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헌력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시헌력(時憲曆)은 청대에 완성된 서양천문학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역법으로, 청나라조선 등에서 사용되었다.

서양 천문학을 동양 역법에 적용하려는 구상은 원래 명나라 시대의 마테오 리치(1552~1610)의 생각이었고 그의 발상은 서광계, 이지조 등의 명나라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마테오 리치는 본국에 과학 재능을 가진 선교사들을 보낼 것을 요청했다.

마테오 리치는 기존의 우르시스, 디아스 신부와 함께 기존의 대통력과 회회력의 결함을 보충한 서약역선을 번역하여 중국에 소개하였다. 그리고 마테오 리치 사후, 서광계, 이지조 등과 아담샬 등 새로운 서양 선교사들과 함께 서양 천문학을 동양 역법에 적용하는 연구를 이어갔으며, 그들은 명 말 숭정제 때 <숭정역서>를 만들었으나 혼란한 시국(이자성의 난, 청나라의 침공) 때문에 시행되지 못하고 청대에 <숭정역서>를 약간 보완해 완성한 것이 바로 <시헌력>이다.

조선에서는 병자호란 이후에 청나라의 영향을 받아 조선 효종 때부터 사용된 역법으로, 24절기의 시각과 1일간의 시간을 계산하여 제작한 것이다.

조선 초에는 고려 공민왕명나라에서 가져온 대통력(大統曆)을 사용하였으며, 세종 때에는 회회력을 바탕으로 고쳤으나 대통력과 유사한 것이 많았다. 정두원소현세자청나라에서 귀국할 때 여러 가지 서양 문물을 가져오면서 조선에도 역법 개정의 기운이 무르익었다. 1644년(인조 22년) 관상감 제조(提調)로 있던 김육이 상소하여 시헌력의 채용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청나라에 가서 아담 샬의 가르침을 받고 귀국하는 길에 시헌역법에 관한 서적을 구하여 왔다. 그 후 10여 년 동안 연구를 거듭한 결과 1653년(효종 4년) 비로소 시헌력의 시행을 보게 됐다.

Heckert GNU white.svgCc.logo.circle.svg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