 농업에 종사시켰고, 그들을 외적의 침입에 대항한 첨병(尖兵)으로 여기저기 국경 지대에 집중 배치하였다. 이 결과 슬라브족이 오늘날 체코슬로바키아, 엘베 강변, 달마티아 해안, 발칸 반도로 이주하여 정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