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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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미스의 설립자들. 2006년.

보미스(Bomis)는 자유 콘텐츠 온라인 백과사전 프로젝트인 누피디아위키백과를 지원한 것으로 잘 알려진 닷컴 기업이었다.[1] 1996년 지미 웨일스, 팀 셸, 마이클 데이비스에 의해 설립되었다.[2][3][4] 데이비스는 1994년 Chicago Options Associates에 합류하면서 웨일스와 지인 관계가 되었고,[4] 웨일스는 철학을 논하는 메일링 리스트를 통해 셸과 친구가 되었다.[4][5] 보미스의 주요 사업은 보미스닷컴(Bomis.com) 검색 포털의 광고 판매였다.[6]

이 기업은 처음에 시카고에 관한 정보 디렉터리를 포함한 내용에 대해 수많은 아이디어를 시도하였다.[7] 이 사이트는 나중에 스포츠 활동, 자동차, 여성 정보를 포함, 남성 대상 콘텐츠에 집중하였다.[8][9][10] 보미스는 X 등급 미디어에 초점을 맞춘 뒤 성공하였다.[11] "Bomis Babes"가 애로틱 이미지에 충당되었고;[12] "Bomis Babe Report"는 성인 사진을 장식하였다.[13][14] 추가 비용을 내면 이용 가능한 보미스 프리미엄(Bomis Premium)은 음란물을 제공하였다.[15][11][16] "The Babe Engine"은 웹 검색 엔진을 통해 사용자의 에로틱 콘텐츠 검색을 도왔다.[17][1][18] 보미스의 광고 감독은 사이트의 쿼리 중 99%가 나체 여성에 관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19]

보미스는 자유 온라인 백과사전인 누피디아(전문가가 제출한 콘텐츠 포함)를 개설했으나 따분하고 느린 검토 과정을 거쳤다.[20][21] 위키백과는 누피디아의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보미스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으며,[22][5][23] 2002년 말 보미스의 자회사인 영리 목적의 사업이었다.[24] 인기에 힘입어 위키백과의 비용이 상승하자 보미스의 소득은 닷컴 버블의 결과로 감소하였다.[25] 위키백과가 보미스의 자원을 낭비하였으므로 웨일스와 철학 동문 래리 생어자선 활동으로서 프로젝트의 펀딩을 결정하였다.[25] 생어는 2002년 보미스를 그만두었다.[26] 누피디아의 콘텐츠는 위키백과로 병합되었으며,[27] 2003년 중단되었다.[28]

비영리 위키미디어 재단은 2003년 보미스의 3명의 설립자(웨일스, 데이비스, 셸)로 구성된 이사회와 함께 시작되었으며[4] 본사는 보미스의 자리에 있던 세인트피터즈버그에 위치되었다.[29][30] 웨일스는 보미스로부터 대략 US$100,000의 수익을 사용하여 위키백과의 자금을 지원하였다가 이 백과사전을 비영리 상태로 전환하였다.[31] 웨일스는 2004년 보미스의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내려왔다.[32] 셸은 2005년 위키미디어 재단 이사회에 있으면서 이 기업의 CEO를 맡았다.[33] 웨일스는 2005년 위키백과에서 소프트코어 포르노그래피를 제공한 보미스의 특징을 제거하는 편집을 했다가,[5][34] 미디어의 조명을 받았고;[16][35][36] 웨일스는 자신의 행위에 후회한다고 표하였다.[5][34] 디 애틀랜틱는 보미스에게 인터넷의 플레이보이라는 별명을 선사했으며[37] 이 용어는 다른 미디어 매스컴을 타게 되었다.[25][38][39] 학자들은 보미스를 소프트코어 포르노그래피의 제공자로 기술하였다.[23][40]

각주[편집]

  1. Henderson 2008, p. 500
  2. Seybold 2006, p. 250
  3. DiBona 2005
  4. Lih 2009
  5. Craig 2013, p. 84
  6. Stöcker 2010
  7. Anderson 2012, pp. 136–138
  8. The Globe and Mail 2012, pp. 89–91
  9. Weinberger 2008, p. 138
  10. Shirky 2009
  11. Kuchinskas 2009
  12. Hansen 2005
  13. Rosenzweig 2013
  14. Rosenzweig 2006
  15. Zittrain 2008, p. 133
  16. Blakely 2005
  17. Business Insider 2013
  18. Mangu-Ward 2007
  19. The Economist 2008
  20. Seitz 2011, p. A3
  21. Edemariam 2011, p. 27
  22. Hasan 2011
  23. Jensen 2006
  24. Meyer 2012
  25. Neate 2008
  26. The Star 2007
  27. Waters 2010, pp. 179–180
  28. Mahadevan 2006, p. 15
  29. Ayers 2008
  30. Mehegan 2006
  31. Hickman 2006
  32. Krueger 2004, p. 1E
  33. Barnett 2005, 62쪽.
  34. Bernstein 2011, p. 34
  35. Elliott 2007, p. 22
  36. Mitchell 2005
  37. Poe 2006
  38. The Sunday Times 2011
  39. Keen 2008, pp. 41–42
  40. Howe 2008, pp. 58–60

참고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