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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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한〉(중국어 간체자: 叶限, 정체자: 葉限, 병음: Yè Xiàn 예샨[*])은 당나라의 단성식(段成式)이 엮은 설화집 《유양잡조》에 실린 이야기이다. 문자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형 설화로 알려져 있다. 1911년에 일본의 민족학자 미나카타 구마구스(일본어: 南方熊楠)가 이 이야기가 신데렐라형 설화임을 최초로 언급하였다.[1]

등장인물[편집]

섭한(葉限)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계모에게 구박을 받았으나 물고기 뼈의 도움으로 끝내 타한의 왕과 결혼하였다. 섭한은 계모가 시키는 일을 모두 따른다는 점에서 수동적 모습을 지니고 있다.[2] 그러나 섭한은 물고기를 잘 돌본 결과 물고기 뼈라는 보상을 얻고, 스스로의 의지로 마을 축제로 향하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기지를 부려 계모의 의심을 피한다는 점에서 능동적 인물이다.[2] 섭한의 금신발은 매우 작다는 점에서, 중국에서 작은 발을 미인의 조건으로 본 것과 관련되는 듯하다.[3][4] 아울러 아동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영어판)(Bruno Bettelheim)의 관점에서, 금신발은 섭한에게만 딱 맞았다는 점에서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기도 한다.[5] 아버지가 성씨가 있지만 섭한은 성 없이 이름으로만 불린다는 점에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 사회적 지위가 없음을 암시한다.[6]

오동(吳洞)은 섭한의 아버지로, 마을의 권력자였으며, 아내가 둘이었는데 섭한의 친모가 먼저 죽은 뒤 자신도 죽었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존재는 서사 안에서 맨 처음에만 등장한 뒤 나타나지 않아 은폐된다.[7] 베텔하임에 따르면 많은 공주 이야기에서 아버지는 딸을 사랑하지만, 딸을 구하려 하지는 않는 존재이다.[8]

친모는 오동의 첫째 부인으로, 섭한을 남기고 일찍 죽었다.

계모는 오동의 둘째 부인으로, 섭한의 친모와 오동이 죽은 뒤 섭한을 구박하였으나 벌을 받았다. 계모는 섭한에게 여러 가사노동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섭한을 전통 사회에서 검증된 존재로 만들도록 돕는 존재이다.[9]

물고기는 섭한이 우연히 잡은 것으로, 계모가 잡아먹지만 그 뼈는 무슨 소원이든 들어 주었다. 물고기 뼈가 섭한에게 비단옷과 신발을 주고, 그 신발로 하여금 왕과 결혼하게 한다는 점에서 물고기는 서사 안에서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10][11] 물이 죽음이나 망자를 상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물고기는 산 자의 세계와 망자의 세계를 연결하는 존재이자 섭한의 친모를 암시하는 존재이다.[11][9] 죽은 친모가 동물로 나타나는 것은 토테미즘적 성격도 지녔다.[12] 다 먹은 물고기의 뼈를 소중하게 다루는 것에는 뼈를 허투루 다루면 물고기의 왕이 더는 인간에게 보상을 증여하지 않으니 조심하라는 수렵 시대의 보편적인 윤리 의식도 반영되어 있다.[13]

타한(陀汗)의 왕은 섭한을 왕비로 들였는데, 잔혹하고 탐욕스럽다. 왕은 서사 안에서 은폐된 아버지의 대체물의 역할을 하며, 섭한과 왕의 결혼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모티프를 은폐한다.[7] 왕은 섭한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섭한이 털처럼 가볍고 소리가 없다는 점에서 신성한 신발의 주인이며 보물을 가져다 주는 물고기 뼈가 탐나서 결혼하였다는 점에서 둘의 결합에는 로맨스가 없다.[14] 신발이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며 죽은 친모를 암시하는 물고기의 유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결합은 섭한이 능력을 인정받고 남편의 영역으로 입사(入社)하는 통과 의례로도 해석될 수 있다.[15]

줄거리[편집]

진나라한나라보다 더 예전에, 동주(洞主)를 맡아 오동(吳洞)이라 불린 남자가 살았다. 그는 아내가 둘이었는데, 한 아내가 섭한(葉限)이라는 딸을 남기고 먼저 죽었다. 오동은 지혜로운 딸을 사랑하였지만, 그 해에 오동마저 죽어 버리자 섭한은 계모에게 구박을 받았다. 계모는 섭한에게 땔나무를 해 오고 물을 길어 오게 시켰다.[16]

어느 날 섭한은 진기한 물고기를 잡아 그릇에 넣어 몰래 길렀다. 물고기가 계속 자라 그릇에서 기를 수 없게 되자, 섭한은 먹다 남긴 음식으로 연못에서 물고기를 길렀다. 물고기는 섭한이 먹이를 주러 올 때마다 머리를 내밀었으나, 다른 사람이 올 때는 그러지 않았다. 계모는 섭한의 해진 옷을 갈아입히고는, 섭한에게 수백 리나 떨어진 샘에서 물을 길어 오게 시켰다. 그 틈을 타 계모는 딸의 옷을 입고 물고기를 잡아먹은 뒤 뼈를 묻어 버렸다.[16]

다음날 섭한이 연못에 갔는데도 물고기가 보이지 않자 목놓아 울었는데, 홀연히 머리를 산발하고 거친 옷을 입은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자는 계모가 물고기를 죽여 두엄더미에 묻었으니, 뼈를 가져다 두고 빌면 그대로 들어 준다고 말하였다. 섭한이 그 말대로 따르자 금과 구슬과 옷과 음식이 바라는 대로 갖추어졌다.[16]

마을 축제 때 계모는 섭한에게 마당의 과일나무를 지키게 시켰다. 섭한이 계모가 멀리 간 것을 엿보고는, 비취색 비단옷과 금신발 차림으로 축제에 갔다. 계모의 친딸이 이를 알아채고는 어머니에게 고하였고, 계모도 의심하였다. 섭한이 이를 깨닫고 재빨리 돌아오다가, 그만 신발 한 짝을 남기고 와 버렸다. 계모가 집에 돌아와 보니 섭한이 마당의 나무를 안고 자고 있어 더 생각하지 않았다.[16]

마을 근처 바다에 있는 많은 섬 중 타한(陀汗)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병사들이 강하여 섬 수십 개와 바다 수천 리를 다스렸다. 마을 사람이 섭한의 신발을 주워 타한에 팔아 그곳 왕이 가졌는데, 주변 사람이나 온 나라의 여자들이 아무도 맞지 않았다. 신발은 털처럼 가볍고 소리가 없었다. 왕은 그 사람이 이치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신발을 얻었다고 의심하고는, 가두어다 고문하였지만 답을 얻지 못하였다. 이에 집집마다 신발의 주인을 찾아 다녔다.[16]

마침내 신발이 맞는 여인을 찾아 잡아 오니 섭한이었다. 섭한이 비취색 비단옷과 금신발 차림으로 나서니 하늘에서 온 사람 같았다. 섭한이 모든 전모를 왕에게 고하자 왕은 물고기 뼈와 섭한을 타한으로 데려갔다. 계모와 친딸은 돌을 맞아 죽었고, 마을 사람들은 슬퍼하며 돌무덤을 만들고 오녀총(懊女冢)이라고 불렀다. 왕은 섭한을 부인으로 삼고, 일 년 동안 물고기 뼈에 빌어 원하는 대로 재물을 얻었다. 그 뒤로는 뼈가 소원을 들어 주지 않자, 왕은 물고기를 구슬과 함께 바닷가에 장사 지내고 금으로 둘렀다. 어느 날 병사가 반역을 일으켜 그 재물을 군대에 주려고 하였는데, 뼈가 저녁 사이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16]

전승[편집]

《유양잡조》에 실린 섭한 이야기는 문자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형 이야기로 알려져 있는데[17], 섭한의 아버지의 칭호 ‘동’(洞)으로부터 이 이야기가 둥족(侗族)의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동’이 당나라 기미주(羈縻州)의 행정조직을 부르는 이름이었다는 점에서 좡족의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18][19] 《유양잡조》에는 이 이야기를 옹주(邕州, 지금의 광시 좡족 자치구) 사람인 이사원(李士元)이 말해 주었다는 단성식의 언급이 있는데[16], 옹주가 바다와 가까운 지역임을 고려하면 조력자로 물고기가 등장하는 것은 지역적 영향일 수 있다.[20] 베트남의 신데렐라형 설화에서도 물고기가 재물을 얻게 하는데[21], 그 사이에 상호텍스트적 관계가 있을 수 있다.[22]

이와 유사한 줄거리의 설화가 중국 각지에서 구술로 전승되고 있다. 2013년 조사에 따르면 광시 좡족 자치구, 광둥성, 간쑤성, 쓰촨성, 구이저우성, 윈난성, 후베이성, 하이난성, 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신장 위구르 자치구, 칭하이성, 내몽골 자치구 등 열네 곳의 행정구역에서 발견되었다.[23] 민족별 구성을 보면, 좡족(壯族), 이족(彝族), 조선족 등 중국 남부나 동북부의 소수민족에게서 많이 발견되었으며, 한족이 우세한 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24] 물고기 대신 소가 주인공을 돕는 이본이 많다.[25]

가장 많은 이본에서 안정적으로 나타나는 줄거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26]

  1. 친모가 친딸을 두고 죽고, 친부는 재혼해서 딸을 낳는다.
  2. 계모가 주인공에게 소 돌보기, 길쌈하기 등 노동을 부과한다.
  3. 친모가 소로 변신하여 길쌈하기를 대신 수행한다.
  4. 계모가 소를 죽이고, 주인공은 소를 묻고 장사 지낸다.
  5. 계모가 자신의 딸과 축제에 가고, 주인공에게 물 긷기, 곡식 고르기 등 노동을 부과한다.
  6. 새가 노동을 해결하는 법을 알려준다.
  7. 주인공이 죽은 소에서 축제에서 입을 옷, 신발, 장신구를 얻는다.
  8. 주인공이 축제에서 신발을 잃고, 남편 될 자가 신발을 얻는다.
  9. 주인공이 신발 시험을 통과하고 혼인한다.
  10. 주인공이 친정에 갔다가 계모가 우물에 빠뜨려 죽인다.
  11. 계모의 딸이 주인공을 행세하며 부부로 산다.
  12. 주인공이 새, 나무, 목제품 등으로 환생한 뒤 사람으로 환생한다.
  13. 주인공이 남편과 재회하고, 계모와 그의 딸은 죽는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

각주[편집]

  1. 나카자와 2003, 150쪽.
  2. 김평 & 류은영 2016, 96쪽.
  3. Bettelheim 1998, 381쪽.
  4. 김평 & 류은영 2016, 99쪽.
  5. Bettelheim 1998, 424, 433쪽.
  6. 김평 & 류은영 2016, 107쪽.
  7. 김평 & 류은영 2016, 94쪽.
  8. Bettelheim 1998, 184쪽.
  9. 김혜정 2013, 150쪽.
  10. Bettelheim 1998, 412쪽.
  11. 김평 & 류은영 2016, 93쪽.
  12. 김혜정 2013, 158쪽.
  13. 나카자와 2003, 155-157쪽.
  14. 김평 & 류은영 2016, 98, 104쪽.
  15. 김혜정 2013, 169쪽.
  16. 支諾皋上〉. 《酉陽雜俎 續集》 1. 
  17. 김평 & 류은영 2016, 89쪽.
  18. 나카자와 2003, 151쪽.
  19. 김평 & 류은영 2016, 98쪽.
  20. 김준연 2018, 36쪽.
  21. 김준연 2018, 37쪽.
  22. 김준연 2018, 48쪽.
  23. 김혜정 2013, 34-35쪽.
  24. 김혜정 2013, 37쪽.
  25. 김혜정 2013, 43쪽.
  26. 김혜정 2013, 126-127쪽.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